서민 울리는 ‘대부중계업체’ 수천 개 성업 중급전 때문에 개인정보 줬다간 신용등급 폭락
  •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삼성캐피탈입니다.”


    지난 3월 직장인 K씨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전화 속 남성은 굵직한 목소리로 자신을 ‘삼성캐피탈 대출상담사’라고 밝혔다.

    그는 K씨가 최근 대출신청을 했다가 거절당한 것을 캐피탈 업체에 근무하는 동료로부터 전해 들었다며 자신이 이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에서 IT담당 파견 사원으로 근무하는 K씨는 같은 달 부모님 수술비 때문에 급전이 필요해 캐피탈 업체에 대출을 신청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신용등급이 낮아 대출을 받지 못했다. 그렇다고 대부업체 문을 두드리기는 좀 그랬다. 이때 걸려온 ‘캐피탈 상담사’의 제안은 솔깃했다. K씨는 ‘삼성그룹이니까 캐피탈 하나쯤은 있겠지’라고 생각해 그에게 이름과 주민번호, 휴대전화 번호를 불러줬다.

    며칠 후 ‘캐피탈 상담사’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신용등급이 낮아서 대출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캐피탈 상담사’는 그러면서 K씨에게 ‘제가 전산직원을 아는데 조금의 수고비만 주면 해킹을 해서 신용등급을 높여주겠다’고 제안했다. 금품을 요구하는 점에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낀 K씨는 대출을 받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K씨는 고민 끝에 이자율이 높은 외국계 캐피탈 업체를 찾았다가 황당한 소리를 들었다. 누군가 그의 개인정보를 이용해 대부업체에 대출가능여부를 14번이나 조회한 끝에 신용등급이 9등급까지 떨어졌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대부업체로부터 급전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 ▲ 삼성캐피탈 검색 결과. 삼성캐피탈은 르노삼성자동차가 분리된 뒤 삼성할부금융으로 바뀌었다. 현재 삼성캐피탈이라는 기업은 존재하지 않는다.
    ▲ 삼성캐피탈 검색 결과. 삼성캐피탈은 르노삼성자동차가 분리된 뒤 삼성할부금융으로 바뀌었다. 현재 삼성캐피탈이라는 기업은 존재하지 않는다.

    화가 난 K씨는 인터넷을 뒤졌다. 삼성캐피탈, LG캐피탈, 대신금융, 롯데금융, 현대금융, 우리종합금융, 하나신용대출 등 대기업이나 금융기관의 이름을 무단 사용하는 ‘대부 중계업체’들이 넘쳐 났다. 그가 ‘당한’ 것도 이들 중 하나였다. 이후로도 K씨는 하루에 20~30통의 ‘캐피탈 상담사’들의 전화에 시달리고 있다.


    “대출업체 전화 계속 걸려오면 번호 바꾸는 수밖에….”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당하고 있는 ‘대부중계업체’들의 ‘행패’ 중 극히 일부 사례다. 이 사례를 금융감독원 관계자에 알려주자 혀를 끌끌 찼다.

    “그런 사람들을 단속하고 싶어도 피해자들이 신고를 하지 않는데다 수수료를 챙기고 나면 사라지는 ‘보이스 피싱 조직’같은 자들이 대부분이라 추적 자체가 어렵습니다. 때문에 일단 그들과는 ‘거래’를 하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이런 대출중계업체들이 현재 수천 개 이상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피해자들이 이름을 무단으로 차용당한 대기업과 금융기관들에도 항의를 하기 때문에 해당 기업과 은행은 대출중계업체를 처벌해달라고 경찰에 고발해 보지만, 직접 금전적 피해를 본 게 아니기 때문에 경찰도 수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대부업체와 대부중계업체가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라 아무나 이런 일을 벌일 수 있고, 지자체가 관리를 엉성하게 하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상황이 왔다고 보기도 한다. 실제 자산관리공사 측의 설명에 따르면 전국에 등록된 대부업체가 1만8,000개를 넘는다고 한다.

    그나마 지자체에 등록된 대부중계업체들은 나은 편이다. 불법 대부중계업체들은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시한 등록번호와 주소, 대표자 이름, 상담사 이름과 전화번호까지 모두 가짜인 경우도 있다.

    실제 이름 무단도용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LG그룹 측이 직접 조사한 결과 ‘LG캐피탈’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자칭 ‘대부중계업체’와 ‘대부업체’ 중 수십 개가 ‘유령회사’였다. ‘상담사’들의 전화번호도 대부분 결번이거나 ‘대포폰’이었다고 한다.

  • ▲ 서민들이 많이 보는 생활정보지의 대부업체 광고. 이 중에는 불법대부업체도 섞여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그 사실을 모른다.
    ▲ 서민들이 많이 보는 생활정보지의 대부업체 광고. 이 중에는 불법대부업체도 섞여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그 사실을 모른다.

     

    경찰 관계자는 이런 ‘유령회사’들이 사실은 몇 개의 ‘조직’이며, 이들이 수십 개의 ‘유령 회사’들을 내세워 영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동일한 전화번호에서 다른 업체명이 나올 리 없기 때문이란다.

    당국에서는 “대출 받으라는 전화를 받으면 절대 응답을 하지 말고 끊으라”고 충고하고 있다. 만약 앞서 사례로 든 K씨처럼 이미 개인정보를 알려줬거나 거래를 한 경우에는 전화번호를 바꾸는 방법 밖에는 없다고 한다. 유출된 개인정보는 관련 업계에 이미 퍼졌을 것이고, 해외 인터넷 전화나 대포폰 등을 사용하는 이들을 추적하기가 어렵다는 게 이유였다.


    영세상인, 무직자, 대학생 등 대출거래 조심해야


    물론 대출중계업체 대부업체와의 거래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신용등급이 낮거나 급전이 필요한 이들에게는 분명 대부업체가 ‘도움’이 되기도 한다. 일부 대부업체는 코스닥 등록업체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부업체와의 거래에는 ‘함정’이 있다. 대부업체로부터 대출을 받게 되면 신용등급이 제2금융권으로부터도 대출을 받기 어려울 만큼 몇 단계 떨어지게 된다.

    한 번 떨어진 신용등급은 관리를 잘 한다고 해도 보통 3~6개월이 지나야 한 등급이 올라간다. 하지만 대부업체와 거래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신용등급을 올리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정부의 서민금융 담당자들은 “정말 필요하다면 정부가 주관하는 저금리 정책자금을 찾아보는 게 더 낫다”고 권한다.

    특히 대학생이나 취업준비생처럼 사회생활을 시작도 하지 않은 사람들,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겠다며 창업을 했다가 일시적인 자금융통이 어려워진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대부업체와 거래를 하다 신용등급이 낮아져 제도권 금융거래를 아예 못하게 돼, 그나마 생활이 더 어려워지는 걸 보면 가슴이 아프다고 한다.

    담배 광고는 할 수 없다는 케이블 TV, 공중파 채널에는 대부업체의 대출광고가 넘쳐난다. 이런 광고를 본 젊은 세대, 영세민들이 대부업의 유혹에 빠지는 걸 막기 위해서는 대부중계업체의 무분별한 영업행위를 근절하고, 서민금융을 널리 알리는 게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