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중 메시지 여러 개 와있어 해고통보인 줄 알았다""보도 사진은 진실한 것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게 중요"
  • "사진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입니다. 카메라를 들이대고 셔터를 누르는 것은 나이지만 사진은 나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 사실을 담는 것입니다. 사진에는 내 의견이 들어갈 수 없고 들어가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시카고 지역의 조직폭력과 관련된 총기살해 사건을 심층 보도해 2011년 퓰리처상 지역보도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시카고 선타임스(Chicago Suntimes)'의 사진기자 존 김(36,한국명 김주호)씨는 19일(현지시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무척 침착했고 겸손한 모습이었지만 사진에 대해 이야기할 때만큼은 목소리가 단호해졌다.

    그는 "뉴스를 전달해야 하는 사람이 뉴스 대상이 된 것이 어쩐지 좀 불편하다. 그러나 가족과 친구, 직장 동료로부터 축하받는 일은 행복한 일이다"면서 퓰리처상 수상이 발표된 후 하루를 보낸 소감을 밝혔다.

    -퓰리처상 수상자 발표 소식을 해고 통보인가 생각했는데... 정말 짐작도 못했나.

    ▲지금도 휴가 중인데 어제 오후 회사로부터 갑자기 여러 통의 휴대전화 메시지가 들어왔다. '혹시 해고 통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 사실이다.(웃음) 퓰리처상은 한동안 최종 후보를 발표하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심사관들이 수상자를 발표하기 전까지 진행과정을 공개하지 않는다.

    -수상 소식을 알고 난 후 뭘 했나.

    ▲휴대전화 메시지를 가장 많이 남겨놓은 시카고 선타임스 사진부 낸시 스턴클 편집장에게 제일 먼저 전화했다. 그리고 회사로 나가니 동료들이 큰 포옹과 악수로 맞아줬다. 함께 수상한 프랭크 메인, 마크 컨콜 기자와 축하 인사를 나눈 뒤 사진부 동료들, 편집국 선후배들과 함께 어울려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화제가 자꾸만 내게 모아지는 것이 좀 부끄럽고 어색해서 중간에 살짝 자리를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가보니 40여 개의 전화 음성 녹음이 남겨져 있었고 컴퓨터에는 120여 통의 이메일이 도착해있었다. 새벽 3시 30분쯤까지 이메일을 읽고 답신을 썼다.

  • -잠은 잘 잤나. 오늘 아침 눈을 뜨면서 무슨 생각을 가장 먼저 했나

    ▲생각할 일이 많아 잠을 잘 못 잤다. 행복한 기분이었다고 해도 맞을 것이다. 새벽에 잠들었는데 이른 아침부터 전화 메시지 들어오는 소리에 잠을 깼다. 아침에 눈을 뜨고는 어제 수상자 발표 소식과 가족, 동료, 친구들의 축하 메시지를 다시 한 번씩 떠올렸다. 특히 부모님과 형님들은 나보다 더 많이 기뻐하시는 것 같아 고마웠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커피를 내려 마신 후 다시 이메일 답신을 쓰기 시작했다.

    -사진기자로서 철학이 있다면

    ▲사실 사진 말고 할 줄 아는 게 없어 사진기자를 한다.(웃음) 사진기자에게 사진은 예술이 아닌 저널리즘이다. 저널리즘으로서의 사진은 가장 진실한(truthful) 것을 객관적(objective)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진기자는 펜 대신 카메라를 이용하는 저널리스트인 셈이다. 저널리스트는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고 사실 그대로를 전달해야 한다. 있는 그대로가 진실이다, 내 생각이나 의견을 전달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늘 되새긴다.

    -아주 솔직히...퓰리처상 수상을 기대했었나.

    ▲누구나 자신이 최선을 다한 일이 인정받기를 기대할 거다. 그러나 내가 만든 프로젝트가 퓰리처상 출품작으로 선정되고 편집장을 비롯한 선후배와 동료가 칭찬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일의 보람을 느꼈다. 상에 대한 욕심은 결코 없었다. 그리고 이번에 상을 받은 범죄사건 프로젝트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중점 보도된 사건의 용의자가 아직 체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범인이 잡힌다면 꼭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 사진을 찍고 프로젝트를 완성하고 싶다. 그건 수상과는 무관한 일이다.

    -이번 취재와 관련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이나 상황이 있다면.

    ▲이 사건은 10대 폭력조직원이 또 다른 조직원을 총격 살해한 사건이다. 소위 '나쁜 아이'에 의해 '나쁜 아이'가 죽었다. 그러나 죽은 아이의 부모에게 그 아이는 여느 가족의 아이와 다를 바 없지 않겠는가. 아이의 부모는 멕시코 이민자들로 어머니는 식당 부엌 일을 하고 아버지는 잔디 깎는 일을 하면서도 가족에게 좋은 삶을 주려고 노력한 사람들이었다. 이제 열여섯 살 된 아들의 죽음 앞에서 맘껏 슬퍼하지도 못하는 그들이 취재에 기꺼이 동의해 줄 때 그들의 삶이 가슴 아팠고 매우 미안한 마음이 들었었다.

    -어떤 사진 찍는 것을 가장 좋아하나.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사진 속에 담아내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예를 들어 빌딩 화재 현장이라든지 토네이도, 지진 등이 여기 해당할 것이다. 또 스포츠 경기 사진도 마찬가지다. 연출할 수 없는 순간들을 잡아내는 것이 좋다. 조명 장치를 하고 표정을 주문해가면서 찍는 인물사진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연방법원 로비 또는 공항 등에서 하루 종일 유명 인사를 기다리는 일도 재미없는 일이다.

    -사진 찍는 일 이외에 잘하는 일이 있다면

    ▲맥주를 잘 만든다. 내가 만드는 맥주는 정말 맛있다. 가족과 친구들 모두 내 맥주를 좋아한다. 만드는 법은 4년 전쯤 책을 보면서 혼자 배웠다. 3-4개월에 한 번 정도씩 호프, 맥아, 효모 등의 재료를 사서 집에서 맥주를 만든다. 한 번에 만드는 양은 약 5갤런(19ℓ) 정도다.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고 숙성까지는 약 4-6주가 걸리지만 맥주 만드는 일이 재밌다. 사진기자를 안 한다면 아마 맥주를 만들어 팔 것 같다.(웃음)

    -앞으로의 계획은.

    ▲특별히 그런 것은 없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좋고 내가 일하는 직장이 좋다. 지금처럼만 살 수 있다면 좋겠다. 굳이 희망사항을 들어본다면 유럽과 태국, 베트남 등을 여행하면서 새로운 문화를 접해보고 싶다. 가족과 친지들을 만나기 위해 곧 한국에도 한번 나갔다 와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