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중심가에 시계탑 건설'정시 관념' 희박한 동티모르인에 도움 기대
  • 2009년 9월 서경석(69) 동티모르 대사가 처음 부임했을 때 맞닥뜨린 가장 큰 어려움은 이곳에 현대적인 '시간'의 개념이 없다는 것이었다.

    500여년 동안의 식민 지배에 이어 2002년 독립 선포 이후에도 최근까지 괴롭고 지루한 내전을 겪어온 동티모르 사람들은 정확한 숫자와 시간에 대한 인식이 희박하다.

    1인당 연간 소득이 500달러 미만으로, 시계가 있는 가정은 매우 드물어 국민 대부분이 자신의 정확한 나이와 생일을 모른다.

    공공장소에서도 정확한 시계를 찾아보긴 어려우며, 손목시계는 부유층의 표식 같은 것이다.

    한국대사관이 현지 구호 활동을 펼칠 때도 '몇 시까지'라는 말을 '한나절 즈음' 쯤으로 이해하는 현지인들 때문에 애를 먹었다.

    서 대사는 "한번은 한국에서 보내온 컴퓨터를 가져다주려 오전에 산골 학교를 방문했는데, 학생들이 대부분 등교하지 않아 놀랐다"며 "이유인즉, 흐린 날은 해가 없어 현재 시각을 가늠할 수 없기 때문에 학교에 늦는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오랜 내전으로 어른들이 많이 사망한 탓에 초·중·고등학생(32만7천여명)이 전체 인구 110만명의 ⅓에 가깝지만, 이처럼 희박한 시간관념은 '나라의 미래'가 커가는 것까지 가로막고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서 대사의 이런 하소연은 지난해 이철우(68) 롯데백화점 대표의 귀에 들어갔다. 이 대표는 서 대사의 서울 중앙고 1년 후배이자 ROTC 3기 동기다.

    마침 베트남과 남아프리카공화국, 에티오피아 등지에서 국제 사회공헌활동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던 이 대표는 서 대사의 제안을 즉각 실행에 옮겼다.

    바로 동티모르에 시계를 전달하자는 것이다.

    지난해 11월8일부터 한 달 동안 전국 롯데백화점에서 시계 3만여개를 비롯해 중고컴퓨터 100대, 라면 1천500박스, 의류 1천833벌을 모았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9m 높이의 대형 시계탑이다.

    'LOTTE'란 글자와 나라의 상징인 악어와 커피 모양이 새겨진 이 시계탑은 제작비만 1억2천만원이 들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 광화문 광장쯤 되는 곳인 수도 딜리의 정부종합청사 맞은편에 들어섰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지나다니는 번화가에 정확한 시간을 가리키는 시계를 설치하자는 생각이다.

    이 시계탑은 현지의 불안정한 전기 사정을 고려해 태양광으로 작동되고, 1년에 한 번씩 GPS를 통해 정확한 시각을 스스로 맞춘다.

    현지에서 원조 활동을 활발히 펼치는 중국이 이미 시계탑 1곳을 설치해줬지만, 오락가락하는 전기 탓에 지금 제대로 맞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점에서 착안한 것이다.

    3일(현지시각) 오전 호세 루이스 구테레스 부총리를 비롯한 정부 관료들과 학생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 시계탑의 완성을 축하하는 기념식이 열렸다.

    육군 중장 출신으로, 위관 장교 시절 미8군에 근무할 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시간을 잘 지키지 않아 생긴 '코리안 타임'이란 말이 창피했던 서 대사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은 우리가 정확한 시간관념을 세계에 전파하게 된 것이 무척 감개무량했다.

    그는 이날 광장에 모인 어린 학생들에게 전한 기념사에서 마지막으로 "시간은 돈이다. 시간은 금이다. 시간보다 더 중요한 건 없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