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드 고급차 운전자, 불법주차 트레일러와 사고나 ‘반신불수’ 상태포드 “에어백 기준, 한국에 맞췄다” vs. 소비자 “정면충돌인데 왜 안터져”미국과 전혀 다른 한국의 안전기준, '에어백 만능론'이 '안전 불감증' 불러
  • 여러분이 40km/h의 속도로 어두운 길을 가다 불법주차된 트레일러의 뒤를 들이받았는데도 에어백이 터지지 않았다면 누구를 탓하겠는가. 실제 유사한 일이 벌어진 뒤 제조사와 소비자 간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중고차로 구입한 포드의 파이브 헌드레드

    축산 폐기물을 처리 가공하는 환경처리업체 대표 C씨는 지난 해 9월 경 차를 바꾸기 위해 경기도 성남시 복정동에 있는 중고차 매매단지를 찾았다. C씨는 처음에는 국산차를 살까 하다 최근 국산차 안전도에 문제가 많다는 말이 떠올라 중고 수입차를 살펴봤다고 한다. 마침 10만km 채 안 된 주행거리의 포드 파이브 헌드레드가 눈에 띄었다.

    포드의 대형차 토러스보다 더 고급이고 안전하다는 판매원의 말에 1,800만 원을 주고 구입했다. C씨는 마침 미국 출장을 가야 해 차량 구입 후 종합보험만 들었다. 미국 출장을 가면서 20년을 함께 했던 직원 김○○ 씨에게 “조심해서 몰아야 한다”고 당부하고 차를 맡겼다.

  • ▲ 포드 파이브 헌드레드. 단종된 모델이지만 한 때는 포드의 최고급 세단이었다.
    ▲ 포드 파이브 헌드레드. 단종된 모델이지만 한 때는 포드의 최고급 세단이었다.

    4박5일 간의 출장을 마치고 인천공항에 도착할 때 김 씨가 나와 있었다. C씨는 다음 날 일찍 사업관련 회의 일정이 잡혀 있어 김 씨에게 ‘나를 집에 데려다 준 뒤 일단 차를 갖고 갔다가 내일 회사로 출근하라’고 말했다.

    이렇게 김 씨가 C씨를 집에 데려다 준 뒤 귀가할 때 사고가 터졌습니다. 어두운 이면도로에 불법 주차돼 있던 대형 화물차 뒤를 들이받은 것이다. 김 씨는 뒤늦게 화물차를 발견하고 핸들을 꺾었지만 좁은 길인 탓에 화물차를 완전히 피하지 못하고 파이브 헌드레드의 우측 오른쪽 A필라(운전석 앞 기둥)로 들이받으면서 화물차 아래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사고 소식을 들은 C씨는 병원으로 급히 달려갔다. 김 씨는 경추골절을 당해 전신마비 상태가 됐다. 병원에서 대수술을 받고 뼈 조각도 몇 개 빼냈다. 김 씨의 상태는 크게 호전되지 않았다. 3개월이 지났음에도 손발 끝의 감각만 약간 돌아올 정도라고. 병원 측에서는 ‘의식이라도 돌아와 다행이다. 몇 년 뒤 휠체어라도 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 ▲ 사고난 후 문제의 포드 파이브 헌드레드. 조수석이 완전히 찌그러졌다.
    ▲ 사고난 후 문제의 포드 파이브 헌드레드. 조수석이 완전히 찌그러졌다.

    더 안타까운 건 김 씨의 사정. 쉰을 넘긴 노총각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다. 성실함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였다고. 그런 김 씨가 졸지에 전신마비가 된 데다 한 달 병원비가 1,000만 원이 넘는 상황이 되자 C씨는 ‘마음이 너무 아프다. 못 보겠다’고 말했다.

    C씨는 “사고 당시 운전석이든 조수석이든 에어백 하나라도 터졌더라면 김 씨가 그렇게 큰 부상을 입지 않았을 것이다. 안전벨트도 마찬가지다. 충격 때 잡아 준다는 익스텐셔너 벨트가 제대로 작동했더라면 그리 심한 부상을 입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선인자동차 “소비자 과실로 보인다”

    C씨는 아무리 10만 km 가까이 달린 차라고 하지만 에어백이 안 터지고, 안전벨트가 잡아주지 못한 것은 ‘제조결함’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그는 처음 국내 수입업체를 찾아가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여기서 C씨의 분노가 ‘폭발’했다.

    C씨가 포드의 국내 대리점인 선인자동차를 찾았을 때다. 선인자동차는 기술진을 보내 차량을 한 번 본 뒤 “차는 정상”이라며 소비자 과실로 몰았다고 한다.

    C씨는 안 되겠다 싶어 제조사인 포드 코리아를 직접 찾아 문제를 제기했다고 한다. 포드 코리아 측은 그나마 마케팅 담당 이사가 직접 나와 ‘기술사’ 자격을 가진 전문 정비사를 데려와 차량을 봤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은 “자동차 에어백 센서가 정면에 있어 정측면에서 충돌하면 에어백이 안 터질 수도 있다”며 “차량 문제로 보기 어렵다”며 돌아갔다고 한다.

    C씨는 이에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언론에 알리고 불매운동을 벌이겠다”고 했지만 포드 측은 “저희는 지사라 원칙대로 해야 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포드 “한국 규정에 충실히 따랐을 뿐” 난감

    C씨는 “문제의 불법주차한 대형 화물차도 문제지만 포드가 그렇게 자랑하는 고급차에 달린 안전장치가 필요할 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는데도 ‘나 몰라라’ 하는 태도를 보니 정말 화가 난다”고 말했다.

    한편 포드 측은 난감한 모습이었다. 이춘회 포드 아시아태평양지역 부품서비스 담당 이사는 “지금 사고차의 고객과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오해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 ▲ 사고 차량의 운전석 쪽. 운전석 캐빈(탑승공간)은 비교적 온전한 모습이지만 외부에서 엄청난 충격이 있었음에도 에어백은 터지지 않았다.
    ▲ 사고 차량의 운전석 쪽. 운전석 캐빈(탑승공간)은 비교적 온전한 모습이지만 외부에서 엄청난 충격이 있었음에도 에어백은 터지지 않았다.

    포드 측은 C씨가 문제를 제기했을 때 포드 측에서 정비 전문가와 함께 현장에 가 사고차량을 살펴봤다고 한다. 포드 측이 볼 때 문제는 사고 충격이 가해진 부분이 차량의 정면이 아니라 A필라였기 때문에 에어백 등의 안전장치가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했다.

    “차량 에어백 작동 센서는 정면 범퍼 세 곳에 붙어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차량 충격이 A필라와 같은 위쪽에서 시작될 경우 아래 센서로는 충격 전달이 안 돼 에어백이 터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포드 측은 “포드 파이브 헌드레드에 장착한 에어백 작동 메커니즘은 美FMVSS(Federal Motor Vehicle Safety Standard of the US: 美연방 차량안전기준)을 충족했고, 한국 정부는 이를 그대로 수용했다”고 설명했다.

    포드 측은 “하지만 사고를 당한 운전자의 딱한 사정을 듣고, 문제제기를 한 소비자의 심정이 이해돼 차를 본사로 보내 정밀진단을 받으려고 다음 일정을 잡으려 했는데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오해가 점차 커진 것”이라고 말했다.

    포드 측은 “이 문제로 고객께서 크게 상심하고 분노하고 계셔서, 사고차량 사진과 함께 경찰의 사건수사 내용을 이미 본사에 보고했다. 본사에서도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고 답했다. 포드 측은 “우리 회사가 다국적 기업인지라 ‘내부 규정’에 따라야 하기에 운신의 폭이 좁다”고도 밝혔다.

    포드 측은 “현재 판매되고 있는 토러스의 경우 고객들이 사고를 당한 뒤에도 ‘안전하다’며 다시 재구매할 정도로 포드 차량의 안전기준은 높은 편”이라고 덧붙였다.

    ‘허술한’ 한국차 안전기준과 잘못된 '에어백 안전' 개념

    양 측의 설명을 들은 후 다시 살펴봤다. 이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나라의 ‘자동차 안전 기준’이었다.

    지난 해 12월 2일 주요 언론들은 보험개발원의 말을 인용해 수입차가 국산차보다 평균 수리비가 5.3배 높았다고 보도했다. 여기서 주의 깊게 봐야 할 부분이 있었다.

    당시 보도에는 보험개발원 자동차기술연구소가 RCAR(Research Council for Automobile Repairs 세계자동차기술연구위원회) 기준에 따라 국산차와 외제차 6개 차량에 대해 15km/h의 전·후면 저속충돌시험을 한 결과 ‘포드 토러스는 15km/h의 충돌에도 차량 에어백이 터져 더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美도로교통안전국(NHTSA)이 제시한 에어백 규정에 따른 것이었다. NHTSA는 저속 충돌(0-40㎞/h)시 에어백 작동을 의무화 했다. 이 규정을 지키지 못하면 미국 내에서 차를 팔수가 없다. 때문에 자동차 제조사들은 미국에서 파는 차에는 저속과 고속 충돌에 따라 다르게 팽창하는 듀얼 스테이지 에어백(어드밴드스 에어백)을 적용해야만 한다.

    반면 우리나라 안전기준 및 법규에는 에어백이 언제 어떻게 터지든 중고속 정면충돌에서 터지기만 하면 된다는 식이다. 때문에 국산차 업체들은 극소수의 고급차 외에는 ‘가격이 저렴한’ 디파워드(depowered) 에어백을 장착하고 있다.

    물론 C씨가 말한 사고처럼 A필라 충돌 시 또는 차량의 전측방 충돌 시 에어백이 터져야 한다는 규정은 어느 나라에도 없다고 한다. 하지만 다른 나라와 우리나라에는 큰 차이가 또 있었다. 바로 ‘에어백 만능론’이다.

    다른 나라들은 ‘에어백은 안전벨트의 보조 수단이다. 에어백이 있어도 사고가 나면 죽는다’고 말하지 ‘에어백이 무조건 사람을 살린다’는 식으로는 말하지 않는다. 이에 삼성교통문화연구소는 ▲대형차 후방에서 충돌해 밑으로 빨려 들어갈 때 ▲차량의 대각선 방향에서 충돌이 일어날 때 ▲차량이 전복되거나 추락할 때 ▲차량이 전신주나 나무를 정면으로 충돌했을 때를 들며, ‘이럴 경우 에어백이 터지지 않는다’며 안전운전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국내 자동차 판매 업체 중 어떤 곳도 언제 에어백이 터지지 않는지를 고객들에게 설명하지 않고 있다. 특히 중견그룹 2~3세들이 운영한다고 알려진 수입차 업체들은 ‘국산차보다 에어백이 많다’는 것만 내세울 뿐 에어백이 있어도 위험할 수 있다는 점은 알리지 않는다(참고로 포드의 수입업체인 선인자동차는 아우디, 폭스바겐을 수입하는 고진모터스와 함께 극동유화-근화제약 그룹 계열사다).

    이 같은 국내 규정을 들은 C씨는 “지난 번 한 방송 프로그램을 보니까 미국 소비자들은 차량 결함유무와 관계없이 에어백이 안 터져 부상을 입으면 규정에 따라 일단 자동차 제조업체에서 보상을 하더라”고 주장했다.

    C씨는 “포드가 요즘 5년 10만km 무상정비니 해서 판매에만 급급한 모습을 봤다. 정부나 기업은 한미FTA가 통과되면 좋다고 하는데 차 값이 싸지는 건 둘째 치고 안전기준도 미국처럼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한편 포드 코리아 이춘회 이사는 이번 사고에 대해 “본사에서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며 “만에 하나 C씨의 주장처럼 차량 결함일 경우에는 주행거리와 관계없이 리콜 여부를 판단한다. 하지만 그 전에 차량의 시스템 전체를 정밀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