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천문학적 비용 투입 불구 혁신 실패
  • 러시아가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9명과 첫 우주인 배출, 가공할 핵무기 개발 등으로 과학분야에서 눈부신 경쟁력을 과시해온 옛 소련과 달리 부패와 시스템 붕괴 등으로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22일 보도했다.

    신문은 러시아 정부가 소련 해체 이후의 공백을 만회하기 위해 지난 10년간 과학연구 부문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었지만 과학 혁신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이같이 진단했다.

    실제 러시아 정부는 지난 10년 사이 과학 프로그램 지원규모가 무려 3배나 늘어났지만 성과는 극히 미미하다는 평가다.

    과학저널에 실린 러시아 과학자들의 연구논문은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는 다른 국가들과는 대조적으로 지난 2000년도는 물론 1990년 수준과 다를 바 없는 상태다.

    러시아 과학자들은 지난 1998년 약 2만7천건의 논문을 국제저널에 게재한 이래 지금까지 아무런 증가세도 보이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국제과학논문 게재건수에서 러시아 과학자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30% 가량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1994년 연구개발 종사자 수가 110만명선을 넘어섰지만 2008년에는 고작 71만6천명에 그친 것으로 집계됐다.

    중국 상하이 교통대학 연구진이 선정한 세계 500대 대학에 이름을 올린 러시아 대학 역시 2개에 불과할 만큼 초라하기만 하다.

    러시아 최고대학이라는 모스크바 국립대학 역시 지난 2004년 66위에서 2010년엔 74위로 떨어지는 등 위상이 갈수록 추락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 정부가 유수의 연구센터로 육성하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지만 2007년 이래 문 닫은 연구센터가 10곳이 넘을 만큼 과학부문의 하향세가 두드러졌다.

    이에 러시아의 젊은 과학자들은 소련 해체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을 과학이 실종된 세대라며 자조 섞인 한탄을 내뱉고 있으며, 많은 과학자가 빈곤에 시달리던 지난 1990년대와 마찬가지로 해외로 눈을 돌리면서 두뇌유출마저 우려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 과학원은 정부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한사코 개혁을 거부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드미트리 메드베테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러시아판 실리콘 밸리'를 건설하기로 하고 `스콜코보'라고 불리는 첨단연구센터 건설에 많은 돈을 쏟아붓는 등 다른 연구기관을 전폭 지원하고 있다.

    옛 소련 시절 핵무기를 개발한 쿠르차토프연구소도 `스콜코보'와 마찬가지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거의 모든 부문에 진출하며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다.

    러시아 교육과학부는 또 서방식 모델에 따라 러시아 대학에 연구센터를 설립하는 방안을 시도하는 등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인 부패가 러시아 과학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

    지난 10년 사이 러시아의 경제가 회복기에 들어섰음에도 푸틴과 메드베데프 정부는 2개 과학재단에 대한 지원규모를 축소했으며, 대신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연구소만 선호하고 있다.

    또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정부의 자금 지원을 받은 과학자들이 연구계약을 발주한 관료들에게 일정액의 뇌물을 줄 수밖에 없다는 불만도 제기되고 있다.

    러시아 일반물리학 연구소의 알렉산데르 삼모킨 연구원은 "러시아 과학계는 사회의 복제판"이라며 만연한 부패를 개탄했다.

    또 시스템 붕괴 역시 러시아 과학의 추락을 초래한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지난 20년간 낮은 급여 수준과 방만, 자긍심 실종 등이 어우러지면서 현재 40∼50대 연령층의 과학자들을 다른 곳으로 내몰았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한 과학언론인은 이런 시스템 붕괴에 따른 손실은 엄청나며 파장도 컸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