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CJ회장 룸살롱 향응 폭로 배후설에 반발"사실 확인도 없이 떠도는 소문을 기사로 올려"
  • 컨스피러시(conspiracy·음모론)의 최대 희생자였던 언론 매체가 특정 사안에 대해 거꾸로 음모론을 제기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전개됐다. 지난해 보도한 서태지-이지아 이혼 스캔들 기사가 'BBK 사건을 가리기 위한 물타기식 보도'라는 억측에 시달렸던 스포츠서울이 이번엔 이재현 CJ 회장과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의 술자리 파문 기사를 삼성 측의 '반격'으로 해석하는 음모론을 게재한 것.

    스포츠서울은 24일 <'반 이건희' 이재현 회장 향응 폭로, 삼성 음모론 '솔솔'>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삼성 이건희 회장과 친형 이맹희 씨의 상속 소송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는 가운데 23일 오후 일부 매체에 의해 보도된 '이맹희 장남' 이재현 CJ 회장과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의 술자리 파문 기사는 이재현 회장 미행 노출로 수세에 몰린 삼성 측이 '역공'에 나선 것이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며 "실제로 기사가 보도된 후 24일 현재 트위터와 페이스북 블로그 등 각종 SNS에서는 이같은 글들이 수십건 씩 속속 올라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스포츠서울은 이 기사를 통해 "삼성 측은 보수진영 내에서 반 재벌 포지셔닝을 하고 있는 곽 위원장에 대해 매우 불편한 심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으나, 이 같은 관측을 제기한 재계와 정치권 관계자가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또 "'쿨 보수'를 자처하는 곽 위원장은 반 재벌의 정서를 지니고 있으며 삼성과의 사이도 극히 껄끄러운 것으로 알려졌다"는 매우 민감한 얘기를 전하면서도, 곽승준 위원장이 반 재벌의 정서를 지니고 있고 삼성과 사이가 좋지 않다고 보는 견해가 대체 재계 인사의 시각인지, 아니면 기자 본인의 생각인지도 명시하지 않았다.

    이외에도 이 기사에는 "또 한번 삼성의 대대적 정보전 공세가 시작됐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재계 일각에서는 삼성이 수세를 만회하기 위해 최근 이건희 회장이 직접 나서서 연일 '반 이건희 전선'에 맹공을 퍼붓고 있다는 시각을 보이고 있다"는 등, 온갖 '관측'이 등장하고 있으나 정작 이를 뒷받침하는 구체적 근거나 발언 주체가 전무(全無)한 상태다.

    "한국에서 삼성의 권력이 막강해 사람들이 ‘삼성공화국’이라고 부르는 이면에는 삼성의 막강 정보력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실제 정부를 뛰어넘는 정보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말이 심심찮게 나돌 정도다.

    삼성가의 상속 소송 분쟁이 격화하고 있는 가운데 진위 여부를 떠나 ‘반 이건희’ 세력으로 분류되는 이재현 회장의 3년 전 향응·접대 기사가 터지며 또 한번 삼성의 대대적 정보전 공세가 시작됐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지난 2007년 10월, 양심선언을 통해 삼성 비자금 문제를 폭로한 삼성 법무팀장 출신 김용철 변호사 사생활과 관련 소문이 증폭되면서 그 근원지로 삼성이 지목된 경우와 오버랩 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처럼 근거가 결여된 '상상' 만으로 다양한 의혹들이 제기된 반면, 직접 취재해 얻은 삼성 측의 입장은 단 한 줄 뿐이었다.

    …(중략)  삼성 측은 이에 대해 "전혀 관련 없는 내용이다"라고 말했다.

    팩트가 없는 루머 나열에, "사실 무근"이라는 당사자 측의 반박이 '한 줄' 들어간 이 기사는, '형평성'이나 '진실성' 면에서 이미 기사 요건을 상실한 글로 볼 수 있다.

    결국 해당 기사로 '오명'을 뒤집어 쓴 삼성 측이 반발을 보이는건 당연지사. 삼성그룹은 공식 채널인 '삼성 블로그'를 통해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과 이재현 CJ 회장이 가진 연예인 접대 술자리 내용에 대해 삼성은 알지도 못했고, 관련 내용을 언론사에 전달한 사실도 없다"면서 "해당 매체는 소셜미디어상에서 떠도는 소문만으로 근거없는 기사를 올린데다, 사실확인을 위한 기본 취재조차 하지 않았다"고 불쾌감을 표시했다.

    또 "'연예인 접대 술자리'를 보도한 해당 언론사를 취재하면 삼성이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을텐데 기사에는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았다"면서 "처음 이 건을 보도했던 경향신문과 서울신문이 정확하게 출처를 밝힌 것과 비교되는 부분"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곽승준 위원장이 이재현 CJ회장으로부터 부적절한 향응 접대를 받았다'는 기사를 단독 보도한 서울신문의 김OO 기자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곽승준 쪽에서 삼성 관련설을 흘리는 것 같다"면서 "해당 문건은 훨씬 전에 확보한 것으로 이번 삼성 소송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또 경향신문의 정OO 기자 역시 "문건은 이전에 확보했는데 공교롭게 지금 보도돼 논란이 된 것"이라며 "삼성 소송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실제로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은 24일 공식 브리핑을 통해 "당시(2009년)에 증권가 정보지 등을 통해 이러한 설이 꽤 알려졌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민정 수석실도 그런 설(수천만원대 향응설)을 인지하고 사실 관계를 파악해 봤는데 사실과 다르다고 확인했다"고 말했다.

    스포츠서울닷컴 4월 24일자 「'반 이건희' 이재현 회장 향응 폭로, 삼성 음모론 '솔솔'」에 대해 말씀 드립니다.

    스포츠서울닷컴은「곽승준, CJ회장과 룸살롱서 연예인 접대 술자리(경향신문)」, 「곽승준, CJ회장과 부적절한 술자리(서울신문)」보도와 관련한 추가기사를 쓰면서, 소셜미디어상에 떠도는 소문만으로 근거 없는 기사를 올렸습니다.

    스포츠서울닷컴은 네이버 뉴스캐스트에 기사를 공급하는 언론사로서 여론에 미치는 파급력이 큽니다.

    그만큼 중립성과 정확성을 철저하게 지켜야 할 것입니다.

    그런 언론사가 타 언론사의 기사를 인용해 기사를 작성하면서, 사실확인을 위한 기본 취재도 하지 않았습니다.

    기사는 특정 이해 당사자의 입장은 자세히 해명하면서 삼성의 입장은 기사 말미에 단 한줄 "전혀 관련 없는 내용이다"라고만 적고 있습니다.

    '연예인 접대 술자리'를 보도한 해당 언론사를 취재하면 삼성이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을텐데 기사에는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반 이건희 세력', '삼성공화국' 등 트위터 상에 떠도는 일부 트위터 사용자들의 의견을 그대로 전하면서 마치 그 의견이 사실인 양 호도하고 있습니다.

    처음 이 건을 보도했던 경향신문과 서울신문이 정확하게 출처를 밝힌 것과 비교되는 부분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 드리지만 삼성은 CJ회장의 술자리 접대와 관련한 내용을 알지도 못했으며 관련 내용을 언론사에 전달한 사실도 없음을 분명히 밝히는 바입니다.

    - 삼성그룹 블로그 '삼성이야기' 중에서

  • 서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체감경기가 수년째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권력집단의 배후조종설을 제기하는 각종 '음모이론(conspiracy)'이 각광을 받고 있다.

    '음모론'은 불가항력적인 절대권력을 지닌 존재가 왜곡된 정보를 흘려 대중을 오도(誤導)하고 우연을 가장한 각종 사건을 일으켜 모종의 프로젝트를 진행시킨다는 가상 이론이다.

    '몸통'으로는 대개 정부나 정보기관이 거론되기 일쑤인데, 국내에선 주로 청와대와 재계서열 1위 기업 삼성, 미국 정부 등이 이런 음모론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고 있다.

    그동안 '이휘소 박사 타살설', '박정희 피살 미국 배후설', '기아차-대우의 몰락 삼성 배후설', '미네르바 조작설', '천안함 폭침 자작극설' 등 다양한 음모이론이 등장했지만 하나같이 논거가 빈약해 정설로 받아들여진 경우가 거의 없다.

    하지만 각종 음모론을 접한 대중은 박약한 근거에도 불구, 이같은 루머를 쉽게 믿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특히 기득권으로부터 피해 의식에 사로잡힌 사람의 경우, 자신의 어려움을 정부나 특정세력 탓으로 돌리기 위해 음모론에 의지하기도 한다. 또 인터넷의 발달과 맞물린 지나친 '정보 취득 욕구'도, 검증되지 않은 각종 루머를 '고급 정보'로 착각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문제는 상상에 기초한 '음모론'이 사실이라고 입증하는 일도 힘들지만, 사실이 아니라고 대중을 설득하는 일이 그보다도 더 어렵다는 데 있다. 단순한 사건 나열만으로 인과 관계를 섣불리 단정지어 버리는 대중은 이에 대한 해명이나 반박자료가 나와도 "왜곡된 정보와 정보기관의 음모"라며 진실을 외면하는 습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번 '곽승준-CJ회장 술자리 기사의 배후가 삼성'이라는 음모론 역시 근거 없는 억측에 지나지 않지만 음모론 맹신자들에겐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여 질 수 있다.

  • ▲ '음모론'을 본격적으로 다룬 영화 '컨스피러시'.
    ▲ '음모론'을 본격적으로 다룬 영화 '컨스피러시'.

    이같은 다양한 음모론이 생겨난 직접적인 배경은 '정보소통의 불균형'이나, '빈부격차의 심화', '심리적 불안감', 일부 대중에게 심어진 유무형적인 '피해 의식' 등이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음모론자들이 전 세계에 양산(量産)된 데에는 '선정적 매스미디어의 발달'이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는 게 다수 사회학자들의 중론이다.

    지금도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로스웰 UFO 추락사건', '9·11 테러'와 '에이즈 확산', '케네디 암살 사건', '그림자 정부' 등 다양한 가십 정보들을 만날 수 있다. 물론 개중엔 어느 정도의 팩트를 갖고 있는 경우도 있으나 기본적인 골자는 허무맹랑한 상상 속 이야기로 점철 돼 있다. 한심한 사실은 2001년 미국 뉴욕에서 발생한 911 테러와 1963년 일어난 케네디 암살 사건은 범행과 관련된 인과 관계가 명백히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음모론의 대표 케이스로 거론되고 있다는 점이다.

    다수의 루트를 통해 비슷한 정보를 자주 접하게 되면 그것이 설사 잘못된 내용이라 하더라도 한번쯤 의혹을 품게 되는 계기로 발전할 공산이 있다. 하물며 주류 언론에서 검증도 되지 않은 가설을 함부로 흘릴 경우, 해당 정보가 어떤 파장을 불러 일으킬지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이와 관련, 한 경찰 관계자는 "삼성의 대·내외적 위상이 날로 높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일부 매체의 보도처럼 이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하는 것도 곤란하다"며 "기업 특성상 각 분야의 정보 취득을 할 수는 있겠지만 누군가 이를 토대로 공권력을 넘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고 믿는 건 심각한 착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