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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상석 경제부 기자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재미있는 연구결과를 하나 내놓았다. 이 재단이 발표한 '2013년 언론인 의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한민국 기자들은 4년 전인 2009년에 비해 언론 환경이 나빠지거나 제자리걸음 상태인 것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기자들이 제시한 원인으로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그 중 돋보이는 점은 '편집·보도국 내 사기(士氣) 저하'를 요인 중 하나로 꼽았다는 것이다.
직원의 사기가 사세(社勢)에 영향을 미치는 게 단지 언론사와 기자들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어떤 회사, 어떤 조직이든 직원의 낯빛이 어두운 곳 보다는 밝은 곳이 발전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가정은 굳이 증명을 거치지 않아도 누구든 수긍할 수 있는 당연한 명제이리라. 한마디로 회사의 발전을 위해서는 직원의 기를 살리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말이다.
지난 20일 퇴임한 윤용로 전 외환은행장은 '직원 기(氣) 살리기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해낸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가 처음 행장으로 부임했을 때, 직원의 낯빛이 어두운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외환은행은 불과 수 년 전까지만 해도 외국 투기자본인 '론스타'의 지배하에 놓여있었다. 론스타가 떠난 후엔 하나금융지주 계열은행으로 들어갔다. 투기자본의 수족이라는 본의 아닌 오명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남의 집 서자로 들어가는 처지가 됐으니, 외환은행 구성원으로선 기분 좋을 리 없는 상황이었다.
윤 전 행장은 "직원들이 출퇴근할 때 표정을 가만히 지켜보니, 출근할 때 표정과 퇴근할 때 표정이 똑같더라"고 회고했다. 모두 어두웠다는 뜻이다.
그는 즉시 '직원 기 살리기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외환은행에 근무하는 모든 임직원에게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는 일을 개시한 것이다. 그는 특별한 일정이 없는 한, 항상 일선 영업점을 찾아 현장 직원을 위로·격려했다. 을지로 본점에서 업무를 볼 때도 점심시간엔 가능한 한 일선 직원들과 식사를 함께 했다.
거리상의 이유 등으로 직접 대면하지 못한 직원에겐 일일이 전화를 걸어 대화를 나눴다. 이 일은 그의 임기가 끝나기 직전까지 계속됐다. 윤 전 행장은 "이임식 전날인 19일까지 전화 통화를 한 끝에 모든 임직원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 결과 조직의 분위기는 많이 쇄신된 모습을 보였다. 윤 전 행장 이임식은 타 은행의 이·취임식에 비해 비교적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그가 한 번 씩 농담을 던질 때마다 직원들은 웃음으로 화답했다. 마지못해 웃는 억지웃음이 아니라는 점은 이 날 그의 태도를 통해 증명됐다.
윤 전 행장은 마지막 이임사를 하면서까지 "여러분, 제 말이 너무 길죠? 미안해요. 하고 싶은 말이 많다 보니…"라며 임직원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기 살리기 프로젝트'는 외환은행의 대내외적 환경 개선에도 상당히 이바지한 것으로 보인다. 윤 전 행장 취임 이후 외환은행 고객은 눈에 띄는 증가세를 보였다. 2011년 766만명이던 고객은 2012년 785만명, 2013년 804만명으로 늘었다.
론스타 시절 급감한 외환카드의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리려고 윤 행장 취임 직후 개발한 '2X카드'는 출시 13개월 만에 100만장을 돌파, '윤용로 카드'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아랍에미리트·필리핀·중국 등으로 해외 네트워크를 넓혀 '외국환 명가(名家)'로서의 외환은행 이미지를 재구축하는 데 이바지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윤 전 행장의 후임으로 김한조 신임 행장이 21일 취임했다. 외환은행 내부 출신인 김 행장은 현재 근무 중인 외환은행 전 구성원 중 맏형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환은행이 론스타의 지배를 받던 시절, 그는 론스타의 부당한 지시에 불복한 것으로 유명하다. 중소기업 대출금리를 인상하라는 지시에 "금리를 올리면 중소기업 고객들이 은행을 떠나게 되고 그러면 은행의 가치가 훼손된다"며 거절한 것.
누구보다도 외환은행을 잘 알고 있을 외환은행의 '맏형' 김 신임 행장. 그가 '기 살리기 프로젝트'를 지속해서 외환은행의 발전을 계속 이어나갈 것으로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