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기 살린 것이 가장 기뻐… 하나은행과 사이좋게 지내길"
  • ▲ 윤용로 외환은행장이 20일 열린 이임식을 마지막으로 외환은행을 떠났다. ⓒ 연합뉴스
    ▲ 윤용로 외환은행장이 20일 열린 이임식을 마지막으로 외환은행을 떠났다. ⓒ 연합뉴스


    "나 간다니까 표정 갑자기 좋아지는 사람들 있네… 그렇게 좋아요? 진심이 다 드러나요. 연기해도 소용없어!"

윤용로 외환은행장이 이임식에서 꺼낸 농담조의 첫 마디다, 윤 행장은 20일 외환은행 을지로 본점에서 열린 이임식을 마지막으로 외환은행을 떠났다.

떠나는 윤 행장의 표정은 밝았다. 그는 "은행장이 되어 첫 출근을 했을 때 직원들을 보고 놀랐다. 출근할 때와 퇴근할 때의 표정이 똑같았기 때문이다. 하나같이 어두웠다"며 특유의 유쾌한 어투로 말문을 열었다.

그는 직원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한 여러 노력들을 떠올리며 감회에 젖었다. 공식 일정이 없는 날엔 항상 영업점에 찾아가 현장 직원들을 격려하고, 본점에 있는 날에도 가급적 점심식사는 직원들과 함께 했다.
 
여러 이유로 직접 만나서 격려하지 못한 직원에게는 전화 통화를 통해서라도 응원했다. 이런 여러 방법으로 외환은행의 모든 직원들과 대화하는 일은 이임식 전날인 19일에야 마무리됐다고 윤 행장은 말했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갈수록 여러분의 표정이 밝아지는 것이 보여 기쁘다"고도 했다.

윤 행장은 외환은행 직원들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외환은행과 하나은행이 힘을 합쳐 함께 해야 한다"며 하나금융그룹 내 두 은행의 통합 필요성을 강조한 것.

"지금 여러분이 하나은행과 서먹하게 지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지금까지의 성장배경이 너무나도 달랐고, 외환은행이 금융지주사 산하에 들어간 지도 얼마 안됐으니까요. 하지만 하나은행을 내부의 경쟁자로만 감성적으로 접근할 건 아닙니다. 우리의 경쟁자는 다른 금융그룹, 나아가 글로벌 금융사들이니까요"

윤 행장은 임직원들에게 "대승적 견지에서 열린 마음으로 하나금융 내 다른 회사들과의 시너지 창출에 속도를 내 주기를 부탁한다"며 "하나은행이 잘하는 게 있다면 과감하게 받아들이고, 우리가 잘하는 것도 하나은행에 전수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변화와 혁신을 두려워 말고 큰 틀에서 은행의 조직문화를 개선하고 정착시켜 나가는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며 "조직 구성원의 원활한 소통, 고객 신뢰 확보, 공정한 보상과 책임, 직원 간 존중과 배려, 능력과 역량을 펼칠 공평한 기회 등 바람직한 기업문화를 위해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고 말했다.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된 이임식이었지만 윤 행장도 순간 감정이 흔들렸다. 외환은행의 한 직원이 보낸 메일을 소개하는 순간이었다. 메일에는 "행장님 정말 최고였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는 감정이 복받친 듯 말을 잇지 못하다가 잠시 후 화답했다.

"정말 고맙습니다. 여러분도… 정말 최고였습니다."

임직원이 윤 행장에게 감사패와 기념품을 전달하면서 이임식이 마무리를 향해갈 무렵,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이 이임식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 회장의 방문은 예정에 없던 '기습 방문'이었다.

김 회장 역시 화기애애한 말투로 윤 행장이 떠나는 길에 축복의 뜻을 전했다.

"저와 윤 행장이 얼마나 막역한 사이인지는 다들 잘 아실 테고… 임직원 여러분은 여러 사람의 뜻을 보아 선물을 전달했죠? 저도 윤 행장에게 선물 하나 줄 겁니다. 이건 여러분들의 선물과는 달리 순전히 제 혼자 부담해서 준비했다는 게 중요합니다(웃음)"

김 회장은 윤 행장에게 '하나금융과 외환은행은 하나'라는 의미의 숫자 1 모양의 순금을 전달했다. 그는 "윤 행장을 떠나보내게 되니, 저 자신도 기분이 좋지 않다"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이임식을 마친 윤 행장은 외환은행 본점 로비에서 직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외환은행장으로서의 공식 일정을 마무리했다. 윤 행장은 로비에 모인 직원들에게 덕담을 하며 박수를 쳤고, 직원들 역시 박수로 화답했다. 향후 계획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당분간 휴식을 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행정고시 21회로 공직생활을 시작해 금융감독위원회(현 금융위원회) 공보관과 부위원장을 지낸 윤 행장은 2007년 기업은행장을 지내고 2011년 하나금융 부회장을 거쳐 2012년 외환은행장에 취임하면서 '민간 금융인'으로 변신했다.

과거 외환은행의 대주주인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의 '잔재'를 청산하려고 애썼으며, 아랍에미리트·필리핀·중국 등으로 해외 네트워크를 넓혀 '외국환 명가(名家)'를 재구축하는 데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외환은행 고객은 2011년 766만명에서 2012년 785만명, 2013년 804만명으로 증가했다.

론스타 시절 급감한 외환카드의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리려고 윤 행장 취임 직후 개발한 '2X카드'는 출시 13개월 만에 100만장을 돌파, '윤용로 카드'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