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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지난달 말 국토교통부 장관 앞으로 탄원서를 제출한 대한항공 노조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아무리 치열한 경쟁관계에 놓여 있다고는 하지만 상도의를 벗어난 행태에 같은 국적 항공사로서의 체면마저 구긴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지난달 29일 대한항공 노조는 탄원서를 통해 "아시아나 항공이 운항정지가 아닌 손실이 적은 과징금 처분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인명과 재산 피해를 입힌 중대한 항공기 사고가 조종사 과실로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과징금 납부로 면죄부를 받을 수 있다면 누가 항공안전을 위해 막대한 투자와 훈련을 할 것이며, 안전대책을 강구하겠냐. 사고가 나도 돈으로 메울 수 있다는 식의 잘못된 인식이 확산되지나 않을지 실로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쟁사 노조에서 상대 항공사의 징계를 요구하는 탄원서를 정부에 제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일반적 상식수준의 경쟁이 아닌 도를 넘어섰다는 지적까지 제기되는 이유다. 아시아나 노조가 국토부에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내자, 노조차원의 대응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대한항공노조가 탄원서를 통해 입을 모아 주장하는 사연은 지난 1999년 런던 화물항공기 사건에 대한 국토부의 징계 부분이다. 대한항공 상해사고(1999.4.15)의 경우, 사고조사발표(2001.6.5)가 있은 후 5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노선면허를 취소(2001.11.19)하는 행정처분이 내려졌다.
아시아나항공 사고 관련 국토부의 행정처분이 지지부진하다는 일각의 주장은 현재 사고조사발표 이후 2개월이 지난 시점이다. 오히려 과거 사례보다 신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경쟁사 노조가 나서 타당성을 논하기에는 아직 이른 것이 아닐까?
과거 대한항공은 이에 불응,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사실상 상해사고 관련 아무런 제제도 받지 않았다. 런던공항 사고(1999.12.22) 역시 한국 정부에 의한 운항정지 처분이 내려지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대한항공은 상해사고 및 런던사고에 대해 운항정지 처분을 받은 바가 없다.
국토부에 따르면 현행법상 항공기 사고로 인한 행정처분시 승객 불편 등의 피해가 예상될 경우 과징금을 통한 처분으로 대체할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때문에 과징금을 통한 행정처분 역시 명백히 법적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합법적인 처분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대한항공은 경쟁사 노조가 경쟁사에 대한 신속한 행정처분을 내리도록 요구했다. 아무리 양사가 경쟁업체라지만 정부의 결정이 나오지도 않은 상황에서 대한항공 노조가 타사에 대한 행정처분에 대해 탄원서를 제출한 점을 두고 업계는 물론,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 민간전문가들 역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역지사지'다. 항공사간 영업 관계에서 경쟁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그 경쟁은 공정한 토대 위에서 진행돼야 한다. 더욱이 안전 및 사고에 대해서는 그 어떤 항공사라도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사고에 대한 논란의 여지도 남아 있다. 사고 주원인으로는 조종사의 과실(mismanagement)에 무게가 쏠렸지만, 너무나 복잡한 장치와 메뉴얼 부적절을 이유로 항공기 제조사인 보잉사에도 시정권고가 함께 내려졌다. 당시 아시아나측은 인적 과실외에 속도보호 기능 결함 등 복합적인 요인이 비상착륙을 초래했다고 강조했지만, 자국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작정하고 나선 NTSB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
특히 항공안전을 위해서라면 경쟁은 잠시 잊고 동종업계로서 협력해야 한다. 국적항공사 끼리라면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사의 단기적인 반사이익을 위해 경쟁사의 운항정지를 요구하는 대한항공 노조의 행동은 항공업계 맏형으로서의 자격을 의심케 한다. 대한항공은 단순히 노조의 단독적인 행동으로 국한하고 있다. 회사 차원의 보다 책임감 있는 모습이 아쉬운 이유다.
항공기사고는 피해 가족들의 고통과 상처는 물론, 전 세계인들을 슬픔과 공포로 몰아간다. 사고가 발생했다는 소식은 연일 신문과 방송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실시간으로 소식이 타전된다. 절대 발생해서는 안 될 일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대한항공 노조가 아시아나항공의 징계 수위를 낮춰 달라는 탄원서를 전달했더라면 국민들도 대한항공노조의 통큰 행동에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