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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년 전 현대캐피탈 할부거래를 통해 차를 구입한 류 모씨(48)는 몇 달 전 차를 팔기 위해 자동차매매상을 방문했다가 자신의 차량에 현대캐피탈 명의로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는 것을 알았다. 할부금액을 모두 갚은 지 5년이나 지났지만 아직까지 근저당권이 살아있는 상태였다.
류 모씨는 현대캐피탈에 "5년 전 할부금액을 모두 갚았다"고 항변했지만 상담원은 "근저당권 해지는 차량 소유자가 해야한다. 1만원대의 비용을 지불하면 대행업체가 대신 해지해준다"고 답했다.
근저당권을 해지하는 데 또 돈을 내라는 현대캐피탈 상담원의 황당한 답변에 류 모씨는 금융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했다.
하지만 금융위의 답도 황당하긴 마찬가지였다. 약관상 할부금융사는 근저당권 해지에 대한 아무런 법적 책임이 없고, 차량 소유주가 확인하고 조치해야 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류 모씨는 "돈을 빌려준 사람이 설정했으면 돈을 다 받은 후엔 해지하는 것이 맞지 않냐"며 "차도 못 팔게 몇 년 동안 그대로 놔두고, 심지어 또 돈을 내고 대행업체에 해지업무를 맡기라니 울화가 치민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현대캐피탈이 자동차 할부금을 모두 상환한 소비자에게 근저당 해지 비용을 떠넘기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7일 할부금융업계와 자동차매매업계 등에 따르면 할부금융사(캐피털)들은 차를 할부로 구입하는 소비자들의 체납 등을 방지하기 위해 해당 차에 근저당을 설정하고 있다.
문제는 할부금융사들이 자동차 할부금융 계약 시 과도하게 근저당권을 설정하고, 소비자가 할부금을 모두 상환해도 금융사들이 설정해 놓은 근저당을 해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처럼 근저당이 계속 잡혀 있을 경우 할부금융사는 아무런 불이익이 없지만, 소비자들은 차량 양도 등 재산권 행사에 제한이 있다.
할부금융사들은 이같은 문제를 인지하고 있음에도 근저당 해지 비용을 고객에게 떠넘겨 온 것이다.
실제로 근저당을 해지하기 위해선 1만원대의 비용을 들여 대행접수를 하거나 금융사를 직접 방문해 1만원 이하의 금액을 들여 직접 해지해야 한다.
결국 소비자들은 할부금 상환 후에도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근저당 해지 업무를 직접 처리하고 있다.
할부금융사의 취급실적 중 자동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7년 84.8%(8조6670억원), 2008년 89.0%(10조3660억원), 2009년 88.7%(6조1564억원), 2010년 88.0%(9조2018억원), 2011년 83.6%(9조2154억원), 2012년 86.2%(8조9193억원) 등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1년만 제외하고 매년 거의 90%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해지비용 모두 소비자 몫인 점을 고려하면 지금까지 자동차 근저당 취급 수수료로 고객들이 부담한 금액은 최소 수천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한 캐피탈사 관계자는 "자동차 할부가 끝나면 우편으로 근저당권 해지에 대한 안내문을 발송하기도 하지만 장기간의 할부기간 주소가 바뀌는 경우가 많다"면서 "해지 업무에 대해서 안내문 외에 별다른 고지를 하지 않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소비자가 보다 쉽게 해지할 수 있도록 금융사에서 서류를 제공해 주는 등 소비자 부담을 줄이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