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품 인증만 받으면 끝?... "완성품 대상 규제 공백에 '중기적합업종' 선정 유명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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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 제품들은 기사와 무관합니다. ⓒ뉴데일리경제DB.
전자파로부터 안정성이 검증되지 않은 컴퓨터들이 넘쳐 나고 있다. 유명무실한 전자파 인증제도 때문이다.
2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컴퓨터는 판매자를 기준으로 크게 조립 PC와 완성품으로 나뉜다. 조립 업체는 전자파 인증을 통과한 PC 부품을 쓸 경우 별다른 절차 없이 제품을 조립해 내다 팔 수 있다.
컴퓨터를 구성하는 메인보드(마더보드)와 CPU, 메모리, 그래픽카드 등 핵심 부품들이 모두 인증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추가적인 검증이 생략되는 것이다.
하지만 부품에 대한 인증을 마쳤다고 해서 전자파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다. 여러 부품이 섞이면서 간섭에 의한 예상치 못한 전자파가 과도하게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전자파 발생 여부를 정확히 따지려면 완성품 자체를 두고 점검을 실시해야 한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정부 역시 이 같은 이유로 완성품에 대한 전자파 인증을 받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까다로운 제도를 합법적으로 피해갈 수 있는 구멍도 함께 열어뒀다.
'인증을 통과한 부품을 사용했지만, 완성품에 대해선 인증을 거치지 않았다'고 표시할 경우 복잡한 절차를 비켜갈 수 있도록 길을 터준 것이다.
사실상 '이중 잣대'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된 셈이다. 시장 상황이 이렇다 보니, 완성품에 대한 인증을 받는 것이 오히려 바보라는 얘기까지 흘러 나오고 있다.
특히 삼성, LG 등 대기업은 물론, 삼보컴퓨터, 주연테크 등 중소기업들도 고객 신뢰와 회사 브랜드 이미지상 완성제품에 대한 전파인증을 반드시 받아야만 한다.
정부는 현재 전자파와 전기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 인증제도를 두고 있다. 인증을 하나 따는 데 드는 비용은 컴퓨터 1개 모델 당 평균 100~150만원 수준으로 완성품 중 샘플을 추려 점검이 이뤄진다. 기준을 넘지 못한 제품은 합격할 때까지 시험을 계속 봐야 한다.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브랜드 완성품 업체들은 정부의 인증제도에 순응하고 있다. 전자파 위험에 노출된 제품을 판다는 우려로부터 거리를 두기 위해 번거롭지만 인증 절차를 밟고 있다.
하지만 인증 비용은 제품 가격에 고스란히 포함된다. 때문에 완성품은 조립 PC보다 10만원가량 비싸게 거래된다.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 조립 PC 시장은 완성품을 밀어내고 해마다 가파른 성장을 거듭, 한 때 전체 컴퓨터 시장에서 50%가 넘기도 했다.
완성품 업체들이 힘을 못 쓰면서 결국 전자파 인증을 통과하지 못한 제품들로 시장이 채워지고 있는 꼴이다.
이 같은 시장 상황이 지속되면서 삼성, LG 등 대기업의 경우 A/S 등 제반 비용 포함시, PC 한대 팔아 1만원 남기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제품 포트폴리오 구축상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사업을 유지중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정부가 PC를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까지 선정하면서 중소기업 보호에 나섰지만, 조립시장이 찬물을 끼얹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 측은 조립 PC와 완성품이 내뿜는 전자파 수치가 크게 차이 나지 않다고 말하지만 문제는 조립 PC에 어떤 부품을 쓰는지 예단하기 어렵다는 점"이라며 "실제 관련 기기로 점검한 결과, 부품 자체로는 기준을 통과하지만, 다른 부품들과 조립됐을 때 전자파를 과도하게 일으키는 제품이 시중에 나돌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그는 "조립 PC의 경우 조달해 온 부품 업체가 문을 닫게 되면 사실상 사후 관리가 불가능하다"면서 "완성품보다 조합이 잘 된 조립 PC가 더 뛰어난 성능을 내기도 하지만,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도 큰 만큼 관련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