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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희의 컬쳐 홀릭] 그러니까 이 책을 접했던 게 벌써 10여년도 더 된 것 같다.
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 가난한 곳 괭이부리말의 가난한 아이들이 보여주는 결코 가난하지 않은 이야기이다.
저마다 가슴 아픈 사연을 품고 사는 각각의 캐릭터들은 서로를 보듬어 주고 위로하며 일견 희망이 없어 보이는 그곳에서 꿈을 안고 살아간다. 책을 읽는 내내 그들에게 미안하고 대견스러운 마음이 저절로 이입되며 기대 이상의 감동을 느꼈던 기억이 어슴푸레 떠오른다.
소설에서 가난은 이처럼 아름답게 승화되기도, 때로 포장되기도 한다. 영웅이 되기 위해 극복 가능한 장애물. 이것이 문학에서 쓰이는 가난의 속성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현실은 어떠한가? 빈부격차는 마치 넘을 수 없는 장벽처럼 날이 갈수록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소설의 속성을 뒤집기라도 하듯 현실의 그것은 극복 불가능한 장애물일 뿐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미화된 가난은 소설에서나 존재하는 한낱 판타지에 지나지 않는다.
며칠 전 실시간 검색어에 너무도 생소한 단어의 조합이 올라있었다. 일명 가난의 상품화. 미성숙한 자들이 만들어낸 기가 찬 아이디어 문화관광 상품이란다. 관광지 개발에 따른 이익 창출이라는 그럴 듯한 목표는 관광객에게는 “체험 삶의 현장”이 되겠지만 그 곳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에게는 결코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을 발가벗겨진 채로 전시하는 것 이상일 수 없으리라. -
인천 동구 만석동. 괭이부리마을로 불리는 이곳의 쪽방촌 체험관 계획은 여론의 뭇매에 떠밀려 그렇게 자동 폐기된 형국이 되어버렸다. “평소 조례안 심사 때보다 오랜 시간 심의를 했다”는 동구의회 관계자의 말에 실소를 금할 수가 없다.
조례안이 통과되면 체험관 운영을 강행하려던 동구청의 강한 의지는 어디로 간 것인지, 이는 결국 자신들의 실수에 대해 심사숙고했다는 의미인가? 치적을 만들어내기 위한 졸속행정이 빚어낸 하나의 해프닝이라고 하기에는 실로 어이없을 따름이다.
가난을 체험한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경험하지 못했던 과거를 학습한다는 의미를 가질 수 있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감추고 싶은 현재진행형의 고단하고 남루한 삶일 뿐이라는 사실은 아마도 심사숙고 대상에서 제외됐던 모양이다.
주민들과의 소통을 논하기 이전에 한번이라도 그들의 입장에서 역지사지(易地思之) 해봤다면 매우 간단하게 정답이 나왔을 말도 안 되는 이번 일은 우리 사회의 최빈곤층을 ‘을’로 치부해버린 또 다른 갑질이 아닐 수 없다.
서울 창신동의 성공사례를 어설프게 벤치마킹 하려던 것이었을까? 문화관광 상품 개발이라는 인천 동구의 그럴싸한 목표는 괭이부리마을 사람들의 가슴에 생채기만 낸 채 한편의 웃지 못 할 소극으로 그렇게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