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500조 기업부채가 공포스럽다.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부는 이유다.ⓒ연합뉴스
    ▲ 1500조 기업부채가 공포스럽다.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부는 이유다.ⓒ연합뉴스


    도대체 우리나라 기업들이 지고 있는 부채 규모는 얼마나 될까.

    금융권에서는 대략 1500조 안팎으로 추산한다. 반면 일부에서는 그 규모가 벌써 2000조에 육박했을 것으로 본다. 지난해말 기준 30대 그룹의 부채 총액이 1739조에 이른 것을 근거로 삼는다.

    들쑥날쑥 부채규모가 춤을 추자 금융위원회는 최근 기업부채의 정확한 현황을 파악 중이다. 어떤 기업이 얼마나 많은 부채를 어떤 형태로 보유하고 있는지 등을 집중적으로 들여다 보고 있다.

    얼마전에는 17개 시중은행 여신담당 임원을 불러 채권단의 엄정한 신용평가 요구와 함께 은행별 기업여신 규모 제출을 요청했다. 에둘러 '엄정한 평가'라는 말을 썼지만 실상은 살려야 할 기업과 정리해야 할 기업을 가리라는 압박이었다.

    빚더미 기업들의 부채상환능력에 적신호가 켜졌고 우리나라 금융시스템상 1100조의 가계부채를 능가하는 최대의 악재로 작용할 공산이 커졌기 때문이다. 좀비, 강시, 한계 등 듣기에도 섬뜩한 기업들의 별칭이 공포스럽다.

     

  • ▲ 상장사의 30%가 좀비기업이다. 자산 120억 이상 기업 5282곳이 자본잠식 상태다@
    ▲ 상장사의 30%가 좀비기업이다. 자산 120억 이상 기업 5282곳이 자본잠식 상태다@

     
    ◇ 상장사의 30%가 좀비기업....자산 120억 이상 5282곳 자본잠식

    3년 이상 영업이익으로 이자 조차 갚지 못하는 기업을 한계기업이라고 한다. 초저금리 시대를 맞아 예전 보다 그 수가 줄어야 하지만 현실은 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도태되거나 망할 기업들이 연 1.5%의 최저 기준금리 덕에 연명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행 금융안정 보고서에 따르면 한계기업은 2009년 2698개에서 지난해 3295개로 늘었다. 금융감독원은 은행 빚을 쓰고 있는 자산 120억원 이상 기업 가운데 5285곳이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공정위에 따르면 자산 5조 이상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48개 가운데 절반에 달하는 23개 그룹의 부채비율이 200%를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연구원은 전체 상장사(2013년 기준) 중 이자보상비율이 100%를 밑돌고 부채비율은 200%를 웃도는 이중 부실 기업이 2010년 93개사에서 2013년 177개사로 대폭 증가했다는 보고서를 냈다.

    상장기업의 30%도 좀비기업에 가깝다. 통상 좀비기업은 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값인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 즉 사업해서 번 돈으로 부채 이자조차 갚지 못할 정도로 활동이 부진한 기업을 가리킨다.

    코스피 등 3개 증시에 상장된 12월 결산기업의 2010~2014년 손익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상장사는 2010년 425개사(24%)보다 94개사가 늘어난 519개사로 전체의 29.9%에 달했다. 중소·중견·대기업 모두 예외가 없었다.

     

  • ▲ 상장사의 30%가 좀비기업이다. 자산 120억 이상 기업 5282곳이 자본잠식 상태다@

     

    ◇ 대기업이 더 심각

    으레 대기업의 사정은 중소기업이나 중견기업 보다 훨씬 나을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최근의 실상은 딴판이다.

    동부제철이 극명한 사례다. 이 회사는 올 상반기에 29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이자는 970억원에 달했다. 3조원이 넘는 부채 때문이다. 부채 비율이 무려 9000%에 육박한다. 1조5000억원을 들여 전기로를 만들었지만 전기료를 내지 못해 단전 위기에 몰렸고 결국 가동이 중단됐다. 채권단의 자금수혈로 가까스로 연명만 하고 있다.

    대기업 중에서 한계기업 비중은 2009년 9.3%에서 지난해 14.8%로 빠르게 증가했다. 이는 같은 시기 중소기업의 한계기업 비중(15.3%)에 근접한 수치다.

    6월말 기준 은행권의 부실채권비율은 1.50%로 1분기(1.56%)보다 하락했지만, 대기업의 부실채권비율은 2.35%로 1분기(2.31%)보다 높아졌다. 연체기간이 3개월이 넘는 고정이하 여신이 크게 늘고 있다. 같은 기간에 대기업 연체율 역시 0.84%로 0.10%포인트 올라갔다.

    부채비율이 200%를 초과하는 동시에 이자보상배율이 1.00배에 미달하는 부실(징후)그룹의 수는 2007년 2개에서 2010년 5개, 2011년 6개, 2012년 및 2013년 10개, 2014년 10개로 2012년 이후 부실(징후)기업이 10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10개 부실(징후)기업 그룹에는 이미 워크아웃 등 구조조정 절차에 들어가 사실상 그룹해체 상태에 있는 STX, 동양, 웅진, 대한전선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2014년 말 기준으로 동부그룹은 2007년 이후 8년 연속, 한진그룹은 2008년 이후 7년 연속, 현대그룹과 한진중공업그룹은 2011년 이후 연속 4년 연속, 동국제강그룹과 대성그룹은 2012년 이후 3년 연속 부실(징후)그룹에 포함되는 등 '장기부실 상태'에 빠져있다.

    두산, LS, 대림, 대우건설, 동국제강, 코오롱, 한라, 대성, 하이트진로, 한솔 등은 부채비율이 200~300% 사이다. 부채비율 300~400%에 해당하는 기업은 한화, 부영, 효성, 이랜드,  400% 이상은 한진(863%), 금호(404.3%), 동부(864.2%), 한국GM(457%), 현대(879%) 등이었다. 

    이자보상배율이 1.00배 미만인 기업은 GS, 현대중공업, 한화, 대림, 동부, 현대, S-Oil, 동국제강, 한진중공업, 한국GM, 태영, 대성, 한솔 이었다. 대기업의 부실화 수준이 1997년 외환위기 당시와 비슷하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 ▲ 상장사의 30%가 좀비기업이다. 자산 120억 이상 기업 5282곳이 자본잠식 상태다@


    ◇ 좀비기업과의 전쟁

    정부는 경기가 좋지 않다 보니 기업의 상환능력이 떨어졌고, 그 가운데 일부는 상환능력이 없음에도 내부적인 구조조정이나 혁신 등 성과를 높이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고 판단한다.

    지금은 국내 자본시장이 안정돼 위험 기업들의 자금 조달이 가능해지면서 차입금으로 생존할 수 있지만 자칫 글로벌 경기 침체의 여파로 업황이 더 나빠지면 금융권의 부실로 전이될 것을 우려한다. 미국의 금리 인상과 중국발 불안 등을 고려해 수시로 스트레스 테스트도 실시하고 있는 금융당국은 본격적인 좀비기업과의 전쟁을 대비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지난 8월부터 좀비기업에 대한 강력한 구조조정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채권 은행들을 앞세워 거듭 엄정한 잣대를 주문하고 검사·감독도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출 예정이다. 금융사가 기업부채에 충분한 충당금을 쌓고 있는지, 여신심사를 적절히 하는지, 한계기업에 대한 정리 정책을 제대로 구사하고 있는지 살피겠다는 것이다.

    물리적인 구조조정 강도도 높이고 있다. 우선 시중은행의 부실채권 관리 회사인 유암코(연합자산관리)를 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로 확대 개편하기로 했다. 제도적으로는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추진 중이다. 올해 말 일몰 예정인 기업구조조정 촉진법을 상시화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앞서 금융감독원은 지난 5월 재무구조 개선이 필요한 그룹사를 선정했다. 7월에는 구조조정 대상 대기업 명단을 확정했다. 정보공개의 사각지대에 있는 비상장 외부감사 법인도 전수조사해 밀착 감시 대상을 압축해 나가고 있다. 2만여 곳 중 소수 거래처에 매출채권이 집중되거나 우발채무가 큰 업체 300여 곳을 1차로 추린 후 20개사를 선정했다.

    지난 11일에는 중소기업들의 신용위험평가 결과를 발표하면서 좀비 중소기업 175곳을 솎아내겠다고 밝혔다. IMF이후 최대 규모다.

    당국은 이번 발표를 신호탄으로 채권단과 법원을 중심으로 한 기업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유암코 등 시장 주도의 구조조정에 더욱 속도를 낼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