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상속세 최대 60% 부담… OECD 1위세부담에 국내 산업 및 증시 활력 걸림돌로대주주 해외 이탈 가속… 투자·고용 악순환 반복대통령실 "세계 최고 수준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野, 최고세율 인하 반대에 '유산취득세' 대안 등 논의
  • ▲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일대 ⓒ뉴시스
    ▲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일대 ⓒ뉴시스
    야당이 증시 부양의 발목을 잡는 요인으로 지목받아온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에 동의한 가운데 침체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25년 동안 그대로인 상속세를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오랜 시간 고쳐지지 않는 상속세율로 중산층마저 과세 대상이 된 문제도 있지만, 징벌적 상속세 부담에 주가 부양을 억누르거나 해외로 떠나는 자산가들이 많아 본격적인 상속세율 부담 완화 논의로 경제활력을 모색해야 한다는 얘기다.  

    5일 정부당국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 상속세는 최고세율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일본(55%)에 이어 2번째로 높은 50%다. 대주주의 경우 상속평가액에 가산세를 물리고 있어 최대 60%의 상속세를 내야 한다. 사실상 OECD 회원국 중 1위다.

    정부는 최고세율을 기존 50%에서 40%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열고 "세계 최고 수준인 상속세 최고세율을 인하하고, 하위과표 구간 및 자녀 공제 금액도 대폭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성 실장은 이어 "현재의 상속세제는 거의 1950년대에 만들어졌고 우리와 같은 세금 체계는 4개 국가 정도만 유지하고 있다"며 "일단은 이것을 유산취득세 형태로는 변경해야 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일부 몇 가지만 변경해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세금 체계 자체를 더 분석하고 전반적으로 접근해야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라며 "장기적으로는 유산취득세뿐 아니라 자본이득세로의 전환 역시 생각해 볼 수 있다"고 했다.

    기획재정부는 유산취득세 전환을 위한 개편 방안을 마련 중이며,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유산취득세 도입에 대해 '중산층 세 부담을 줄일 수 있다'며 긍정적이다. 다만, 상속세율 완화에 대해선 '부자 감세'라며 반대하는 상황이라 여야 공방이 예상된다. 

    다수의 전문가는 경기부양을 위해 장기적으로 상속세 폐지로 가야하는 상황에서 야당의 이같은 반대는 국내 산업과 증시 활력에 큰 걸림돌이 된다는 입장이다. 이인실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대주주 세금까지 고려하면 전 세계 최고 세율을 걷는 국가에서 누가 기업을 운영하고 싶겠느냐"며 "기업은 영속성이 있어야 하는데 자식한테 물려주는 순간 60%씩 없어지면 회사 존속 자체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교수는 "상속받은 재산에 세금을 물리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실질적으로 팔았을 때 양도소득세처럼 세금을 걷는 게 맞다"면서 "상속세를 점차 내리다가 폐지를 검토하는 등 해외 사례처럼 점진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과도한 상속세로 기업 경영을 포기하거나 집안 다툼으로 번지는 사례는 최근에도 다양하게 찾아볼 수 있다. 실제로 고(故) 김정주 NXC 창업자가 추진하던 비게임 신사업이 최근 대거 정리됐는데, 오너 일가가 10년간 납부해야 하는 상속세 규모가 1조4000억원에 육박하는 만큼 자금 마련을 위한 방안이란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도 최근 삼성전자 지분 524만7140주를 시간 외 대량매매(블록딜) 방식으로 매각했다. 이 사장은 1월에도 삼성전자(240만 주)와 삼성물산(120만 주), 삼성SDS(151만 주) 등 계열사 지분을 블록딜 방식으로 처분해 총 5586억원을 마련한 바 있다.

    아울러 주가가 상승할수록 상속세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승계를 앞둔 상장사 오너 일가는 주가가 오르지 않도록 관리한다는 업계의 평가도 존재한다. 결국 과도한 상속세는 주주들에게도 부정적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것이다.
  • ▲ 국세청 CG ⓒ연합뉴스
    ▲ 국세청 CG ⓒ연합뉴스
    더구나 국세청의 국외전출세 현황에 따르면 상속·증여세 부담에 지난해 해외로 떠난 상장사 대주주는 26명에 달했다. 해당 세제가 처음으로 시행된 2018년(13명)에서 2019년(28명) 급증했으나 2020년(11명) 대폭 감소한 이후 2021년(18명), 2022년(24명) 다시 증가하는 추세다. 국외전출세는 대주주가 해외로 이주할 때 국내에 보유한 주식을 매각한 것으로 보고 매기는 세금이다. 이는 상속세 부담에 따른 국내 이탈 현황을 간접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도구로 활용된다.

    자산가들의 국내 이탈은 해외 주요국과 비교해도 매우 높은 수준이다. 영국의 투자 이민 컨설팅 업체 헨리앤드파트너스는 올해 한국의 고액 순자산 보유자 순유출을 1200명으로 전망했다. 중국(1만5200명)과 영국(9500명), 인도(4300명)에 이은 4위 수준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행 상속세는 국제 기준에서 벗어나는 만큼 자산의 해외 도피가 늘어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며 "집값과 물가는 계속 상승하는데 상속세 공제 기준이 28년째 그대로인 만큼 개편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싱가포르·홍콩 등은 파격적인 세제 혜택을 마련해 전 세계 부자들의 투자 유치를 끌어들이고 있다. 28년째 상속세 개편이 이뤄지지 않아 기업 경영을 포기하거나 집안 다툼이 빈번히 일어나는 우리나라와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싱가포르는 상속세, 배당소득세가 없고 법인 세율은 17%로 단일화돼 있다. 거주자 펀드 제도를 활용하면 법인세도 완전히 면세되는 혜택을 받는다. 최근 홍콩은 총자산 가치가 2억4000만 홍콩달러(약 420억원) 이상이고, 투자 금액이 200만 홍콩달러(약 3억5000만원) 이상인 싱글패밀리오피스(SFO)의 법인세 부담을 완전히 철폐했다. 배당금과 이자에 대한 세금도 면제된다.

    홍콩과 싱가포르로 글로벌 자금이 몰리면서 인공지능(AI), 바이오 등 비상장기업에 사모펀드로 투자하는 현상마저 늘고 있다. 싱가포르는 동남아 시장으로 가는 자금을 빨아들이고 홍콩은 중국 본토로 가는 창구로서 대량의 투자를 받는 만큼 우리나라와 경쟁국으로 봐도 무방하다.

    글로벌 부자들의 유입은 초기 자금 확보가 중요한 스타트업의 투자를 이끌고, 펀드를 통한 주식 간접 수급 개선으로 증시 밸류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시장 친화적인 정책으로 투자를 이끄는 이러한 현상에 우리나라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김재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은 "한국 증시의 저평가는 우리나라 기업이 주요국의 기업에 비해 자본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 주된 요인으로 평가된다"며 "기업의 자본 생산성 증대와 더불어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자본 활용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속세를 비롯한 기업 조세 정책이 완화될 경우 투자와 고용이 늘어 국가 경제에 선순환을 일으킨다는 연구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세제 변화가 기업의 투자 및 배당 결정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통해 "동일한 투자 규모에서 세금 인하 충격을 받는다면 투자 규모는 더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며 "잉여 기업소득에 대한 과세는 중장기적으로는 투자감소로 이어져 경제에 부정적인 효과가 더 클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단기적인 경기 부양보다는 기업의 수익성을 제고할 수 있는 근본적인 기업생태계 개선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 바 있다.

    아울러 한국조세세재정연구원은 '고용창출 세제지원 개선방향 연구' 보고서를 통해 "세액공제의 크기를 증가시킬 경우 전체 고용창출 효과가 증가한다"며 "특히 중소기업에 세액공제를 현 수준보다 낮추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강조했다.

    투자와 고용이 늘어나면 내수는 자연스레 반등할 요인이 마련된다는 게 전문가의 시각이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내 투자가 상승하게 되면 고용 확대 가능성도 커진다"며 "이는 개인 소득 증대와 소비 확대로 이어져 내수 활성화와 국가 경제에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