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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조선업이다."정치권이 한국판 양적완화 문제로 연일 시끌시끌하자 이해 당사자인 KDB산업은행이 나섰다.
산업은행 이대현 정책기획부문장(부행장)은 27일 기자들과 만나 "산업은행은 현대상선과 한진해운 (부채는) 흡수할 여력이 있다"면서 "해운업에 대해선 자본확충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해운업과 함께 구조조정 '제 1트랙'으로 지목한 조선업에 대해서는 난색을 표했다.
이 부행장은 "조선업 구조조정이 빠르고 광범위하게 진행된다면 자본확충이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조선업을 어떻게 정리할 지 방향이 정확하지 않다"면서 "조선업 구조조정 방식에 따라서 자본확충 규모나 시기가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 산은, 현대상선 부실 막아도 대우조선은 못막는다
지금껏 산업은행은 정부가 구조조정 논의와 동시에 재원조달 방안을 짠 것과는 달리 반드시 구조조정에 '실탄'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는 뜻을 견지해왔다.
이날 구조조정 규모와 속도에 따라 추가 재원이 필요할 수 있다고 입장을 선회한 데는 정부의 강력하고 신속한 구조조정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동시에 현재의 산은 자금 상태가 해운업 외에는 다른 업종의 구조조정은 불가능하다는 뜻도 지닌다. 산은은 지난해 현대상선, 대우조선해양 등의 부실로 1조8951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산은의 당기손익 누적액은 8조2500억원으로 장기적으로는 플러스(+) 상태로 대규모 손실에 대한 대처가 가능하나 조선업의 익스포저(위험노출액) 규모는 이를 훨씬 뛰어넘는 수준에 도달해 있다.
수출입은행 역시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411억원으로 2014년 대비 반토막이 나면서 BIS비율은 9.8%에 그쳤다. 지난해 정부로부터 1조원 규모의 한국토지주택공사(LH) 주식을 현물출자 하면서 BIS비율을 10%대로 올렸다가 외화 여신 총량이 늘어 BIS비율은 한 자릿수로 주저앉았다.
업계에서는 해운업과 조선업에 대해 금융권이 갖고 있는 익스포저가 90조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중 해운업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1조600억, 6800억 수준으로 2조가 안된다.
나머지는 조선 빅3(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현대중공업)의 몫이다. 대우조선해양만 해도 국책은행인 수출입은행은 12조7000억, 산업은행 6조3900억원이 각각 떼일 위기에 놓여있다. 두 국책은행이 해양, 조선업에 묶인 돈은 20조를 뛰어넘는다.
대우조선해양은 이날 보유 중인 서울 마곡산업단지 12개 필지를 처분하기로 했다. 시가 2000억원으로 평가된다. -
◇ 산은, 대우조선 16년 품은 결과...부채 4000%
대우조선해양이 부실기업이되기까지 산업은행은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대우조선은 지난 2000년 산업은행의 자회사로 편입된 이후 현재 부채비율은 4000%에 달한다. '주인없는 회사'로 16년 간 지내는 동안 산업은행발(發) 낙하산 인사는 계속됐다.
지난해 산업은행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투자기업의 가치제고'란 명분으로 대우조선해양과 그 자회사에 60명의 비상근 임원들을 내려보냈다.
자문, 고문, 상담역 등의 감투를 쓴 사람들은 평균 8800만원의 연봉을 받았다. 최고 연봉은 남상태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으로 2억5700만원의 연봉을 받고 2년 간 서울 중구의 사무실과 고급차량까지 지원받았다.
자문역 중에는 산업은행 출신 4명과 수출입은행(2명), 국정원(2명), 방위사업청(1명), 군장성 출신(3명)도 포진해 있었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의 퇴임임원이 채무자인 대우조선해양으로 속속 자리를 옮긴 셈이다. 김유훈 전 산업은행 재무관리본부장은 자문역으로 연봉 1억5200만원에 사무실 임대료 7800만원, 고급차량과 운용비 1800만원을 지원받았다.
이윤우 전 산업은행 부총재는 연봉 1억 3800만원을 챙겼으며 이밖에 김갑중 전 부행장(연봉 5100만원)과 허종욱 전 이사(연봉 4800만원)도 산업은행 출신으로 대우조선에 자리를 차지했다.
산업은행은 2009년부터 재무담당 부사장을 파견해 왔는데 정작 부실은 파악하지도 못했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5조원대 부실을 공개하며 2013년과 2014년 영업이익이 흑자라고 했다가 뒤늦게 각각 7731억원, 7378억원 적자였다고 수정했다.
이미 주주들에게 수천억원대의 현금배당을 진행한 뒤였다. 당시 대주주인 산업은행도 2년 간 268억원, 금융위도 104억원을 배당금으로 챙겼다.
이와 관련해 현재 감사원의 감사절차가 진행중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 역시 "산업은행의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부실 경영 책임을 명확히 규명할 것"이라 말했다.
산업은행 측은 "현재 감사가 진행중인 건에 대해 코멘트하기 어렵다"면서 "산은 방만경영이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는 데는 억울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지난 2월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힘을 합쳐서 대우조선해양의 성공사례를 한번 만들어보겠다"면서 "대우조선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을 살려서 정상화로 한 걸음 다가서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고 한 바 있다.
◇ 산은, 자회사 46개 매각..양적완화, 직접 투자로 가나
산업은행은 정부의 구조조정 움직임에 발맞춰 자회사 매각에 속도를 낸다는 계획이다. 산업은행이 5%이상 지분을 가진 비금융사는 총 377개로 올해 46곳을 처분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산은 관계자는 "투자 목적이 달성된 주식은 즉시 판다는 원칙"이라며 "매각이 완료된 대우증권, 쌍용양회 외에도 상당 건수가 현재 진행 중에 있다"고 밝혔다. -
동시에 박근혜 대통령이 회생시킨 '한국형 양적완화'에 대한 실행방법 논의도 활발해질 전망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한국형 양적완화는 구조조정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국책은행의 자본을 확충하는 것"이라며 "기준금리를 더 낮출 수 없는 '제로금리' 상황에서 무제한으로 돈을 푸는 전통적 양적완화와는 다르다"고 했다.
미국, 일본 등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실시한 양적완화는 중앙은행이 경기 부양을 위해 국채 등을 매입해 시중 통화량을 늘리는 게 핵심이다. 우리 정부는 '구조조정'으로 목적을 한정해 자금을 투입한다는 것이다.
앞서 강봉균 새누리당 선대위원장은 총선 당시 한국은행이 산업은행의 산업금융채권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양적완화를 제안했으나 이는 한국은행법 개정을 전제로 해 야권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게다가 산업은행은 산금채 매입이 한은이 아닌, 기관투자가 산금채를 매입하는 것과 차이가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따라서 한국은행이 출자를 통해 산은에 직접 자본을 확충하거나 후순위채를 인수하는 방법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한은이 산은에 직접 출자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요하나 수은은 법적으로 한은으로부터 출자를 받는 게 가능하다. 즉, 법 개정이 없이도 정부가 그리는 한국형 양적완화가 가능해진다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