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선료 협상-자구안은 엇비슷 경영권 포기-사재출연 여부 촉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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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한진해운이 25일 산업은행에 자율협약 신청서를 제출했다. ⓒ 뉴시스
    ▲ 한진해운이 25일 산업은행에 자율협약 신청서를 제출했다. ⓒ 뉴시스

     

     

    정부의 구조조정 칼날이 매섭다. 해운업을 타깃으로 한 정부발 구조조정이 가속도를 내고 있다. 글로벌 해운업 불황이 수년 째 계속되면서 모든 국적 선사를 지키기는 어렵다는 판단 하에 한 곳만 살린다는 의견이 정부 내에서 힘을 얻고 있다. 그 원톱 국적선사가 현대상선이 될 지 한진해운이 될 지 아직은 오리무중이다.

    한진해운은 25일 오후 현대상선에 이어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에 자율협약을 신청하면서 국내 1, 2위 해운사가 모두 경영부실로 채권단 관리를 받는 처지가 됐다.

    국책은행을 비롯한 금융권이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에 제공한 신용공여는 규모는 총 2조원. 글로벌 해운업 불황이 수년 간 계속되는 동안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의 지원은 계속됐지만 그 결과는 참담했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계속된 유동성 위기로 신규 선박 투자는 사라지고 그 사이 경쟁력이 악화되면서 국제해운동맹 재편 움직임에서도 사실상 배제됐다.


    ◇ 갈길 먼 자율협약...부결 가능성도

    산업은행에 따르면 한진해운은 이날 연간 1조원에 달하는 용선료 인하를 위한 해외 선주들과 협상 개시, 1조 5000억원에 달하는 사채권자 채무 재조정 방안 등 자구책과 함께 자율협약신청서를 제출했다.

    최종 자율협약서에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경영권 포기 각서를 포함해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한진해운은 런던 사옥의 매각안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진해운은 이달 중 영국 현지의 부동산 투자회사에 런던 사옥을 666억9000만원에 처분한다는 계획이다.

    한진해운이 이날 자율협약을 신청했으나 실제 개시까지는 갈 길이 멀다.

    이날 오후 4시 자율협약 신청서를 받은 산업은행은 오후 6시30분께 자율협약 '반려'를 공식 발표했다. 
    산은은 한진해운의 자구안은 당장 현금화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닌 데다가 채권단의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선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산은 측은 "한진해운이 제출한 용선료 인하 협상, 자산매각 등의 자구방안은 구체적이지 않다"면서 "보완해서 다시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해운동맹(얼라이언스) 가입과 4개월간의 운영자금을 확보하지 않으면 출자전환 등 자율협약이 어렵다고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자율협약 개시를 결정한 채권금융기관협의회 역시 한진해운의 자구책 보완 신청이 마무리된 뒤에야 잡힐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서는 산업은행의 자율협약 거부가 예정된 수순이라는 평가가 많다.

    한진해운이 자율협약 신청하기까지 채권단과 협의 과정을 어물쩡 건너 뛰었다. 이 과정에서 채권단의 신뢰를 잃은 것은 물론 높은 잣대의 '평가'를 스스로 자초하게 됐다. 핵심 쟁점사안인 용선료 협상, 대주주사재 출연 여부에 대한 언급도 명확히 하지 않았다.

    지난 22일 한진해운이 막무가내로 이사회를 열고 자율협약을 신청하겠다고 고시하자, 산업은행은 이날 밤 자율협약을 신청받은 적이 없다며 사실상 이를 거부할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 300억 사재 턴 현정은...주식 떨어질까 처분한 최은영

    현대상선의 경우,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현대상선의 자율협약 신청 전 300억원의 사재를 내놓기도 했다. 또 자회사인 현대증권을 매각해 8000억원에 달하는 현금도 손에 쥐었다. 

    이에 따라 한진그룹도 이에 준하는 강력한 수준의 자구노력을 보여야 한다는 관측이 높다.

    대주주가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인데 현재로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사재 출연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지금껏 조양호 회장이 대한항공 등을 통해 1조원규모의 자금을 지원해왔고 무보수 회장으로 있으며 한진해운 정상황에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왔다는 게 한진그룹 측의 주장이다.

    문제는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지난 3월말 조 회장과 만나 고강도 자구책을 요구했고 이어 산은 쪽에서는 잇따라 석태수 한진해운 사장에게도 신속한 결단을 거듭 요청해왔지만 자율협약은 '맹탕'이라는 게 채권단의 평가다.

     

  • ▲ 한진해운의 자율협약 체결 직전 딸과 자신의 주식을 모두 판  최은영 한진해운 전 회장(왼쪽), 자율협약 직전 사재 300억원을 내놓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 뉴시스
    ▲ 한진해운의 자율협약 체결 직전 딸과 자신의 주식을 모두 판 최은영 한진해운 전 회장(왼쪽), 자율협약 직전 사재 300억원을 내놓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 뉴시스



    오히려 조양호 회장의 동생인 고(故) 조수호 회장의 부인인 최은영 한진해운 전 회장 일가가 자율협약 발표 직전 한진해운 주식 전량을 처분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진해운을 향한 여론은 싸늘해지고 있다.

    이날 한진해운의 자율협약으로 주식은 최대 하락폭까지 떨어지면서 소액 주주들은 큰 손해를 봤으나 최 전 회장은 자신의 두 딸과 한진해운 주식 96만주는 모두 팔아 27억을 챙겼다.


    ◇ 해운동맹 가입이 관건..한 쪽이 흡수할 수도

    정부가 구조조정 1순위로 해운업을 꼽고 있는 데는 글로벌 해운동맹(얼라이언스의) 재편이 급속도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양대 해운사가 동맹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회생의 의미가 사라지게 된다.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이 우리나라 수출의 25%를 차지하고 있는데 남은 동맹에 끼지 못할 경우, 우리나라 수출 체계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최근 중국 최대 해운사 코스코 그룹과 프랑스 CMA-CGM 등 4개 선사가 '오션'이라는 새 동맹을 결성했다. 기존 1위 해운동맹인 2M과 함께 오션이 2강 체제를 만든 셈이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소속된 CKYHE와 G6은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김영석 해수부 장관은 이날 글로벌 해운시장 재편과 관련한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해운동맹이 3개로 축소개편될 경우 국내 해운시장뿐만 아니라 항만, 물류 전 분야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다만 이들 업체가 자율협약을 추진하고 있어 새 동맹에 들어가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해수부 측은 "얼라이언스(동맹)는 선사 간 상호 이해가 있을 때 맺어지는 것이지 법정관리에 들어간다면 어떤 선사도 함께 일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글로벌 시장에서 퇴출당할 것"이라 밝혔다.

    해운 동맹 재편이 긴박한 만큼 용선료 협상이나 자구안 등으로 회생 가능성이 더 큰 곳으로 흡수 통합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통합으로 덩치를 키우는 것이 더 큰 해운동맹 가입에 유리하다는 판단을 결국 내리지 않겠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