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종별·지역별 차등화 격론 예상... 올해도 법정시한 넘길 듯
  • ▲ 최저임금위원회 개회.ⓒ연합뉴스
    ▲ 최저임금위원회 개회.ⓒ연합뉴스

    기업·산업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가운데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에 진통이 예상된다. 노사 간 견해차가 큰 데다 협상 기한도 짧아 벌써 법정시한을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노동계는 진작부터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대폭 올려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경영계는 구조조정 등 어려운 기업 여건을 고려해 올해는 동결해야 한다는 태도다.

    올해 협상에선 경영계가 역대 두 번째로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화를 시도할 지도 관심거리다.

    ◇경영계 "구조조정 상황 고려하자" vs 노동계 "인건비 비중 꼼꼼히 따져봐야"

    9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최저임금위원회는 이날 제3차 전원회의를 열어 내년도 최저임금 논의를 이어갔다.

    최저임금은 국가가 임금의 최저수준을 정해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그 이상을 지급하게끔 법으로 강제하는 제도다. 위반하면 3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을 물린다.

    이날 위원회는 시급·월급 병기 방법, 업종별·지역별 최저임금 차등화 등에 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사 간 공식적인 최저임금 요구안은 오는 16일로 예정된 제4차 전원회의에서 제출하기로 했다.

    경영계는 조선업계 구조조정 등으로 하청·협력업체가 속속 문을 닫는 상황을 참작해 내년도 최저임금은 올해처럼 6030원으로 동결하고 대신 제도개편에 집중하자는 견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무리한 최저임금 인상은 중소기업과 편의점, PC방 등 자영업자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어 아르바이트 등 청년 고용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올해는 (동결하고) 제도 개선에 머리를 맞대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반면 노동계는 지난 3월부터 올해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을 주장해왔다. 극심한 침체에 빠진 한국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서라도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을 올려 내수 부양을 꾀해야 한다는 논리다.

    송주현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경영계는 최저임금이 오르면 청년 실업이 감소하고 특히 중소기업의 경영난이 심해진다고 주장한다"며 "하지만 전국유통상인연합회는 설문조사 등을 통해 경영 악화 요인으로 인건비 부담이 아니라 소형업체 간 경쟁 심화와 대기업 프렌차이즈의 골목상권 침투를 꼽는다"고 반박했다.

    송 국장은 "위원회가 지난해 말께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최저임금 인상으로 말미암아 고용 현황에 변동이 없다고 답한 사업자가 70%를 넘었다"고 덧붙였다.

    노사 간 견해차가 큰 가운데 일각에선 벌써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이 법정시한을 넘길 거라는 의견이 나온다. 최저임금 심의·의결 시한은 이달 28일까지다. 28일 열릴 제7차 전원회의까지는 총 4번의 심의 기회만 남았다. 지난해는 7월9일 제12차 전원회의에서 표결 끝에 인상안이 결정됐다.

  • ▲ 노동계는 내년도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려야 한다는 견해다.ⓒ연합뉴스
    ▲ 노동계는 내년도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려야 한다는 견해다.ⓒ연합뉴스

    ◇경영계 "업종별 생산성 등 차이 인정해야" vs 노동계 "최저임금 낮추려는 꼼수"

    올해 협상에서는 인상률 못지않게 최저임금 제도 개선을 둘러싼 논쟁도 치열하게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경영계가 역대 두 번째로 업종별로 차등화한 최저임금안을 제출할지 관심이 쏠린다.

    배정대 최저임금위원회 사무국장은 "(올해는) 경영계가 업종별·지역별 차등화에 관해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힌 만큼 기본적인 논의는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해에도 최저임금 차등화에 관한 논의는 있었다. 하지만 공익위원들은 경총이 주장하는 업종별 자료가 구체적·객관적이지 않다며 자료 보완을 요구했었다.

    경총은 업종별·지역별로 생산성 등이 다른 만큼 최저임금을 차등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경총 관계자는 "일본은 1976년부터 47개 행정구역을 A~D 총 4개 그룹으로 나눠 업종별·지역별로 최저임금을 따로 적용한다"며 "임금 현황과 생계비 격차 등을 고려해 그룹을 구분한다"고 설명했다.

    도심 한복판에서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근로자와 시골 낙후지역의 제조업 종사자에게 같은 최저임금 인상률을 적용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지난 1988년 업종별 최저임금을 따로 운용한 적이 있다. 당시 제조업을 대상으로 1그룹(식료품·섬유·신발 등 12개 업종)과 2그룹(석유·화학·철강 등 16개 업종)으로 나눠 각각 시급 462.5원과 487.5원을 적용했다.

    경총 관계자는 "업종별 차등화는 현행법으로도 가능하다"며 "다만 지역별 차등화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노동계는 차등화에 반대한다. 보편성을 저해하고 최저임금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송 국장은 "업종별 차등화는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 독일, 벨기에 등 여러 나라에서 운용하는 제도"라며 "다만 이들 나라는 하한선은 유지한 채 업종별로 상한선을 두는 것으로 최저 수준을 정하는 우리나라와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송 국장은 "1988년 업종별 차등화가 시행된 것도 최저임금제도가 처음으로 도입돼 폐해나 악영향이 검토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이후 차등화가 적용된 적이 없다"면서 "지역별 차등화도 우리나라는 이동성이 잦아 직장과 생활권이 서로 다를 수 있으므로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경영계는 영국이나 프랑스처럼 상여금, 숙박비 등을 최저임금 범위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질적으로는 기본급과 상여금 등을 합하면 최저임금을 웃돌지만, 상여금 등이 최저임금에 포함되지 않다 보니 기본급이 최저임금(월 126만원)에 못 미쳐 법을 위반하는 사례가 있다는 것이다.

    노동계는 최저임금을 결정할 때 가구 생계비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견해다. 대다수 최저임금 노동자가 2~3인 가구의 생계를 책임지는 현실을 참작할 때 1인 미혼 근로자를 기준으로 하는 현재의 최저임금은 개선해야 한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