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안보까지 떠안으면 경제정책 컨트롤 적기 대처 못해 금융위기 수준 환율 이어지는 상황 속 경제 불안 기름 부어 정치적 위기 장기화되면 국가신용등급 27년 만에 강등 위기
  • ▲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뉴시스
    ▲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뉴시스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승리와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탄핵 사태를 거치면서 급등한 원·달러 환율이 2009년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갈수록 고조되는 국내외 정치적 불확실성이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소추안까지 발의하면서 정치적 혼란은 더 가중되고 있다. 한 권한대행의 탄핵까지 현실화할 경우 한국의 대외신인도 하락과 그에 따른 후폭풍이 거세질 전망이다. 

    27일 경제당국 등에 따르면 글로벌 달러화 강세가 계속되는 가운데 야당이 윤 대통령에 이어 한 권한대행까지 탄핵을 추진하면서 외환시장이 출렁이고 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1467.5원으로 개방해 상승세를 이어가다 단숨에 1470원까지 넘어섰다. 그러나 다시 상승하며 1475원을 돌파한 뒤 9시45분 1476원대에서 거래되고 있다.

    이달 들어 계엄 사태에 1440원을 돌파한 원·달러 환율은 미국 FOMC의 '매파적 금리인하' 후 1450원을 돌파했고 한 권한대행의 탄핵안 발의로 정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1460원에 이어 1475원까지 돌파한 것이다. 이 같은 환율 급등세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3월 이후 처음이다.

    외환당국이 수급 개선책을 총동원 중이지만 시장은 자칫 최상목 경제부총리가 '권한대행의 권한대행'을 맡는 최악의 상황을 염려하듯 불안 심리를 진정시키지 못하면서 환율이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민주당 등 야당은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한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소추안 표결에 나선다. 탄핵 정국 속 경제 회복을 위해 여야 협치를 이뤄야 할 정치권이 정치적 타협이나 해결은 뒷전인 채 강경대치만 이어가면서 정국이 급랭하고 있다. 이같은 정치적 리스크를 반영하듯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도 전거래일 대비 2.7원 오른 1467.5원에 개장했다.

    만일 한 권한대행 직무 정지가 현실화되면 대통령 권한대행은 차순위 국무위원인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맡게 된다. 한 권한대행 탄핵으로 인한 헌정사상 초유의 '대행의 대행 체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서도 "계엄령으로 촉발된 (한국의) 헌법적 위기가 심화할 수 있다" 우려했다. 

    비상계엄 사태로 인한 경제 후폭풍을 수습하느라 분주한 최 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이어받게 되면 국정 전반을 책임져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된다. 최 부총리가 경제부총리와 기재부 장관에 더해 대통령과 국무총리 역할까지 수행하는 사상 초유의 '1인 3역'을 맡게되는 것이다.  

    최 부총리가 대외 경제 신뢰도 회복을 위해 전력을 기울이는 상황에서 외교·안보 등까지 떠안으면 적기에 경제정책을 컨트롤하기 힘들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최 부총리에게 과도한 역할이 주어지는 만큼 경제수장으로서 역할을 온전히 감당하기 어려워 '경제사령탑'이 공백이  생길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더욱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보다 경제 펀더멘탈이 좋지 못한 상황이다. 한국 경제의 핵심 축 중 하나인 반도체 업황이 부진하고 수출 증가세도 뚜렷한 둔화세를 보이고 있다. 재화 소비 지표인 소매판매도 9월과 10월 2개월 연속 쪼그라들었다. 

    최 부총리도 내년 한국 경제성장률이 1%대 저성장 가능성을 시사한 상황이다. 그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내년도 성장 전망은 여러 하방리스크가 커 하향이 불가피하다"며 "내년 한국의 성장률이 잠재성장률보다는 소폭 밑돌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경제 잠재성장률이 2%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보다 낮은 1%대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일각에선 더 나아가 금융위기 직후에 버금가는 0%대 성장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감돈다. 

    이런 상황 속 그간 최 부총리는 경제·금융상황 점건 태스크포스(TF)를 신설하고 거시경제금융(F4) 회의를 여는 한편 글로벌 주요 신용평가사들과 화상면담, 주요 20개국에 긴급서한 발송 등을 통해 한국 국가 시스템이 정상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특히 기재부가 긴급서한을 국제사회에 발송한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된 지난 2016년 이후 8년 만으로, 대외신인도 하락에 대한 위기의식을 반증한다.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두고 세계 경제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한 권한대행까지 탄핵 되면 대외신인도 추락이 불가피 할 것이란 지적이 잇따른다. 정부 역시 한 권한대행 체제가 국제사회 지지를 받고 있는 만큼 탄핵 후폭풍 일어날 것이란 우려를 내놓는다. 앞서 지난 23일(현지시간) 김홍균 외교부 1차관과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부장관은 미국 워싱턴 DC 국무부에서 양국 회담을 열고 한·미 주요 외교·안보 일정을 재개하기로 한 바 있다. 

    여당에서도 민주당의 한 권한대행 탄핵 움직임에 대해 '한미 동맹을 훼손하는 외교·안보적 자해'라는 비판이 나온다. 권성동 국민의힘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한 권한대행 체제의 유지는 외교안보와 경제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다"며 "한율 역시 한 권한대행의 탄핵 시사만으로 불안정해질 것이고 대외 신인도 하락 역시 면치 못할 것으로,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탄핵 정국으로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행정부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만행으로, 국회 권력의 국정 농단"이라고 비판했다. 양 교수는 이어 "한 권한대행과 미국 대사가 만나 대외신인도를 지키는 노력을 했는데 탄핵이 되면 무효가 된 셈으로, 국내 상황에 대한 대외 투자자들의 신뢰도가 하락할 수 밖에 없다"며 "민주당 주도로 발의된 첫 탄핵안에는 한·미·일 동맹에 대해 비난이 포함돼 국제사회의 우려를 샀는데 또다시 국무총리를 탄핵하면 대외신인도를 현저히 불안하게 만들 것"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금융시장의 경제 불확실성이 확대해 현재도 불안정한 환율이 오르고 주가가 하락하고 한국의 대외신인도가 낮아질 위험이 있다"며 "한국은행이 발표한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 1.9%는 계엄 전 트럼프 대통령 당선만 반영한 것인 만큼, 이후 발생한 불안정한 국내 정치상황이 반영하면 그 이하로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인 무디스·피치·S&P 등이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27년만에 한국 국가신용등급을 강등시킬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치적 불안정성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어서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최근 정치적 분열을 주된 사유로 프랑스 국가 신용등급을 Aa2에서 Aa3으로 한단계 강등한 바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비상계엄 사태 이후 내놓은 보고서에서 "정치적 위기가 장기화하거나 지속적인 정치적 분열로 정책 결정의 효율성, 경제적 성과 또는 재정이 약화할 경우 (한국 국가신용등급) 하방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