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일 오후 7시 잠실실내체육관서 공연소프라노 강혜명, 박혜상, 테너 김건우, 문세훈 등 젊은 음악인들과 천상의 하모니
  • ▲ 플라시도 도밍고 2016 내한공연. ⓒ김수경 기자
    ▲ 플라시도 도밍고 2016 내한공연. ⓒ김수경 기자

    전설의 쓰리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Placido Domingo)가 국내 클래식 애호가들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고령의 나이 때문에 제대로 된 연주를 펼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많았지만 거장의 품격은 무대 위에서 빛을 발했다.

    하루종일 내린 가을비로 쌀쌀한 기운이 완연했던 2일 오후 7시, 잠실실내체육관에서 플라시도 도밍고의 내한공연이 열렸다. 75세의 적지 않은 나이,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그의 공연을 보기 위해 7000석의 객석은 관객들로 가득 찼다. 

    백발이 무성한 도밍고가 무대에 오르고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시작되자 객석에는 묘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첫 곡은 주세페 베르디 오페라 '가면무도회' 중 '그대는 내 명예를 더렵혔도다(Eri tu che macchiavi)'로, 그간 해외 콘서트 실황이나 음반으로만 듣던 도밍고의 실제 목소리가 객석으로 울려 퍼지자 그제서야 뜨거운 박수 갈채가 쏟아졌다.

    도밍고는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라도 하듯 소리와 테크닉, 힘, 울림 모두 공연 내내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며 훌륭한 연주를 이어갔다.

  • ▲ 플라시도 도밍고 2016 내한공연. ⓒ김수경 기자
    ▲ 플라시도 도밍고 2016 내한공연. ⓒ김수경 기자


    한국의 젊은 음악가인 테너 김건우·문세훈, 소프라노 강혜명·박혜상과의 듀엣 공연에서는 특유의 연륜과 깊이감이 느껴졌다. 젊은 성악가들이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도록 도밍고는 뒤에서 받쳐주는 역할을 주로 하면서도 결코 뒤지지 않는 노장의 힘을 발휘했다.

    특히 스페인 오페라 '항구의 선술집' 중 격정적인 테너 아리아인 '그녀가 그럴리 없어(No puede ser)'에서 3음을 낮춰 부르는 등 바리톤으로서 연주를 했고, 하이G 이상의 고음은 없었지만 도밍고 고유의 스핀토한 색깔은 여전했다. 대신 풍성한 감정이 배어난  마에스트로의 혼이 담긴 연주였다.

    한국 관객들을 위한 넘버인 '베사메 무쵸(Besame Mucho)'를 부를 때는 본인도 흥에 겨운 듯 무대 위에서 웃으며 몸을 흔드는가 하면 후렴 부분에서는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해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관객들은 큰 소리로 '베사메 무쵸'를 합창하는가 하면 곡이 끝나자 기립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한국의 클래식 관객들이 이토록 열성적일 수 있다는 것을 새로이 확인할 수 있었다. 


  • ▲ 플라시도 도밍고 2016 내한공연. 소프라노 강혜명(좌)과 플라시도 도밍고가 '그리운 금강산'을 함께 부르고 있다. ⓒ김수경 기자
    ▲ 플라시도 도밍고 2016 내한공연. 소프라노 강혜명(좌)과 플라시도 도밍고가 '그리운 금강산'을 함께 부르고 있다. ⓒ김수경 기자


    이번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2부에서 소프라노 강혜명과 도밍고가 듀엣으로 부른 '그리운 금강산' 공연이었다. 오케스트라 반주가 시작될 때부터 객석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왔고 도밍고가 '누구의 주제련가 맑고 고운 산'을 부르자 여기저기서 함성 소리가 이어졌다.

    반세기 동안 전세계 클래식계의 거장으로 활동해 온 도밍고와 소프라노 강혜명이 함께 부른 '그리운 금강산'은 관객들로 하여금 큰 감동을 불러일으켰고 곡의 아름다움을 배가시켰다. 

    도밍고는 내한공연이 있기 이틀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리운 금강산을 포함해 한국의 가곡들은 정말 아름답고 멋진 곡"이라면서 "한국곡으로만 구성된 앨범을 내는 것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힐 정도로 한국 가곡을 극찬한 바 있다.

    다소 서툰 한국어 발음이었지만 도밍고가 부른 '그리운 금강산'은 앞으로 두고두고 회자될만큼 뭉클한 감동을 선사했다.

    이날 도밍고와 함께 무대에 오른 연주자들은 앞으로 한국 클래식계를 이끌 샛별답게 최고의 기량을 아낌없이 뽐냈다. 소프라노 강혜명은 풍부하고 깊이있는 음색으로 오페라 디바다운 면모를 발휘했고 지난 7월 도밍고가 젊은 음악가를 발굴하기 위해 개최한 콩쿠르인 '오페라리아 더 월드 오페라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한 테너 김건우는 시원시원하면서도 선 굵은 연주를 선보였다.

    소프라노 박혜상은 밝고 명쾌한 콜로라투라 테크닉으로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또 테너 문세훈은 안정적이고 섬세한 연주로 감동을 선사했다.

    마지막 공연은 도밍고와 4명의 한국 성악가들이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중 '축배의 노래'를 함께 불렀다. 후렴부분에서 도밍고가 지휘를 맡고 지휘자인 유진 콘이 노래를 부르는 깜짝 이벤트가 연출 돼 큰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도밍고의 이번 공연을 마지막 내한공연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이날 직접 도밍고의 연주를 들어보니 앞으로도 몇 년은 무대에서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도밍고 또한 2~3년 내 다시 한국에서 공연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만큼 부디 다음 번에도 그의 건재함을 확인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 ▲ 플라시도 도밍고 2016 내한공연. 소프라노 강혜명(좌)과 플라시도 도밍고가 '그리운 금강산'을 함께 부르고 있다. ⓒ김수경 기자

     

    플라시도 도밍고는 루치아노 파바로티, 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세계 3대 테너로 '테너 황금시대'를 연 세기적인 성악가로 꼽힌다. 

    지난 1957년 바리톤 가수로 데뷔한 도밍고는 1961년 미국에서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의 알프레도로 출연 한 뒤 50여 년간 테너로 활동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빈국립오페라, 런던 로열오페라, 밀라노 라 스칼라,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 등 전세계 최고의 오페라극장에서 수십 년간 테너로 활약을 펼쳐 왔다. 오페라를 넘어 지휘자와 음악감독으로도 활동했으며 팝가수 존 덴버와 함께 최초로 성악과 팝이 만나는 곡인 'Perhaps Love'로 크로스오버 성악의 문을 열기도 했다.

     

    2009년 고령의 나이(68세)로 테너 음역을 소화하기 힘들어지자  바리톤으로 복귀했다. 음역은 낮아졌지만, 더욱 깊어지고 풍성해진 음색으로 여전히 전세계인들의 가슴을 적시고 있다. 테너와 바리톤을 영역을 오갈 뿐 아니라 클래식과 크로스오버, 뮤지컬 넘버 등의 장르를 넘어서는 그의 음악은 지난 50여 년 간 전세계 음악인들의 사랑을 독차지해왔다.


    도밍고는 2016년 기준 147개 배역과 4000회 이상의 공연(레코딩 포함), 9번의 그래미상 수상 및 3번의 라틴 그래미상 수상, 케네디 센터 명예인, 프랑스 인이 아니면 받기 힘든 프랑스 레종 훈장, 영국 기사 작위, 미국 자유의 메달 수훈이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그는 1991년 처음 내한공연을 가졌으며 지금까지 5번의 내한공연을 가졌다.

    올해 75세를 맞은 도밍고는 지난해 10월 새로운 앨범 'Encanto Del Mar - Mediterranean Songs'를 발매했으며 올 연말까지 런던, 밀라노, 발렌시아의 공연이 예정돼 있고 2016-2017 시즌 메트로폴리탄에서 오페라 '나부코'의 나부코역, '라 트라비아타'의 조르조 제르몽 역으로 출연을 앞두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