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개발, 의정부경전철 파산 여파 '또' 자본잠식한라·두산건설 등 그룹리스크 전이 전례에 '불안'
  • ▲ 고려개발이 시공한 대전~담양간 도로 확장 및 포장공사. ⓒ고려개발
    ▲ 고려개발이 시공한 대전~담양간 도로 확장 및 포장공사. ⓒ고려개발


    의정부경전철 파산 여파 등으로 상장폐지 우려가 제기됐던 고려개발이 대림산업으로부터 수혈을 받았다. 고려개발에 대한 자금지원을 반대하는 대림산업 주주들을 고려해 수시 상환이 가능한 상환전환우선주(RCPS)를 발행했다고는 하지만 소액주주들 반발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앞서 일부 건설사들이 그룹이나 지주사로부터 지원을 받아 회생 발판을 만들었지만, 그룹 내 다른 계열사들에게는 생채기만 남긴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고려개발은 최대주주(67.86%)인 대림산업이 500억원 규모의 출자전환을 결정했다고 최근 공시했다. 출자전환은 고려개발이 발행한 RCPS 555만5550주를 대림산업이 인수하는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진행됐다.

    RCPS는 채권처럼 꾸준히 이자를 챙기면서 만기 때 상환 받거나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 우선주를 말한다. 국제회계기준(IFRS)상 부채로 분류되지만, 회사가 상환권을 가지면 자본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주식과 채권의 성격을 모두 갖고 있어 벤처캐피탈이 벤처기업에 투자할 때 RCPS를 주로 인수하곤 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대림산업의 일반 주주들 중에는 고려개발에 대한 자금지원을 반대하는 이들도 많다"며 "주주들의 반발을 고려해 무조건적인 자금지원이 아닌 RCPS로 출자전환을 하는 조건부 지원을 택한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번 자금지원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달 초에도 고려개발은 대림산업으로부터 500억원을 대여했다. 고려개발이 지분을 보유한 의정부경전철이 파산을 신청하면서 일시적으로 500억원 규모의 후순위 대출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려개발이 최종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현금유출 규모도 300억~400억원가량으로 추산되고 있다. 재정난에 시달리던 의정부경전철은 개통 4년 만에 적자가 2000억원대로 불어나면서 지난 11일 파산신청에 이르렀다.

    이번 파산으로 출자자들이 부담해야 할 보증채무는 모두 970억원가량으로, 고려개발은 GS건설(47.54%)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지분(18.60%)을 보유하고 있다.

    오는 7월 준공예정인 우이신설경전철도 변수다. 고려개발이 지분 14.3%를 보유한 우이신설경전철은 수차례 설계변경과 공사중단 등으로 손실이 1000억원 이상 불어났다. 준공 이후 운영수익이 얼마큼 발생할 지에 따라 고려개발 손익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자본잠식 164.6%를 밝힌 지 1년 만에 다시 자본잠식에 빠질 정도로 재무구조가 불안정하다는 점이다. 현재 고려개발은 자본총계 290억원·자본금 1077억원으로, 73.02% 자본잠식 상태다. 지난해 영업이익 263억원을 달성하며 흑자전환에 성공했지만, 의정부경전철에 발목을 잡힌 것이다.

    지난해에도 경전철 사업과 일부 PF(프로젝트파이낸싱) 사업이 문제였다. 고려개발은 지난해 2월 1200억원 규모 유증을 단행하는 등 재무구조 정상화에 심혈을 기울였으나, 불과 1년 만에 다시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것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1년 만에 또 다시 자본잠식에 빠질 정도로 재무구조가 부실하고, 앞으로 얼마나 더 유동성 지원이 필요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대림산업 주주들 입장에서는 '부실 계열사'로 자금이 흘러들어가는 것에 대해 탐탁지 않을 수 있다"며 "그룹 입장에서도 '부당 지원'이라는 비난과 재무적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부담이 있지만, 부실 계열사에 대한 자금지원으로 신용등급 하락 등 좋지 않은 전례가 있는 만큼 주주들의 비판을 수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한라는 2015년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제주도 소재 골프장 세인트포CC 매각을 추진했다. 당시 신용평가사들은 지주사인 한라홀딩스가 한라를 지원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해 3월 가능성이 현실로 됐다. 한라홀딩스는 새롭게 설립한 한라제주개발에 500억원을 출자하고, 한라제주개발이 발행하는 1600억원 규모의 사모사채를 인수했다. 한라제주개발을 통해 한라의 '앓던 이'였던 제주 세인트포CC를 사준 셈이다.

    이 과정에서 총 1300억원의 실질적인 자금유출이 발생하면서 한라홀딩스의 재무제표가 악화됐고, 결국 신용등급도 한 단계 하향조정됐다.

    신평사들은 "이번 자금부담이 투자 목적뿐만 아니라 계열사 한라에 대한 지원 목적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계열 내 재무부담이 전이된 점을 고려, 부정적으로 판단한다"고 입을 모았다.

    두산그룹 역시 두산건설에 대한 지원으로 신용등급이 줄줄이 하락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한국기업평가는 지난해 3월 두산과 계열사 두산중공업·두산인프라코어·두산건설 4개 기업 신용등급을 강등시켰다. 그룹의 재무안전성 저하와 일부 계열사의 수익구조, 유동성 대응능력 약화에 따른 부담 요인이 강등 원인이었다. 이어 나이스신용평가는 이들 4개사에 두산엔진까지 더해 5개 기업의 신용등급을 내렸다.

    이에 앞서 2013년 두산건설은 4000억원 규모의 RCPS를 발행했다. 주가가 RCPS 발행가 이하로 하락할 경우 두산중공업이 대신 손실을 보전해주는 의무를 갖는 구조였다. 하지만 당시 지속적인 건설경기 악화로 두산건설이 자체 상환할 여력이 안 됐고, 그 부담은 두산중공업에 고스란히 전가됐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부실계열사들의 위험을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지주사가 떠안아 그룹 전반으로의 리스크 전이 가능성이 높아지는 만큼 그룹 신용도에는 최대 부담 요소로 작용하기 마련"이라며 "신용도 상승을 위해서라도 계열사 간 리스크 전이를 차단할 필요가 있고, 동시에 각 계열사들도 자생력을 갖추는 것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한편, 고려개발은 현재 진행 중인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기간을 2019년 12월까지 2년 연장하는 방안을 신청하기로 했다. 의정부경전철과 우이신설경전철 등 부실사업 정리로 보유 현금이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 올해 12월로 종료되는 워크아웃 기간 내에 2000억원에 달하는 장기차입금을 상환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고려개발은 2011년 11월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2013년 워크아웃 시한 만기를 앞두고 있었지만, 경기 용인시 성복동 PF사업 시행사와 용인시 간 기반시설부담금 소송이 장기화되면서 2년을 추가 연장했다. 올해 다시 워크아웃을 신청하게 되면 4번째 워크아웃이 된다.

    고려개발은 지난해 매출 6238억원·영업이익 263억원을 기록했다. 2015년 매출 6070억원·영업손실 797억원에 비하면 실적이 크게 개선됐다. 하지만 당기순손실이 228억원·부채비율이 1979%에 달하는 등 재무건전성이 여전히 취약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