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 차량·정비 등 무임승차-수익노선 운행만 집중누적적자 13조 코레일, 비수익 노선까지 떠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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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수서발 고속철(SRT) 개통으로 본격적인 고속철도 경쟁시대가 열렸다. 하지만 민영화 논란을 의식해 정부가 SRT 운영사인 ㈜에스알(SR)을 공기업인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자회사 형식으로 출범하면서 태생적인 한계로 곳곳에서 마찰음이 생기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당장 요금 할인 경쟁으로 승객이 혜택을 누리는 것처럼 보인다. 정부도 이런 부분을 집중적으로 홍보하는 모양새다. 모회사와 자회사 간 제 살 깎아 먹기 식 출혈경쟁의 부산물로 벽지노선 감축 등의 피해가 부메랑이 돼 국민에게 돌아오는 것은 논외로 치부된다. 철도경쟁 시대를 맞은 코레일, SR과 관리 부처인 국토교통부의 어색한 동거를 앞으로 두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편집자 註>
①SR 출생의 비밀과 코레일과의 경쟁 아닌 경쟁
◇잘 나가는 SR… 울상인 코레일
24일 국토부 등에 따르면 지난 18일로 SRT가 개통한 지 100일이 됐다.
지난해 12월9일 운행을 시작한 SRT는 지난 14일 기점으로 연인원 450만명이 이용했다. 운행노선별 누적 이용객은 경부선 348만명, 호남선 102만명을 기록했다. 하루 평균 4만6863명이 이용했다.
SR 관계자는 "지난달 24일에는 하루에만 6만4117명이 SRT를 이용해 1일 최대 이용객 수를 경신했다"며 "국제철도연맹(UIC) 기준으로 99.89%의 정시율을 기록하는 등 빠르고 정확한 운행으로 개통 100여일 만에 수도권 동남부지역과 전국을 연결하는 고속열차로 빠르게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자평했다.
이 기간 운송수입은 1000억원을 돌파했다. 후발주자인 SR로선 한 마디로 싱글벙글이다.
반면 기존 철도시장을 독식했던 코레일은 울상이다. SR 영업이익은 반대로 말하면 코레일의 영업손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코레일 설명으로는 지난해 재무제표상 코레일의 금융부채는 13조2728억원쯤이다. 이자비용으로만 연간 4174억원을 부담하는 중이다.
2015년과 비교하면 금융부채는 1년 새 2조원 가까이 늘었다. 2015년 기준 영업이익이 1144억원 수준이었음을 참작하면 이자의 4분의 1도 못 갚고 있는 실정이다.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는 예견됐던 상황이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국민의당 윤영일 의원이 코레일로부터 받은 올해 영업손익 전망자료를 보면 SRT와 경쟁하려고 KTX 주중 운임을 10% 낮추면 1013억원, 주중·주말 운임을 모두 인하하면 1704억원의 적자가 각각 발생한다고 돼 있다.
SR은 일찌감치 운임체계를 발표하면서 전체 구간 운임을 KTX보다 평균 10% 싸게 설계했다.
윤 의원은 "국토부는 2013년 6월 내놓은 철도산업 발전방안에서 SRT 개통으로 경쟁이 이뤄지면 비용절감과 수입 증대를 통해 코레일이 연간 5000억원 이상 적자를 해결할 거라고 밝혔다"며 "적자 해소는커녕 1700억원 이상의 적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국토부가 철도경쟁체제를 졸속으로 추진한 증거"라고 꼬집었다.
코레일은 수서발 고속철 민영화 논란이 일었던 2012년부터 신규 노선을 민간에 개방하면 4000억원쯤의 수입이 감소할 거라고 내다봤다.
철도 민영화 논란에 불을 지폈던 국토부만 신규 노선 민간 개방이 코레일 적자 해결 방안이라고 주장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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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화 논란에… 코레일-SR 불공정 경쟁 논란
문제는 SR 출범이 태생적 한계가 있다 보니 코레일과 SR의 경쟁이 사실상 공정할 리 없다는 데 있다.
철도업계 얘기를 종합하면 국토부는 지난 2010년 수서발 고속철도 운영을 검토할 당시에는 철도운영자로 코레일을 염두에 뒀다.
2009년 내놓은 수도권고속철도 수서~평택 건설사업 기본계획에 사업추진의 목적 중 하나로 코레일 경영개선을 적시했고 이를 토대로 같은 해 철도산업위원회에서 수도권 고속철도 기본계획을 의결했다는 것이다.
철도업계 한 관계자는 "당시 국토부가 밝힌 기대효과에는 연평균 2700억원 이상의 수익이 추가로 창출돼 코레일 경영개선에 이바지할 거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정부가 돌연 수익노선인 수서발 고속철을 민간에 개방하겠다고 급선회하면서 코레일과 SR의 어색한 동거가 시작됐다.
2011년 정부의 수도권 고속선 민영화 발표 이후 논란이 거세지자 2013년 6월 철도산업발전방안을 통해 코레일을 지주회사로 전환하고 자회사로 수서발 고속선을 운영하겠다고 밝힌 것.
SR은 코레일이 41%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나머지는 사학연금 31.5%, 중소기업은행 15%, 산업은행 12.5% 등이다.
겉으로는 코레일이 주식회사 형태인 SR의 최대 주주이므로 SR이 벌어들이는 수익금으로 가만히 앉아 배를 불릴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사정이 복잡하다. 표면적으로 코레일과 경쟁 관계에 있는 SR은 별다른 투자 없이 기존 코레일의 시스템에 무임승차해 알짜배기 노선만 운영하는 손톱 밑 가시 같은 존재다.
우선 SR은 민간회사였다면 못 누렸을 혜택을 받고 있다. 열차 운행에 필수적인 차량과 정비 등의 초기비용 대부분을 코레일에 의지하는 처지다.
운행하는 차량 32편성 중 70%에 육박하는 22편성은 모회사 코레일에서 싸게 빌린 상태다. 임차비를 물지만, 여기에도 혜택은 숨어있다.
보통 코레일이 차량 1대를 구매할 때 정부 보조금을 절반 지원받는데 SR은 모회사에서 차량을 빌리는 형태여서 차량 가격의 절반에 대해서만 임대료를 물면 된다. 코레일이 호남고속철에 투입하려고 사들인 차량의 절반 가격에 대해서만 싼 임대료를 무는 셈이다.
정비 업무도 코레일에 위탁해 처리한다. 책정된 정비료를 내지만, 정비시설과 전문인력을 갖추는 데 드는 비용을 아낄 수 있다.
심지어 SRT 전용 선로에 대한 유지보수 업무도 코레일이 맡는다. 철도산업발전법에 국가재정사업으로 건설된 노선에 대한 유지보수는 코레일이 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SR은 경쟁 구도에서 비용이 들거나 귀찮은 업무에는 손을 뗀 채 오로지 수익노선을 운영하는 데만 집중할 수 있게 배려된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철도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달 SRT 열차에서 진동이 발생해 승객 불편이 제기되자 운영사인 SR은 차량유지보수를 맡는 코레일에 진동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차륜 삭정을 요청하겠다며 사과했다"면서 "마치 진동문제의 책임이 코레일에 있는 것처럼 떠미는 느낌이어서 코레일 내부에서 억울해한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이에 대해 코레일은 "딱히 할 말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철도업계 일각에서는 호시탐탐 철도 민영화를 엿보는 국토부의 SR 밀어주기가 도를 넘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대외적으로는 철도 경쟁을 외치면서 실상은 SR에 유리하게 선로를 배분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라지역 7개 지방자치단체가 소외론과 형평성을 들어 SRT 전라선 운행을 요구하는 게 대표적이다.
전남 곡성·구례·순천, 전북 전주·남원 등 7개 지자체로 구성된 '전라선권 KTX 협의회'는 지난해 11월 정부세종청사 국토부 앞 광장에서 출범식을 하고 고속철 운행 증편을 요구했다.
이들은 KTX 전라선 증편과 함께 SRT 전라선이 운행되지 않고 있다며 SRT 서비스를 주문했다.
협의회는 "SRT 설립 목적이 고속철 서비스의 선택권 확대인 만큼 전라선 이용객이 SRT를 이용하지 못하는 것은 정부 정책 방향과도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국토부 반응은 냉정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SRT는 당분간 증편이 어렵다"며 "현재로선 부지런히 돈을 버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SRT는 호남선을 운행하고 있지만, 수요가 낮은 서대전역 경유 노선은 운행하지 않는다.
반면 코레일은 SR과의 무한경쟁에도 전라선, 경전선, 동해선 연결노선 등 소위 적자 노선을 운영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코레일 한 관계자는 "서대전역을 지나는 전라선 KTX 중에는 대전 이남 수요가 적어 특정 시간대 승차율이 5%가 채 안 되는 경우도 있다"고 부연했다.
국토부의 SR 밀어주기는 SR의 노선별 운행횟수를 봐도 엿볼 수 있다.
2012년 정부가 발표한 수서발 고속철 운송사업 제안요청서(RFP)를 보면 신규 철도사업자는 경부선 27회, 호남선 24회 등 총 51회를 운행하는 것으로 계획됐다.
현재 SR은 경부선 40회, 호남선 20회 등 총 60회를 운행한다. 경부선은 애초 계획보다 13회 늘리고 호남선은 4회 줄었다. 수익성을 극대화할 수 있게 조정된 셈이다.
철도업계 한 관계자는 "철도경쟁이 당장은 요금 할인 등으로 이어져 승객에게 이익이 되는 것처럼 보일 것"이라며 "하지만 불공정한 경쟁 구조에서는 언제든지 코레일의 벽지노선 감축 운행 등 부작용이 터져 나올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코레일 자회사임에도 관리는 국토부가
엄밀히 말해 SR은 코레일의 자회사다. 코레일이 모회사로서 관리·감독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코레일은 그러지 못하게 손발이 묶인 상태다. 국토부가 경쟁 체제를 이유로 코레일의 SR 관리·감독권을 배제했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SR 관리권은 주무 부처인 국토부가 쥐고 있다.
이는 최근 불거졌던 국토부 전 교통물류실장의 SR 낙하산 인사와 무관지 않다는 게 철도업계의 일반적인 견해다.
뉴데일리경제가 국회에서 확보한 2014년 국토부의 '수서고속철 회사에 대한 출자회사 관리지침' 문건을 보면 국토부는 건전한 경쟁 관계 형성을 들어 코레일이 출자회사 관리를 위해 운영하는 지침을 자회사인 SR에 적용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자회사 관리와 관련해 추후에 국토부와 협의해 별도의 관리기준을 검토·마련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즉 국토부가 전면에 나서 모회사인 코레일에 SR에 대한 지도·감독권을 행사하지 말라고 경고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