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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5 증권사들이 자기자본 4조원 이상 요건을 갖추고 초대형 투자은행(IB) 도약 준비를 마친 가운데 '발행어음'부문 사업과 관련해 시작 전부터 전망이 엇갈린다.
초대형IB의 핵심 신규 업무라는 분석에는 이견이 없지만 사업 시작과 동시에 모든 증권사들이 실제로 수익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미지수라는 분석이 나온다.
2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초대형IB의 가장 큰 강점은 발행어음 라이센스다.
발행어음은 금융회사가 자체 신용을 바탕으로 영업 자금조달을 위해 발행하는 지급보증서를 말하며 대형사들이 올해 초까지 자기자본을 4조원 이상으로 맞췄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금융감독원은 전일부터 '초대형 IB 지정 및 단기금융업 인가'를 위한 현장실사를 시작했다.
내달 1일까지 미래에셋대우와 NH투자증권, KB증권, 삼성증권, 한국투자증권 등 5개사를 상대로 하루에 한 곳씩 실사를 진행하는 셈이며 어음 발행을 위한 전산 시스템에 대한 실사가 핵심이다.
발행어음 업무는 그만큼 자금조달 규모가 커져 운용자산과 이익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에 매력적인 사업으로 꼽힌다.
당국은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돈을 기업들에 공급해 자본시장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 이를 허용했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자기자본 4조원의 증권사가 자기자본대비 30%의 발행어음(약 1조4000억원)을 1.9%의 금리로 조달하고, 1.8%의 운용마진율을 가정하면 200~300억원 가량의 이익이 늘어난다.
자기자본 4조원의 증권사가 ROE를 연간 0.5%p 가량 높일 수 있는 사업인 셈이다.
특히 자기자본 확충과 전산시스템 및 인력 셋팅 외에는 발행어음에 따른 비용부담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반면 증권사가 발행하는 어음에 대한 투자자들의 수요와 자금집행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우선 증권사의 발행어음이 예금자 보호대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일반 투자자들의 접근성이 제한되고, 법인 또는 초고액 자산가를 대상으로 한 사업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소수의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에 대한 매력도 높지만 시중 은행의 예적금 등 부동자금을 끌어올 수 있다는 당초 취지와는 반할 수 있다.
또 증권사들이 조달자금의 활용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금융당국은 수탁금의 절반을 기업에 대출하는 기업금융 의무비율 50% 룰을 제시했고, 부동산에 대한 투자는 수탁금의 10%로 제한하고 있다.
이 경우 증권사들은 발행어음 라이센스를 활용한 자금운용에 상당한 제한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초대형IB를 준비 중인 증권사에서는 벌써부터 엄격한 당국의 사업 제한으로 초대형IB의 효과가 반감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시행 초반 몇년 동안은 적극적인 자금의 활용 보다는 안전성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며 "이 경우 결국 발행어음과 기존의 CMA가 차이를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초대형IB 탄생에 맞춰 갑작스럽게 규제를 풀 수는 없지만 시행초기 장벽이 너무 높으면 당국과 업계가 야심차게 준비한 사업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관점에서 갑작스럽게 대주주 적격성 문제가 불거져 발행어음 사업이 당분간 막히게 된 삼성증권의 경우 초반 판도를 지켜 보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의 장기전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삼성증권은 외환 업무 인력과 프로세스, 자기자본 운용 강화 방안에 초점을 맞춘다는 계획이다.
특히 발행어음 업무가 지연되더라도 IB 사업에 큰 영향은 없어 전략의 수정 역시 불필요하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초대형IB 중 기업 신용공여 한도 확대나 신규 외국환 업무 등은 자본 4조원 이상 요건만 갖추면 가능하기 때문에 발행어음 업무 지연에 따른 IB 사업에 미치는 영향이나 경쟁력 약화 우려는 없다"며 "나머지 대형 증권사들의 초반 행보를 지켜보면서 발행어음 업무 인가를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삼성증권을 제외한 4개 증권사 역시 발행어음 인가를 장담할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금융당국이 삼성증권의 대주주 삼성생명의 지분율이 0.06%에 불과한 이 부회장의 적격성을 문제삼은 만큼 나머지 증권사들도 인가를 낙관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