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실 모니터에 'X'표시 뜨나 배 많아 알 수 없다"해수부 "3천만원 들여 시스템 보완 예정"… 먼바다선 무용지물
  • ▲ 북한 경비정에 나포됐다 돌아온 흥진호.ⓒ연합뉴스
    ▲ 북한 경비정에 나포됐다 돌아온 흥진호.ⓒ연합뉴스

    먼바다에서 제2의 흥진호 사태가 발생할 위험이 상존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위성추적장치인 선박자동식별장치(AIS)가 고장이나 고의로 꺼지면 전통적인 아날로그 방식인 무전으로 위치를 파악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해양수산부는 뒤늦게 AIS가 꺼지면 알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다지만, 흥진호가 나포된 해역에는 통신망이 구축되지 않아 그림의 떡인 것으로 드러났다.

    31일 해수부와 해양경찰 등에 따르면 경주 감포 선적의 복어잡이 어선인 391 흥진호는 지난 16일 낮 12시48분 울릉도 저동항을 출발해 17일 새벽부터 동해 대화퇴어장에서 조업하던 중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나포됐다.

    흥진호가 20일 오전 10시19분 수협중앙회 어업정보통신국에 보고한 마지막 조업 위치는 울릉 북동방 183해리쯤(339㎞)이다. 이후 흥진호는 위치 보고를 하지 않았다.

    수협은 이후 36시간이 지난 21일 오후 10시39분 흥진호를 '위치보고 미이행 선박'으로 해경에 신고했고 해경은 수색을 벌여왔다.

    선박안전조업규칙에 따르면 출항한 어선은 해역에 따라 하루 1~3회 이상 수협 어업정보통신국에 위치를 보고해야 한다.

    흥진호가 조업하던 대화퇴어장은 한·일 공동수역으로 일반해역에 해당한다. 하루 1회 이상 위치를 보고하면 된다. 하지만 어장 서북쪽 밖은 북한해역으로 조업자제해역이다. 이곳에선 하루 2회 이상 위치를 보고해야 한다.

    어선은 통상 24시간 단위로 위치를 보고한다. 하지만 조업 상황 등에 따라 늦어지기도 한다는 게 해수부 설명이다.

    흥진호가 20일 오전 마지막으로 위치를 보고한 뒤 21일 새벽 0시30분께 조업해역에 나타난 북한 경비정에 추적을 받아 나포됐으므로 보고를 어겼다고 보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이날 오전 10시께 다시 위치보고를 하면 됐지만, 새벽에 나포되면서 보고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렸을 수 있어서다.

    수협의 신고가 늦어 해경의 수색이 지연됐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견해도 나온다. 수협이 24시간 이상 위치 보고가 없는 데도 36시간이 지나서야 해경에 신고했으나 조업 중인 현장 상황 등을 고려해 통상 어느 정도 시간적 여유를 두고 신고한다는 것이다.

    일반해역의 경우 통상 2회(48시간) 이상 위치보고가 들어오지 않으면 해경에 신고한다는 게 해수부 설명이다.

    문제는 조업 중 AIS가 꺼져도 수협이나 해경, 해수부 상황실 모두 이를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AIS는 현재 여객선과 일반 화물선, 10톤 이상 어선에 의무적으로 달게 돼 있다. 흥진호는 39톤급으로 설치 대상이다.

    정부합동조사단이 흥진호의 북한 해역 침범 여부와 월선 경위, AIS 작동 여부 등을 조사하겠지만, 현재로선 흥진호가 고의로 AIS를 껐더라도 해경이나 해수부 등에서 알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태다.

    해수부 관계자는 "현재는 AIS가 꺼져도 바로 알 수 있게 시스템이 돼 있지 않다"며 "상황실 모니터 화면에 엑스(X) 표시가 뜨긴 하지만, 상선 등 2만척 이상이 표시되는 데다 한 곳에서 오래 정박해도 X 표시가 뜨므로 상황근무자가 현실적으로 알아볼 수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3000만원의 예산을 투입해 상황근무자가 AIS 작동 여부를 알 수 있게 시스템을 정비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해수부가 뒷북 대응에 나서긴 했으나 이 대책도 한계는 있다. 흥진호가 조업하던 대화퇴어장은 통신망이 구축되지 않아 시스템을 개선해도 무용지물이나 진배없기 때문이다.

    해수부 관계자는 "이번 시스템 보완은 (통신망이 구축된) 연안지역 배들을 관리하는 것"이라며 "요즘 같은 디지털 정보통신기술(ICT) 시대에 결국 무전으로 위치를 파악할 수밖에 없다는 게 아이러니한 측면이 있다"고 부연했다.

    레이더 운용과 관련해 해경 관계자는 "현재는 수협 어업정보통신국에서 알려주지 않으면 해경이나 함정에선 어선 위치를 알 수 없다"며 "레이더 반경에 한계가 있고 해상에 많은 배가 있어 작은 어선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과거에는 방향 탐지를 위해 특정 전파를 발사하는 비콘 장치가 선박에 있어 위치보고를 받을 때 이걸 누르게 하면 선박의 방향을 파악할 수 있었지만, 요즘엔 이마저도 없다"면서 "현대 장비인 AIS는 자동으로 위치를 식별할 수 있으나 중계국이 있어야 하고 선박에서 끄면 무용지물"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해수부 한 관계자는 "어선의 안전 확보를 위해 AIS를 켜라고 주문하지만, 어민이 강력하게 반발하는 실정"이라며 "AIS를 켜면 불법 어업이나 조업금지구역 침범 때 증거가 되므로 이를 꺼린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