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주도로 양곡법 등 농업4법 국회 본회의 통과 양곡법 시행 시 쌀 매입·보관비만 3조원 이상 전망 농업인 단체도 품목 간 형평성 문제 등으로 '난색'전문가 "사후 대응보다는 재배면적 감축이 우선"
  • ▲ 벼를 수확하는 모습. ⓒ뉴시스
    ▲ 벼를 수확하는 모습. ⓒ뉴시스
    더불어민주당은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정부가 남는 쌀을 의무적으로 사들이도록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 등 '농업 4법'을 여당 반대 속에 강행처리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첫 거부권 행사 법안이었던 양곡법 개정안을 또다시 통과시키며 정부의 쌀 의무 수매를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이미 매년 남아도는 쌀로 막대한 혈세가 투입되고 있는데도, 다수당을 앞세운 입법 폭주로 소모적 정쟁을 반복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양곡법 개정안은 정부가 남는 쌀을 의무적으로 매입하고 양곡의 시장가격이 평년가격 미만으로 하락하면 정부가 차액을 지급하는 것이 골자다. 21대 국회에서 폐기된 법과 달리 이번 개정안에는 '양곡가격안정제도' 조항까지 포함된 것이다. 

    정부·여당은 양곡법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쌀 과잉 생산을 촉진해 쌀값 하락을 심화시켜 정부 재정에 막대한 부담을 주는 도미노 현상을 불러 일으킬 것으로 본다. 또 쌀 편중 현상 심화를 부추겨 시장의 자율적 수급 기능이 약화되고 농업의 균형발전을 저해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와 관련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양곡법·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 안정에 관한 법률 ·농업재해보험법·농어업재해대책법 개정안 등 '농업 4법' 통과 직후 브리핑을 열고 "양곡법 개정안 등 4개 농업 쟁점 법안에 대한 재의요구(거부권)을 건의하겠다"고 말했다. 

    송 장관은 "양곡법 개정안은 쌀 과잉생산을 고착화해 쌀값 하락을 심화시킬 뿐 아니라 막대한 재정 소요가 예상되며 쌀로 생산집중을 가속화시켜 타작물로의 전환을 위협할 것"이라며 "벼 재배면적 감축제 등 그간 구조적 쌀 공급과잉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다각적인 조치를 무력화해 쌀값의 회복과 유지를 어렵게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반복되는 공급과잉을 해소해야 쌀 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지속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며 "연말까지 농가에 벼 재배면적 감축 의무 부과 등을 포함한 '쌀 산업 근본대책'도 추가로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부와 여당이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히자 더불어민주당은 이들 법안을 '농망 4법'이라 발언한 송 장관에 대해 해임건의안을 추진하겠다고 맞섰다.

    야당의 양곡법 개정안 강행에는 농민의 목소리도 배제된 모양새다. 59개 농업인 단체 중 40여개 단체가 성명서를 통해 양곡법 개정안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과잉생산, 재정부담, 미래농업 투자 저해, 생산 쏠림으로 인한 농산물 수급 불안, 품목 간 형평성 문제 등의 이유에서다.

    이승호 한국농축산연합회 회장은 "농식품부의 예산에 한계가 있는데 양곡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재정부담과 예산 쏠림 현상으로 인한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며 "재원 확보와 보완 장치도 없는 상황에서 양곡법 개정안이 시행된다면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부의 올해 쌀 매입 관련 예산만 매입비 1조2266억원, 보관비 4061억원으로 1조6327억원이다. 농식품부는 양곡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쌀 생산이 더 늘어나 매입·보관 비용이 2배로 불어날 수 있다고 내다본다. 쌀 보관비만 연간 5000억 원이상으로 늘어나고 2030년 매입비와 합친 총비용은 3조원을 웃돌 것이란 전망이다. 

    쌀을 보관하는 정부 양곡창고는 전국 3400개 이상이고 쌀 재고물량은 지난 8월 기준 120만t이다. 이는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권고하는 적정 비축물량 80톤의 1.5배다. 

    국내에서 벼 생산량이 감소하고 있지만 소비량은 더 급격히 줄어들면서 쌀은 매년 15만~20만t 초과생산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5년 80.7kg였던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매해 줄어들어 지난해 56.4kg에 그쳤다. 

    이에 당초 식량안보 목적으로 2005년 도입된 공공비축제도 퇴색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축량은 2022년 이후 45만t 수준으로 늘어났다. 정부가 과잉 생산된 쌀을 매입해 보관하다 주정용, 해외 원조용으로 저렴하게 방출하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어 매년 양곡 매입·보관비가 낭비되고 있다는 비판도 잇따른다. 

    김한호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는 "쌀과 같이 과잉되는 품목을 정부가 마지막 수요자가 돼 계속해서 사들이는 것은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며 "양곡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매년 쌀 매입과 가격 보전에 재정 부담이 커지고 타 품목 예산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준기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양곡법 개정안 시행 시 과잉생산을 우려했다. 박 선임연구위원은 "쌀 기계화율이 100%에 달하는 상황에서 가격까지 보장해주면 농민 입장에서는 작물 전환 동기 줄어들고 다시 쌀 생산으로 돌아갈 가능성도 높아진다"며 "쌀 과잉생산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사후 대응 방식보다는 벼 재배면적을 줄이는 노력이 더 선행되어야 할 시점"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