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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인양요, 신미양요, 운요호사건, 강화도조약, 동학농민운동, 갑신정변, 을미사변, 아관파천, 을사조약, 강제퇴위...

     

    ‘비운의 황제’ 고종 재위 44년(1863-1907) 동안 발생했던 사건들이다.

    고종에 대해서는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린다.

    고종은 청년시절까지는 부친 흥선대원군에게 끌려다니고, 결혼한 후에는 황후 민비에게 끌려다니고, 민비 사후에는 대신들과 열강들에게 끌려다니는 등 왕으로서 결단력 있게 사안들을 처리하지 못하고 우유부단하게 처신하는데 급급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열강들에게 산림채굴권, 광산채굴권 등을 넘겨주다 종국에는 나라까지 통째로 넘겨준 무능한 왕이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였다.

     

    그러나 최근 고종에 대한 재평가론도 부상하고 있다. 

    19세기 열강들 사이에 대포를 앞세운 식민지 건설 경쟁이 불 붙은 상황에서, 미약한 국력이지만 조선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 왕이었다는 것이다.

     

    1882년 8월 5일 군주가 전 국민에게 내린 고유문에 “영국, 덕국(독일), 미국, 아라사(러시아) 같은 나라들이 아주 훌륭하고, 정밀한 기계를 새로 만들고 산업을 부강하게 일으키고 있다. 중국이나 일본이 이 나라들과 모두 수호 통상조약을 체결하였는데 우리만 거부 할 수 없다...”고 천명했듯이 안목은 탁월했지만 국력 자체가 약해 한계를 극복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평가다.  

     

    대표적인 것이 대한제국 시절 서북 철도의 건설이다. 고종은 1902년 프랑스계 회사로부터 차관을 들여와 서울-개성간 공사 착공을 하고, 서울-목포, 서울-원산(경원선) ,원산-함북 경흥, 원산-평양-진남포, 함경북도 경흥-평북 의주까지 횡단하는 선로를 계획했다. 그러나 열강들의 방해로 이 계획은 이뤄지지 못했다.


  • 1900년대 초 대한제국 주재 이탈리아 총영사를 지낸 카를로 로제티는 저서 ‘한국과 한국인’에서 “지적인 면에서 황제는 복잡한 한자 뿐만 아니라 언문이라는 고유의 문자에 대해서도 매우 뛰어나다는 명성을 누리고 있다.. .그는 한국의 고대사와 근대사에 대해서도 뛰어난 지식으로 역사의 여러 논점이나 옛 관례에 대해 대신들 사이에 의문이 생겨날 때 경이로울 정도로 정확하게 그 문제를 해결해 준다... 몇몇 대신들이나 관리에게는 불만이 있고 조정에 대한 불평이 있음에도 백성들은 황제에 대해 항상 애정 어린 말들 뿐이다..”고 기술하고 있다.

     

    고종은 “병자년에 나라 문 열어 놓고 바다 밖 문물을 받아들였으나 백성들에게 혼란만 준 것은 아닌지 외적만 끌어드린 건 아닌지…”라며 문호를 개방하면서도 부작용에 대해 깊이 고민했던 왕이었다.

     

    고종황제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일제가 한일합병을 정당화하기 위해 유약하고 우유부단한 군주로 그렸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1897년 “조선”이라는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명한 것은 고종의 황제 즉위식에서였다.

    12세에 즉위해 독립된 대한제국을 꿈꾸었지만, 역사 속 가장 슬픈 왕으로 기록된 고종. 뮤지컬<명성황후>에서 고종 역을 맡은 배우는 어린 고종부터 중장년의 고종까지 표현해내야 한다.

     

    무대에서 공연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어린고종의 캐릭터부터 점점 성장해가는 비운의 황제를 노래해야 한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오는 3월 6일부터 4월 15일까지 제23주년을 맞은 뮤지컬<명성황후>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 무대에 올려진다. 그 중 가장 관심을 받는 인물 중 한 명이 고종황제 역할을 10여년째 이어가고 있는 뮤지컬배우 박완이다.

  • 2007년 27살에 첫 고종을 연기한 시간이 10년. 역대 명성황후 역을 맡았던 뮤지컬배우 이태원, 이상은, 김소현, 신영숙 등을 거쳐가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선배 배우들과 상대 배역으로 연기해왔다.

    고종으로써의 박완은 눈빛부터 발성까지 극의 흐름에 맞추어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역사를 담은 뮤지컬인 만큼 고종의 나이에 따라 극의 목소리를 다양하게 바꿔가며 표현해야 합니다.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섭정를 폐하고 국사를 다스리는 단호한 모습부터 약소국의 왕이 느껴야 했던 근심과 두려움을 붉은 용포자락 사이에 나오는 손짓만으로도 관객들이 느낄 수 있을만큼 세심하게 전달하려고 합니다.”

     

    박완은 “같은 역할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당시 고종의 고뇌가 어떠했는지 더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며 “최근 북핵문제를 둘러싸고 대한민국이 중요한 역할을 하려 해도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의 입김 때문에 왜곡되고 있는 현실이 구한말과 상통하는 면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연출가 윤호진이 고종 역할 10년의 박완을 선택한 것은 고종황제 당시와 오늘날 대한민국의 처지가 오버랩 되는 상황에서 원숙한 연기를 기대했기 때문은 아닐까.
     
    이번 23주년 때는 어떤 고종황제의 모습을 보여줄 것인지 그의 무대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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