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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동계올림픽 기간에 여객 수송을 이유로 중정비를 받아야 하는 구형 KTX가 강릉선에 투입됐던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안전 운행을 위해 정비공장에 보내 대수선해야 할 열차를 급한 불을 끄겠다며 국내외 올림픽 관람객을 실어나르는 데 투입한 것이다.KTX 안전불감증이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28일 코레일과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 3월부터 오는 8월까지 일부 고속열차에 대해 중정비가 이뤄지고 있다. 대상 열차는 총 5편성으로 구형 KTX1 3편성, KTX산천 2편성이다.
중정비는 정기 종합검진이라고 볼 수 있다. 철도차량을 분해해 수명이 다한 부품을 교체하고 주요 장치를 구석구석 점검한다. 부품 분해 등 검수항목이 300여개가 넘는다. 차량분리-장치탈거-부품분해-정비-부품조립-장치조립-차량조립-시험운전의 과정을 거치므로 1편성 점검에 한 달여가 걸리는 대수선이다.
중정비는 열차의 안전운행을 위해 필수적이다. 주행거리나 정비 주기에 맞춰 시행한다. 운영사 규정에 따라 다르나 고속철의 경우 600만㎞ 또는 15년 중 조건을 먼저 충족하면 시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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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번 점검대상 중 일부 열차가 진작에 중정비를 받았어야 함에도 점검을 미룬 채 지난 2월 평창올림픽 관람객을 실어나르기 위해 강릉선에 수십 차례 투입됐다는 점이다.
익명을 요구한 코레일 관계자는 "당시 열차가 많이 필요해서 (제때) 중정비를 못 했다"며 "중정비를 받아야 할 차량을 강릉선에 추가로 투입했다"고 말했다. 이어 "(원래 다른 노선을 운행했던) KTX1의 경우 (강릉선을) 46회 이상 운행한 것도 있다"며 "정비할 차량이 몰려서 중정비를 미리 하기도 어려웠다. 실질적으로 지난 1~3월 (중정비를) 못 했다"고 덧붙였다.
코레일 설명으로는 평창올림픽 기간 강릉선에 투입된 KTX는 기본 15편성이다. 하지만 개·폐회식 등에 몰리는 수요를 고려해 19편성 이상이 투입됐다. 편도 기준으로 하루 주중 18회, 주말 26회 운행하던 것을 51회로 늘려 운행했다.
올림픽 수요를 맞추려고 중정비에 들어갔어야 할 다른 노선 KTX를 강릉선에 임의로 투입한 것이다.
철도 전문가는 "사전정비는 사고 발생 확률을 줄이기 위한 안전관리로 반드시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며 "만약 올림픽 기간에 수백 명이 타고 이동하는 열차가 멈추기라도 했으면 어쩔 뻔했나. 상상이 안 가는 일"이라고 개탄했다. 이어 "열차차량이 부족한 것은 정비와는 별개의 문제"라며 "임의로 규정을 어겼다면 관련 규정을 다시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국토부가 이런 정황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코레일 한 관계자는 "국토부에서 평창올림픽 때 (강릉선을 운행한 일부 열차가) 주행주기를 넘겨 빡빡하게 운행했으니 8월까지 정비를 마무리하라고 지시해 3월부터 대수선에 들어간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국토부 철도운영과 관계자는 "올림픽 기간에 집중 운행이 발생하다 보니 다른 지역 노선에 배치됐던 열차를 빼서 강릉선으로 돌렸다"면서 "다만 이들 열차 중 중정비에 들어간 차량이 몇 대나 되는지는 확인해봐야 한다"고 했다.
국토부 철도운행안전과 관계자는 "중정비와 관련해 코레일에 공문을 보낸 적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코레일 한 관계자는 "국토부에서 (열차 정비와 관련해) 말로 지시할 때가 많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