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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 폭염 속에서 3300여 명의 약사가 모여 도심 집회를 열었으나 여론은 싸늘하기만 했다. 주말이나 야간에는 의약품을 구하기 힘든 국민들의 고충을 해결할 대책은 뚜렷이 제시하지 않은 채, '편의점 판매약 OUT'만 외쳤기 때문이다.
대한약사회는 이날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서 '국민건강 수호약사 궐기대회'를 개최했다. 이번 궐기대회는 편의점 판매약 확대를 저지하고 영리법인·기업형 약국 개설, 의약품 자동판매기 도입을 반대한다는 취지에서 열렸다.
집회 현장에서 약사들은 '편의점약 확대하면 약화사고 증가한다', '대면원칙 무시하는 화상투약기 철회하라', '법인약국 허용되면 동네약국 사라진다', '편리성만 추구하다 국민건강 결딴난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하지만 약사들의 외침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편의점 의약품 판매 확대를 중단하기에는 약국이 24시간 영업하지 않는 데다, 주말 당직 약국 제도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빗발친 것이다.
편의점 상비약 제도는 지난 2012년 보건복지부에서 감기약, 해열진통제, 소화제, 파스 등 4개 효능군의 13개 일반의약품을 편의점에서 판매할 수 있도록 한 정책이다.
일반시민 정모씨(27세·직장인)는 "요즘 약국들이 24시간 내내 하는 데도 많지 않기 때문에 이른 아침 출근하기 전이나 퇴근 후에는 편의점 같은 데서 (일반의약품을) 사면 편할 것 같다"며 "전문의약품 아니고 일반의약품 파는 정도는 부작용도 적은데 안된다고 하는 것은 약사들의 '제 밥그릇 챙기기'로밖엔 보이지 않는다. 시민들의 불편함은 도외시하는 것 같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이처럼 주말·야간에는 의약품을 구하기 어렵다는 지적에 대한 대책은 미비해 직능이기주의로 비치는 상황이다.
의약품유통업계 관계자는 "국민들은 '약국의 매출이 줄어드니까 직능이기주의'라는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보는 것"이라며 "요즘에는 최저임금제 때문에 24시간 열다가 안 여는 편의점이 매우 많아졌는데 기존 자격을 갖고 낮에도 약을 파는 경우가 늘었다"고 지적했다.
대한약사회에 따르면 기존에 허가한 24시간 편의점 중 24시간 영업을 중단한 편의점이 약 25%에 이른다. 애초 허가한 요건을 충족시키지 않으면서 의약품 판매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최헌수 대한약사회 홍보정책국장은 "안전상비의약품 제도는 사실 과도기적인 제도지, 이게 영속적으로 갈 수 있는 제도가 아니다"라며 "(2012년 도입) 당시 약의 접근성 확보 차원에서 일시적으로 (편의점에서 취급할 수 있도록) 허락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편의점 상비약으로 인해) 치료 시기를 놓친다든지, (약화사고의) 책임을 약을 사 먹는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도록 하하는 이런 제도가 어디 있나"라고 반문했다.
약국에서 산 약으로 인한 약화사고가 발생하면 해당 약을 판매한 약사가 책임을 지게 돼 있다. 반면 편의점에서 구입한 약의 책임은 온전히 구매자의 몫이다.
대한약사회는 취약 시간대로 인한 국민들의 의료 불편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서는 의료기관과 약국이 공조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이 구축돼야 한다고 봤다.
대한약사회는 '달빛 어린이 병원·약국'과 같은 제도를 내과, 이비인후과 등 다른 의료기관과도 협조하면서 확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달빛 어린이 병원'은 지역 거점의 소아과들이 밤늦게까지 운영해 소아·청소년들이 늦은 시간에도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지난 2014년 첫 도입된 의료기관이다. 인근 약국들을 중심으로 '달빛 어린이 약국'도 운영되고 있다.
아울러 공중보건의처럼 공중보건약사 제도를 만들어 각 지역의 보건소에서 야간·공휴일에 근무하도록 국가에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미 정착된 각 지역의 보건소를 통해 더욱 촘촘하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 국장은 "편리성만 따지면 안전불감증에 빠질 수 있다"며 "(의약품 문제를) 경제 논리로 접근하면 의약품에 대한 오·남용을 조장하는 것밖에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내달 8일 '편의점 상비약 지정 심의위원회'에서 편의점 판매 허용 약품에 지사제, 제산제 등을 추가할지 여부를 최종적으로 결정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