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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바이오 업계는 연구개발(R&D)비 회계처리 감독기준 마련에 앞서, 금융 당국에 업계 현실을 고려해줄 것을 요구했다.
금융위는 30일 오전 7시30분부터 여의도 거래소 19층 이사회 회의실에서 제약·바이오 업계 회계처리 투명성 관련 간담회를 진행했다. 해당 간담회에는 금융위 부위원장, 산업부 시스템산업정책관, 금감원 원승연 부원장, 제약·바이오 업체 및 협회, 회계법인, 회계기준원, 거래소 관계자 등 26명이 참석했다.
이번 간담회 개최는 금융 당국이 제약․바이오 기업의 연구개발비 회계처리 감독기준 마련에 앞서, 제약·바이오 업계 달래기에 나섰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이날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은 “신약개발의 경우, 회계기준을 적용함에 있어 상당한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다”며 “국내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선진국 글로벌 제약사의 회계처리 관행을 모든 국내 기업에 즉각적으로 동일하게 요구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제약·바이오 업계 연구개발비 회계처리기준 논란의 핵심은 신약 개발 과정의 연구개발비를 재무제표상 비용으로 인식하지 않고 무형자산으로 인식할 수 있는 시점에 대한 판단이 적절한가다.
글로벌 기준으로는 연구개발비를 비용으로 처리하는 게 관행이다. 금감원에서는 이 같은 지적을 바탕으로 최근 제약·바이오 기업의 연구개발비 회계처리에 대해 감리를 실시하고 있다. 지난 29일 기준 코스닥 시장 시가총액 상위 20개사 중 8개사가 바이오 기업인만큼, 투자자 보호 필요성이 높아졌다는 이유에서다.
그간 일부 제약·바이오 업체들은 연구개발비를 비용이 아닌 무형자산으로 처리해왔다. R&D 규모가 큰 업계 특성상 연구개발비를 어떻게 회계처리하느냐에 따라 이익 규모가 크게 변하기 때문이다.
제약·바이오 업계에서는 업계 현실과 괴리된 회계기준에 대해 우려가 컸다. 업계 관계자들은 R&D를 자산이 아닌 비용으로 회계처리할 경우, 경영상 어려움이 가중되고 관련 투자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토로해왔다.
이날 비공개로 진행된 간담회에서 제약·바이오 업계 관계자들은 연구개발비 회계처리에 대한 다양한 요구사항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신약, 바이오시밀러 등 약품 유형에 따른 연구개발 단계에서의 상품화 가능성 차이를 고려해 연구개발비 회계처리 기준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제약·바이오 업계 특성상 연구개발 단계부터 상품화가 될 때까지 오랜 기간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해달라는 얘기다.
자금 여력이 부족한 회사의 연구개발비 비용처리로 인한 부담을 덜어달라는 요구도 있었다. 시가총액이 높거나 연구개발비를 충당할 만큼 자기자본이 충실한 경우에는 상장을 유지해주는 방안도 검토해달라는 것. 스타트업·벤처의 경우, 재무실적만을 요구하기 보다는 미래가치, 기술력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주요 계약, 핵심연구인력 등은 사실상 기업의 영업 비밀에 가까운 사항은 공개 수위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 같은 제약·바이오 업계의 요구가 얼마나 받아들여질지는 내달 내에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 관계자는 “이날 논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관련업계, 회계법인 등과 추가 협의를 거쳐 ‘제약·바이오 기업의 연구개발비 회계처리에 관한 감독기준’을 내달까지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