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정지 무산되자 "검찰 수사지켜보겠다"며 입장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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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 신성철 총장의 거취는 결국 검찰의 손에 달리게 됐다. 과기정통부가 무리하게 밀어붙인 총장 직무정지가 무산된 가운데 팩트 규명이 가장 중요한 열쇠로 검찰의 수사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하지만 과학기술계 일각에서는 여전히 이번 사태가 정치권 개입에 의한 전정권 인사 찍어내기라며 반발하고 있고 과기정통부도 여전히 뒤끝어린 모습을 보이고 있어 갈등은 계속될 전망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7~8월 대구경북과학기술원(디지스트·DGIST) 감사에서 2013년 당시 디지스트 총장이던 신 총장이 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LBNL)에 고가 연구 장비 사용료를 지급하는 등 국가연구비 약 22억원을 횡령했다며 지난달 30일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 고발에 앞서 지난달 23일과 29일 신 총장을 상대로 면담조사를 진행했다는 과기부는, 카이스트에 총장 직무정지도 요구했다.
지난 14일 열린 카이스트 이사회에서는 직무정지 안건이 논의됐지만 이사 10명 중 제척 사유에 해당되는 신 총장을 제외한 9명이 참석한 가운데 절반 이상이 직무정지에 대해 '유보'를 결정했다. 사실상 신 총장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과기정통부는 이사회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무상 사용이 가능한 연구장비에 대해 사용료를 부당 집행하는 등 비위 혐의가 있어 조치한 것이라며 검찰 수사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신 총장이 이번 사안의 본질을 왜곡하고 국제문제로 비화시킨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앞으로 이같은 행동을 자제하기 바란다"며 "향후 교육자로서 검찰 수사에 성실히 임하고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하지만 검찰 고발에 이어 직무정지까지 요구받은 신 총장은 이달 초 기자감담회를 열고 "현금 지원은 장비의 독자 사용권한을 확보하기 위해 부담한 것"이라며 "현금 송금을 승인한 것은 맞지만 절차에 대해선 양 기관 연구 책임자 간 논의를 거쳤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디지스트와 LBNL 간 용역계약이, 미국 법에 의해 미국에너지부(DOE) 및 LBNL 규정에 의해 승인됐다는 점도 강조했다.카이스트 이사회가 신 총장에 대한 직무정지 결정을 유보한 상황에서, 과학계는 정부 부처의 고발에 대해 곱지 못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기관장 교체를 위한 정치권의 개입을 의심하는 상황이다. 신 총장은 지난해 2월 취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기 전 카이스트 총장직을 맡았다.
'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과실연)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관련 기관장들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퇴하는 모습은 개선되어야 할 적폐였다. 과학기술계에 정치권력의 개입은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연구 풍토를 침해하고, 방해하는 것"이라며 신 총장에 대한 검찰 고발 철회를 촉구했다.
'과기부의 부당한 처사'라며 카이스트 물리학과 교수 등 과학기술인 665명은 직무정지 반대 서명 운동에 동참했고,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과학기술계가 정권마다 반복되는 편 가르기, 줄 세우기를 거부하고 과학기술 발전을 저해하는 관행의 개선에 앞장 서기를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연구비 횡령 혐의 등이 가려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카이스트 이사회의 직무정지 결정 여부는 다소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카이스트 관계자는 "이사회 일정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사회가 열리기 전 의결 여부를 결정하는 데, 다음 이사회에서 (신 총장의) 거취에 대한 안건이 의결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지켜봐야 할 거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