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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7일 대한항공 정기주총을 앞두고 국민연금 결정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조양호 회장 연임에 반대하면 치열한 표대결이 예상되며, 기권할 경우에는 연임이 유력해진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의 고민이 깊어질 수 밖에 없으며, 기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이하 수탁위)는 이날 오후 회의를 열고 대한항공의 조양호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에 대한 의결권 행사를 결정할 예정이다.
국민연금 결정에 따라 조 회장의 연임 무게추가 달라질 수 있기에 대한항공은 물론 재계도 결과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조양호 회장을 포함한 오너 일가는 대한항공 지분 33.3%를 보유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11.6%를 보유하고 있는 2대주주이다.
대한항공 정관에 따라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은 주총 특별결의(과반수 출석에 3분의 2 이상 동의)를 거쳐야 한다. 2대주주인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던질 경우 승패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민주노총, 참여연대,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의 시민단체들이 조 회장의 연임 반대를 주장하고 있다. 일부 의결권 자문사들도 반대 의견을 권고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오너 일가의 일탈을 문제 삼으며 한진그룹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어 국민연금이 큰 부담을 느끼고 있는게 결정적이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기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연금 사회주의에 대한 우려와 정부의 지나친 경영간섭, 기업 옥죄기라는 지적이 재계에서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어서다. 국민연금이 정치적인 판단을 할 경우에는 향후 정권이 교체되면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측면도 있다.
형평성 논란도 제기될 수 있다. 앞서 국민연금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현대엘리베이터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에 대해 '기권' 결정을 내렸다. 현 회장이 배임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지만, 장기적 주주가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종합적 고려 때문이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도 특경법상 배임·사기·횡령·약사법 위반·국제조세조정법 위반·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이다.
즉, 아직 판결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조 회장의 도덕성을 문제 삼으며 연임에 반대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상장사협의회도 측면지원에 나섰다.
한국상장사협의회는 지난 24일 보도자료를 통해 “최근 주요 회사의 경영진 선임에 반대한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대해 상당수 상장기업이 우려하고 있다”며 “국민연금이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 및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의결권 행사를 해야 한다”고 밝힌 것. 또한 “확정된 범죄가 아닌 혐의를 받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경영진 선임 반대를 결정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오는 6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연차 총회가 서울에서 열리는데 조 회장의 연임이 무산되면 국제적 망신을 피할 수 없게 된다는 우려가 업계에 팽배하다. 국내 항공업계 전체의 위상이 무너지는 것이다.
전 세계 120여개국 280여개 항공사의 최고경영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으로, IATA 연차 총회가 한국에서 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올해 대한항공 창립 50주년을 맞아 조양호 회장이 몇년 동안 공을 들여 글로벌 항공업계 최고 회의를 국내에서 개최하도록 만든 것이다.
조 회장은 45년 이상 경력의 항공전문가로서 대한민국의 항공산업 위상을 전 세계에 떨칠 수 있는 기회이다. 조 회장이 대한항공 등기이사가 아닐 경우에는 손님들을 집들이에 초대 해놓고 집주인이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