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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오는 4월 대한항공 회장 취임 20주년을 맞았다. 조 회장은 1974년 대한항공에 입사해 정비, 자재, 기획, IT, 영업 등 항공업무에 필요한 실무분야를 두루 거쳤다. 현재 대한항공이 글로벌 항공사로 도약한 데는 조 회장의 리더쉽과 결단력이 한 몫했다.
조 회장 취임 이후 대한항공은 외형적으로도 크게 성장했다. 2018년 대한항공 매출액은 12조 6512억원으로 조 회장 취임 전인 1998년 매출 4조 5854억원보다 3배 늘었다. 자산은 7조 8015억원에서 24조 3947억원으로 증가했다. 보유 항공기 대수는 113대에서 166대로, 취항국가 및 도시 숫자는 27개국 74개 도시에서 44개국 124개 도시로 성장했다.
◇ 글로벌 항공동맹 ‘스카이팀’ 창설 주도…세계 유수 항공사와 어깨 나란히
1990년대 후반 세계 항공업계는 동맹체로 재편되는 변화의 흐름 속에 있었다. 유나이티드항공이 ‘스타얼라이언스’, 아메리칸항공이 ‘원월드’라는 항공동맹체를 만들었다. 조 회장은 델타항공과 손을 잡고 스카이팀(SkyTeam)을 만들기로 했다. 직접 델타항공에 동맹체를 제의하고, 개인적으로 친하게 지내던 에어프랑스 회장에게 직접 찾아가 뜻을 같이 하자고 설득했다.
이후 2000년 6월 대한항공, 델타항공, 에어프랑스, 아에로멕시코 등 4개 항공사가 참여한 스카이팀이 창설했다. 2000년 10월과 2001년 7월 체코항공과 알리탈리아가 각각 가세하면서 동맹체는 더욱 강화됐다. 특히 알리탈리아의 경우 당초 원월드에 가입할 생각이었지만, 조 회장이 직접 알리탈리아 회장에게 영입을 제의해 성사시켰다.
대한항공은 아시아 지역 항공사들을 스카이팀 회원사로 영입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신규 스카이팀 회원사들을 위해 업무 표준화와 기술 자문을 통해 스카이팀 멘토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스카이팀은 19개 회원사가 175개국 1150개 취항지를 연결하는 대표적 글로벌 동맹체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대한항공이 글로벌 명품 항공사로 도약하는데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 ‘위기는 곧 기회’…신규 항공기 도입과 과감한 투자로 성장동력 강화
항공산업은 경기의 영향을 많이 받는 산업이다. 유가, 환율, 금리 등 외생 변수에 대한 민감도도 높다.
특히 2000년대 초반은 항공산업에 있어 큰 위기였다. 2001년 9·11 테러, 2003년 이라크 전쟁과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등 잇따라 터진 악재 속에서 전 세계 항공사들은 구조조정, 항공기 주문 축소 등 움츠린 경영을 했다.
하지만 조 회장은 달랐다. 위기를 오히려 항공기 도입의 좋은 기회로 받아들였기 때문. 경기가 회복될 때 맞춰 항공기를 제 때 들여오지 못한다면 이것이 진정한 위기라고 봤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은 2003년에는 A380 초대형 차세대 항공기를, 2005년에는 보잉787 차세대 항공기를 연이어 도입했다.
조 회장의 예견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2006년 이후 세계 항공 시장은 회복세로 돌아서면서 항공사들은 앞다퉈 차세대 항공기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항공기 제작사가 넘치는 주문을 감당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새로운 항공기 도입까지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으로 반전됐다.
미래의 경기 전망, 항공 수요, 시장 판도를 정확히 읽었던 조 회장의 선견지명이었던 셈이다. 제때 차세대 항공기들을 도입한 대한항공은 이를 토대로 글로벌 선도 항공사로서의 위상을 더욱 높여갈 수 있게 됐다.
◇ 6년 연속 세계 항공화물수송 1위 달성
2004년은 대한항공에 있어 잊을 수 없는 한 해다. 매년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서 발표하는 세계 항공수송통계 국제항공화물수송 부문에 대한항공이 1위를 기록했기 때문. 당시 19년동안 이 부문에서 부동의 1위 자리를 고수해온 독일 루프트한자항공을 제쳤기 때문에 놀라움은 더 컸다.
조 회장이 2004년 대한항공 창사 35주년을 맞아 세계 화물수송 1위라는 미래 청사진을 발표할 때만 해도 실제로 이뤄지리라 여기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국제항공화물수송 1위는 2010년까지 6년 연속 이어졌다. 중앙아시아를 비롯한 신시장 개발 및 글로벌 네트워크 확장뿐 만 아니라, 신기재 도입 등의 투자 확대 등 적극적 투자가 뒷받침 됐기 때문이다.
◇ ‘투트랙 전략’…LCC 진에어 출범해 ‘Win-Win’
글로벌 항공산업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저가 경쟁으로 인해 저비용항공사(LCC)가 생기기 시작했다.
조 회장은 대한항공과 차별화된 별도의 LCC 설립이 필요하다고 확신했다. 이를 토대로 새로운 수요가 창출될 것이라고 내다봤던 것이다. 조 회장은 2005년 3월 새 유니폼 발표회에서 국제 단거리 노선을 운항할 LCC가 필요하다고 밝히고 3년 후인 2008년 7월 진에어가 첫 취항을 시작했다.
대한항공과 진에어는 이후 프리미엄 수요와 실용 수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투 트랙(Two Track) 전략을 펼쳐나가기 시작했다. 주력 수요층에 따라 취항 국제선 노선을 달리하며 노선 차별화를 진행한 것. 특히 대한항공은 프리미엄 수요 위주의 비즈니스 노선 전략을, 진에어는 상대적으로 낮은 운임의 관광 노선 위주의 전략을 펼쳤다.
진에어 출범 이후 대한항공이 이미 취항하던 노선에 진에어가 잇따라 취항하면서, 진에어 수요가 대한항공의 수요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신규 수요를 창출하는 등 상호 보완 효과를 통해 시장에 긍정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같은 노선이라도 수요층을 달리했기 때문에 오히려 항공시장 전체 시장을 키운 셈이 됐다. -
◇ 美 반독점면제 권한 획득…델타항공 조인트벤처 기반 마련
조 회장은 대한항공 회장 취임 이후 반독점면제(ATI, Anti-trust Immunity)를 선제적으로 받을 것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은 2002년 미국 교통부로부터 반독점면제 권한을 취득했다.
반독점면제란 기업간의 협정이 공공의 이익에 반하지 않고, 실질적으로 경쟁을 저해하지 않을 때 반독점법 적용을 면제해주는 제도다. 반독점면제 승인을 받으면 경쟁업체들의 법적 제소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지난해 5월 델타항공과의 태평양노선 조인트벤처를 시작한 것도 반독점면제 권한 취득이 초석이 됐다.
이는 항공시장을 예측하는 조양호 회장의 선견지명과도 닿아 있다. 스카이팀이라는 항공동맹체를 만드는 와중에도 항공동맹체 체제로만은 경쟁의 파고를 넘기 어려운 환경이 나타날 것이라고 봤다.
델타항공과의 조인트벤처는 치열한 글로벌 항공시장 경쟁을 뚫을 창이 됐다. 지난해 대한항공 실적 개선에도 큰 역할을 했다. 조인트벤처 시행에 따른 시너지 효과가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 이전과 함께 큰 역할을 해 여객 매출만 10% 증가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조양호 회장의 항공시장 흐름 예측과 과감한 투자가 있었기에 대한항공 50년 역사도 가능했다”며 “대한항공이 위기를 이겨내고, 정부에게 자금 지원 또한 한번 받지 않고 글로벌 항공사로 성장했다는 점은 높게 평가할만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