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감정원(이하 감정원)이 토지·부동산 등의 감정평가 업무에서 공식적으로 손을 뗀 지 3년이 되어 간다. 감정원은 정부 위탁사업을 통해 표준지 공시지가 조사·평가 부대업무를 수행할 뿐 감정평가행위를 하면 '감정평가 및 감정평가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벌받는다. 하지만 감정원은 여전히 시장과 업계에서 뜨거운 감자다. 감정평가 영역의 언저리에서 아슬아슬 줄타기한다는 지적이 적잖다. 기관 이름에서부터 대외 행보, 공공기관 구분유형에 이르기까지 혼란스럽기만 한 감정원의 정체성에 대해 짚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편집자 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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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시장형 공기업으로 분류된 한국감정원의 공공기관 지정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감정평가 시장에서 철수하면서 정부 예산 의존도가 커져 사실상 위탁집행형 준정부기관 성격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재정 당국의 공공기관 운영이 주먹구구로 이뤄지면서 민간은행과 소수의 개인주주 배를 불리는 데 혈세가 낭비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31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감정원은 준시장형 공기업으로 분류돼 있다.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공운법)에 따르면 준시장형 공기업은 직원 정원이 50인 이상이고 자체수입액이 총수입액의 절반 이상인 공공기관을 말한다.
관건은 감정원이 이 기준을 충족하고 있느냐이다. 기재부와 감정원은 감정원의 자체수입액 비중이 총수입액의 63.7% 수준이라고 밝혔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인 알리오에 들어가 보면 지난해 감정원의 총수입액은 1531억4500만원이다. 이 중 보조금, 위탁수입 등 정부의 직·간접 지원 수입은 1510억2300만원으로 전체의 98.6%를 차지한다. 돌려 말하면 자체수입은 전체의 1.4%에 불과하단 얘기다. 기재부와 감정원이 밝힌 자체수입비율과 큰 차이를 보인다.
이유는 기재부 등이 자체수입액을 따질 때 정부 간접지원 중 사업수입을 제외하고 위탁수입만 계산하기 때문이다. 감정원의 정부 지원 사업수입은 녹색건축 인증, 도로 개설에 따른 보상업무 수탁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사업은 정부 예산으로 수행하는 데다 사업시행자가 제한돼 있어 경쟁을 통해 얻은 수입이라고 하기엔 논란의 여지도 없잖다.
지난해 감정원의 위탁수입액은 967억7300만원이다. 어림잡으면 주택가격 공시업무 지원예산이 500억원, 토지가격 공시업무 지원예산이 400억원쯤이다. 이는 전체수입액의 63.4%에 해당한다. 자체수입 비중은 36.8%라는 말이다. 여전히 기재부 등이 밝힌 자체수입비율과 차이가 크다.
재정 당국은 공운법 시행령 제6조(총수입액 등의 산정방법 등)에 따라 총수입액은 최근 3개년 평균으로 계산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기준으로 감정원의 총수입액과 자체수입액을 따질 때 2015~2017년 결산기준 재무제표를 기초로 삼는다는 것이다.
알리오에서 감정원의 2015~2017년 평균 총수입액을 합산하면 총 4276억9200만원이다. 이 가운데 정부 지원 위탁사업 수입액은 총 2194억원쯤이다. 자체수입 비중을 계산하면 48.7%가 나온다. 기재부 등이 밝힌 자체수입비율 63.7%와 비교하면 차이가 있지만, 자체수입 비중이 공기업 요건인 총수입액의 2분의 1에 근접한다.
문제는 상법상 주식회사인 감정원이 2016년 9월 한국감정원법 시행에 따라 특수법인으로 전환됐다는 점이다. 이때부터 감정원은 감정평가 업무에서 손을 뗐다. 자체수입이 현저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재정 당국은 감정원이 시장에서 감정평가 업무를 보던 2015년과 2016년 1~8월 수입을 포함해 3개년 평균을 냈다. 감정원의 자체수입액 비중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감정원이 특이한 사례이긴 하다"고 인정했다. 다만 "3개년 평균을 따지는 것은 대내외적 변수가 생길 수 있는데 이를 고려하지 않으면 매년 공공기관 유형이 바뀌어 안정적으로 관리되지 않기 때문"이라며 "현행 기준에 따라 자체수입액 등을 산정했고 이를 토대로 공기업으로 분류했다"고 부연했다. -
2015~2017년 감정원의 위탁수입에 75%의 가중치를 적용하면 정부 지원수입은 2194억원이 아닌 1645억5000만원이 된다. 이는 같은 기간 총수입액 4276억9200만원의 38%쯤에 해당한다. 돌려 말하면 자체수입비율은 62%쯤으로, 기재부 등이 밝힌 63.7%와 비슷해진다.
부동산·자산관리분야 전문가는 "중간에(2016년 9월) 감정원의 주요 기능과 수입원이 달라졌는데도 연장선에서 보아 2015~2017년 3개년 평균으로 총수입을 산정한 것도 모자라 가중치를 멋대로 적용해 장난을 친 것으로 보인다"며 "준시장형 공기업 요건을 갖춘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꼼수를 부린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감정원이 감정평가 시장에서 철수한 2017년 결산자료를 떼어내 살펴보면 총수입액은 1437억8500만원이다. 이 중 정부위탁수입은 985억원쯤이다. 금액만 놓고 보면 정부 예산 의존도는 68.5%에 달한다. 반대로 자체수입 비중은 31.5%에 그친다. 여기에 75% 가중치를 적용하면 정부위탁수입액은 738억7500만원이 된다. 정부 예산 의존비율은 51.4%로 17.1%포인트(P) 낮아지고, 자체수입 비중은 48.6%로 17.1%P 높아지는 매직이 연출된다.
전문가는 분모에 해당하는 총수입액에는 가중치를 적용하지 않고 분자에만 가중치를 부여해 정부 지원수입을 축소하면 자체수입 비중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가중치를 주려면 분모에도 똑같이 적용해야 형평에 맞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총수입액은 250억원쯤이 감소한다. 정부 예산 의존도는 62.2%, 자체수입 비중은 37.8%가 된다. 지난해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자체수입 비중은 43.4%에 머문다. 전문가는 "이런 추세를 반영하면 감정원은 조만간 3년 평균 자체수입액이 총수입액의 절반을 밑돌아 준시장형 공기업 지정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자체수입이 적어 정부 예산으로 버티는 실정이라면 공단 같은 위탁집행형 준정부기관으로 변경하는 게 맞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공기업인 감정원이 정부 지원수입에 의존하면서 예산만 낭비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감정원은 지난해 4월 기준으로 공공지분이 49.4%다. 나머지는 한국산업은행 30.6%, 하나은행 6.8%, 우리은행 6.6%, 신한은행 3.3% 등이다. 눈에 띄는 대목은 19명의 개인주주가 3.3% 지분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감정원법 시행 이전에 이들 개인지분을 정리해야 했지만, 정부가 지분을 사들일 의무가 없다며 손을 놓는 바람에 사실상 혈세로 민간은행과 몇몇 개인의 배만 불려주고 있는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