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시설별 교체 소요, 항목별 투자액 공개 안 해교통안전공단, 기재 누락 여부만 확인하는데 그쳐국민 눈높이 외면… 국토부, 제도 도입 후 방치
- 철도운영자가 경영상 이익을 좇느라 기본적인 안전투자를 소홀히 하지 않게 철도안전투자 공시제가 도입됐다. 하지만 투자공시 내용이 '깜깜이'여서 반쪽짜리 공시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철도운영자가 자체 예산을 한 푼도 쓰지 않아도 국비나 지방비를 지원받으면 실적에 반영되는 구조여서 철도운영자가 안전에 얼마나 관심을 두고 있는지 파악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지난해 실적을 중심으로 주요 철도운영자의 안전투자 현황과 공시제 문제점을 살펴본다. <편집자 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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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달 말부터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운영하는 철도안전정보종합관리시스템을 통해 철도운영자별로 안전투자 관련 내용을 공시하고 있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와 수서발 고속철(SRT)을 운영하는 ㈜에스알(SR)을 비롯해 서울교통공사, 공항철도㈜, 대전도시철도공사, 우이신설경전철 등 전국의 16개 철도운영자가 공시 대상이다. 지난 4월 시행자가 바뀐 의정부경전철은 자료가 빠진 상태다.
정부는 철도운영자가 이익을 우선하느라 안전에 소홀하지 않게 안전투자 공시제를 2015년 도입했다. 매년 철도운영자가 낡은 차량 개선 등 안전투자 규모를 일반 국민에게 공개하도록 했다. 시범운영을 거쳐 지난해 12월부터 본격 시행에 들어갔고, 공식적인 첫 공시가 지난달 말 이뤄졌다.
문제는 공시가 구체적인 내용은 빠진 채 단순히 총금액만 공개된다는 점이다. 어떤 부분에 얼마의 예산이 투자됐는지 알 길이 없어 일반 국민에게는 숫자놀음에 불과할 뿐이다.
철도차량 교체비를 예로 들면 코레일은 지난해 자체수입으로 1697억원을 투자할 계획이었다. 투자실적은 국비 77억원에 자체수입 1892억원을 합쳐 총 1969억원이었다. 계획 대비 실적은 116%다. 앞선 2017년 투자실적은 82%였다. 이와 비교하면 안전투자가 늘어난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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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실적을 함께 비교하면 사정은 달라진다. 2016년 투자실적은 지난해와 같은 116%였다. 자체수입 667억원을 투자할 계획이었는데 더 많은 771억원을 집행했다. 하지만 2016년 투자 규모는 지난해의 40.7% 수준에 그친다. 투자계획을 낮춰 잡는 방법으로 얼마든지 투자실적을 부풀릴 수 있다는 얘기다. 낡은 철도차량 1량을 교체할 계획을 세워 2량을 바꾸면 투자실적은 200%가 되지만, 10량을 교체하려다 7량만 바꾸면 투자실적은 70%가 되는 식이다.
일각에서는 계획과 실적으로 나눠 국비·지방비와 자체수입 규모를 보여주는 현재의 공시 방법으로는 구체적인 투자내용을 알 수 없어 제도 도입의 취지가 무색하다고 지적한다. 20년 이상 된 낡은 차량 보유 현황과 연도별 교체 계획에 따른 투자 실적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하지만, 현 공시방식은 이를 보여주지 못한다. 국토부가 2015년 철도안전 혁신대책을 내놓으며 밝힌 바로는 전체 철도차량 2만2878량 중 20년 이상 된 낡은 차량이 4835량으로 전체의 21%를 차지한다. 교통안전 관련 업계 한 관계자는 "애초 차량·시설 등 항목별 교체 소요를 포함해 투자계획과 실적을 공시하기로 했었다"면서 "법령을 만드는 과정에서 세부 내용을 공개하는 게 철도운영자에게 무리한 부담을 줄 수 있다고 해 공시 내용을 간소화했다"고 부연했다. 안전투자에 부담을 느낀 철도운영자의 목소리가 반영되면서 반쪽짜리 공시제로 전락한 셈이다. -
코레일은 공시업무를 담당하는 안전계획처 관계자는 공시 금액의 구체적인 내용을 묻자 정확한 설명을 하지 못했다. 철도차량 교체비의 경우 디젤기관차, 한국형 동력분산식 고속전철(EMU) 등의 도입 시기별 총사업비를 설명했지만, 정작 지난해 공시금액 중 차량별 투자비에 대해선 모르고 있었다. 답변을 차량기술단에 넘겼지만, 차량기술단 책임자도 즉답을 못 하긴 마찬가지였다.
제도를 도입한 국토부도 관심이 없기는 매한가지다. 국토부 관계자는 철도안전투자 공시 여부를 묻자 "공시가 5월 말이니 시행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시 여부를 확인조차 안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