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시설별 교체 소요, 항목별 투자액 공개 안 해교통안전공단, 기재 누락 여부만 확인하는데 그쳐국민 눈높이 외면… 국토부, 제도 도입 후 방치
  • 철도운영자가 경영상 이익을 좇느라 기본적인 안전투자를 소홀히 하지 않게 철도안전투자 공시제가 도입됐다. 하지만 투자공시 내용이 '깜깜이'여서 반쪽짜리 공시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철도운영자가 자체 예산을 한 푼도 쓰지 않아도 국비나 지방비를 지원받으면 실적에 반영되는 구조여서 철도운영자가 안전에 얼마나 관심을 두고 있는지 파악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지난해 실적을 중심으로 주요 철도운영자의 안전투자 현황과 공시제 문제점을 살펴본다. <편집자 註>
  • ▲ 열차 탈선현장.ⓒ연합뉴스
    ▲ 열차 탈선현장.ⓒ연합뉴스
    철도안전투자공시제가 내용을 알 수 없는 깜깜이 공시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민 눈높이가 아니라 철도운영자 입장에서 공시가 이뤄진다. 일각에선 벌써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7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달 말부터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운영하는 철도안전정보종합관리시스템을 통해 철도운영자별로 안전투자 관련 내용을 공시하고 있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와 수서발 고속철(SRT)을 운영하는 ㈜에스알(SR)을 비롯해 서울교통공사, 공항철도㈜, 대전도시철도공사, 우이신설경전철 등 전국의 16개 철도운영자가 공시 대상이다. 지난 4월 시행자가 바뀐 의정부경전철은 자료가 빠진 상태다.

    정부는 철도운영자가 이익을 우선하느라 안전에 소홀하지 않게 안전투자 공시제를 2015년 도입했다. 매년 철도운영자가 낡은 차량 개선 등 안전투자 규모를 일반 국민에게 공개하도록 했다. 시범운영을 거쳐 지난해 12월부터 본격 시행에 들어갔고, 공식적인 첫 공시가 지난달 말 이뤄졌다.

    문제는 공시가 구체적인 내용은 빠진 채 단순히 총금액만 공개된다는 점이다. 어떤 부분에 얼마의 예산이 투자됐는지 알 길이 없어 일반 국민에게는 숫자놀음에 불과할 뿐이다.

    철도차량 교체비를 예로 들면 코레일은 지난해 자체수입으로 1697억원을 투자할 계획이었다. 투자실적은 국비 77억원에 자체수입 1892억원을 합쳐 총 1969억원이었다. 계획 대비 실적은 116%다. 앞선 2017년 투자실적은 82%였다. 이와 비교하면 안전투자가 늘어난 것처럼 보인다.
  • ▲ 코레일 철도안전투자공시 내용 일부.ⓒ철도안전정보종합관리시스템
    ▲ 코레일 철도안전투자공시 내용 일부.ⓒ철도안전정보종합관리시스템

    2016년 실적을 함께 비교하면 사정은 달라진다. 2016년 투자실적은 지난해와 같은 116%였다. 자체수입 667억원을 투자할 계획이었는데 더 많은 771억원을 집행했다. 하지만 2016년 투자 규모는 지난해의 40.7% 수준에 그친다. 투자계획을 낮춰 잡는 방법으로 얼마든지 투자실적을 부풀릴 수 있다는 얘기다. 낡은 철도차량 1량을 교체할 계획을 세워 2량을 바꾸면 투자실적은 200%가 되지만, 10량을 교체하려다 7량만 바꾸면 투자실적은 70%가 되는 식이다.

    일각에서는 계획과 실적으로 나눠 국비·지방비와 자체수입 규모를 보여주는 현재의 공시 방법으로는 구체적인 투자내용을 알 수 없어 제도 도입의 취지가 무색하다고 지적한다. 20년 이상 된 낡은 차량 보유 현황과 연도별 교체 계획에 따른 투자 실적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하지만, 현 공시방식은 이를 보여주지 못한다. 국토부가 2015년 철도안전 혁신대책을 내놓으며 밝힌 바로는 전체 철도차량 2만2878량 중 20년 이상 된 낡은 차량이 4835량으로 전체의 21%를 차지한다. 교통안전 관련 업계 한 관계자는 "애초 차량·시설 등 항목별 교체 소요를 포함해 투자계획과 실적을 공시하기로 했었다"면서 "법령을 만드는 과정에서 세부 내용을 공개하는 게 철도운영자에게 무리한 부담을 줄 수 있다고 해 공시 내용을 간소화했다"고 부연했다. 안전투자에 부담을 느낀 철도운영자의 목소리가 반영되면서 반쪽짜리 공시제로 전락한 셈이다.

  • ▲ 최근 5년간 철도사고 사상자 발생현황.ⓒ철도안전정보종합관리시스템
    ▲ 최근 5년간 철도사고 사상자 발생현황.ⓒ철도안전정보종합관리시스템
    공시 내용의 신뢰도도 논란거리다. 공시제도를 위탁운영 하는 교통안전공단은 철도운영자가 공시자료를 보내오면 자료의 적격성을 따진 후 공시 여부를 판단한다. 그러나 실상은 철도운영자가 보내준 자료가 표준양식에 맞는지, 기재가 빠진 항목은 없는지만 확인할 뿐이다. 교통안전공단 관계자는 "공시 전에 수치(금액)가 제대로 적혀있는지, 필요하면 전화 걸어 물어볼 뿐"이라고 말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철도운영자 회계를 일일이 들여다볼 수 없어 자료를 검증할 방법이 없다"면서 "서식의 항목에 기입이 누락된 곳은 없는지 살펴볼 뿐 정확히 적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운영기관이 보낸 자료를 믿고 등록만 하는 수준이어서 엉성하다"고 설명했다.

    코레일은 공시업무를 담당하는 안전계획처 관계자는 공시 금액의 구체적인 내용을 묻자 정확한 설명을 하지 못했다. 철도차량 교체비의 경우 디젤기관차, 한국형 동력분산식 고속전철(EMU) 등의 도입 시기별 총사업비를 설명했지만, 정작 지난해 공시금액 중 차량별 투자비에 대해선 모르고 있었다. 답변을 차량기술단에 넘겼지만, 차량기술단 책임자도 즉답을 못 하긴 마찬가지였다.

    제도를 도입한 국토부도 관심이 없기는 매한가지다. 국토부 관계자는 철도안전투자 공시 여부를 묻자 "공시가 5월 말이니 시행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시 여부를 확인조차 안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