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 과장' 직급 체계 없애고, '수평적 조직' 문화 도입'호칭 파괴', '유연한 조직 경영' 통해 미래시장환경 탄력적 대응'승진기회' 적고 '동기부여' 안되… 직급 폐지 우려의 목소리도
  • "부장, 과장 모두 동일한 호칭으로 불려요."

    국내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에 '직급 폐지' 바람이 한창이다. 기존 부장, 과장 등 기업 내 계급장이 사라지고, 호칭 문화가 통일되는 추세다. 

    보고체계 간소화를 통해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 수평적인 소통으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발굴하겠다는 '경영 혁신' 의지가 담겨있는 것.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정형화된 과거 방식에서 벗어나 '유연한 조직 경영'을 통해 미래 시장환경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복안이다.

  •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이 SK브로드밴드 직원들 앞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SKT 제공
    ▲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이 SK브로드밴드 직원들 앞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SKT 제공
    '~님' 문화 도입한 이통사… 임원 직급까지 폐지 

    국내 대표 이통사들은 지난해부터 사내 호칭을 '님'으로 통일, 수평적 문화 구축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SK텔레콤은 이달부터 부사장과 전무·상무로 구분됐던 직급을 본부장 또는 그룹장으로 일원화하는 골자의 임원 직급 폐지를 결정했다. 최태원 SK 회장이 추진하고 있는 '일하는 방식의 혁신' 일환으로 수평적 조직문화를 이루기 위한 전사적인 조치가 이뤄진 것.

    앞서 SK텔레콤은 지난 2006년 기존 5단계(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였던 일반 직원들의 직급 체계를 팀장과 매니저로 단일화 해 지금까지 유지해 오고 있다. 사내에서는 팀장, 매니저 간 직급 대신 이름 뒤에 '님'을 붙이는 방식으로 통일했다.

    LG유플러스도 지난 2017년 직급 체계를 '사원·선임·책임' 3단계로 변경하는 내용의 인사제를 도입했다. 기존 4년차까지 사원은 기존 호칭대로 '사원', 5년차 이후 대리나 과장(9~13년차)은 '선임', 14년차 이후의 차장과 부장은 '책임'으로 나눴다.

    게임업계도 '수평적 문화' 조성 앞장… "대표도 대리도 '님'으로 통일"

    게임업계 역시 일찌감치 직급제를 없애고 기업 문화 혁신에 앞장서고 있다. 

    국내 게임업계 1위 업체인 넥슨은 지난 2014년 3월 박지원 전 대표 취임 이후 전 임직원이 직급 대신 '님'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넥슨은 현재 실장, 팀장 등 대외적 직책이 있지만 사내에선 전 임직원의 호칭을 '님'으로 통일한다.

    넷마블도 2016년 임직원 간 다양한 의사소통 및 적극적인 의견 개진을 위해 직급제를 폐지했다. 2014년부터 전사적으로 '님' 문화를 도입해 방준혁 넷마블 이사회 의장도 사내에서는 '방준혁님'으로 불리고 있다.

    엔씨소프트 역시 2017년 창사 20주년을 맞아 조직문화 개편의 일환으로 김택진 대표를 비롯한 임직원 간 사내 직급을 폐지했다. 호칭을 직급에 관계 없이 '님'으로 통일하기 앞서 김 대표가 "이제부터 저를 '택진님'이라고 불러주세요"라고 언급한 일화는 업계에서도 유명하다.
  • 카카오 직원들이 '스탠딩 데스크'에서 일을 보고 있다. ⓒ카카오 제공
    ▲ 카카오 직원들이 '스탠딩 데스크'에서 일을 보고 있다. ⓒ카카오 제공
    직책 폐지하고 '파격적 호칭' 도입… 자유로운 분위기 속 '직원들 창의성' 발굴

    네이버와 카카오 등 대형 포털사들의 파격적인 호칭 문화도 눈에 띈다. 네이버는 부문별 리더 외에는 직급을 폐지했으며 카카오는 파트장, 팀장과 같은 직책자만 있고 직급은 없다. 

    네이버는 임원(이사)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직원들은 '님' 혹은 '매니저'로 부른다. 등기임원 외에는 공식적으로 임원 직급이 없으며, 업무를 주도적으로 수행하는 이에게 '리더'라는 직위를 부여해 왔다.

    카카오의 경우 설립 초기부터 직급을 생략한 채 '영어 호칭'을 도입해 친근한 기업 분위기 형성을 유도해 나가고 있다. 대표적으로 김범수 의장의 호칭은 '브라이언', 여민수·조수용 카카오 공동대표는 '메이슨·션'으로 불린다. 이와 함께 직급과 관계 없이 영어 이름을 사용하며 일할 수 있는 '스탠딩 데스크'를 도입, 자유로운 업무환경을 마련했다. 

    간소화된 직급 호칭 능사 아니야… '승진기회' 적고 '동기부여' 안돼

    다만 일부 직원들 사이에서는 간소화된 직급 호칭에 혼란을 느낀다는 불만도 제기되고 있다. 기업별 호칭이 다른데다가 '상명하복'식 조직 문화가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는 지적에서다. 오히려 승진기회가 적어 사기진작 및 동기부여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KT의 경우 이통사에서 예외적으로 일반 직원 대상 전통적 직급 체계 및 호칭을 유지하고 있다. KT는 지난 2010년 사원부터 부장까지 호칭을 모두 '매니저'로 통일하는 제도를 도입했으나, 4년 만인 2014년 '매니저' 호칭을 폐지하고 직급 체계를 부활시켰다. 

    네이버 역시 2017년 폐지한 임원 직급을 2년 만에 재도입했다. 리더와 대표급(C레벨) 사이 중간 관리자급 직책으로 '책임리더' 직급을 신설해 계약 갱신 및 보유 주식에 대한 공시 의무를 부여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한국사회 전통적으로 직급에 따른 인사체계가 나눠져 있고, 이에 따른 승진 인센티브는 직원들의 동기부여에 큰 역할을 해왔다"면서 "특히 단순히 호칭을 통일한다고 해서 소통이 활발해진다는 것에 공감하는 직원들은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