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위원장, 중견기업 일감몰아주기 정조준"지금은 일감 나눠주기할 때"부당거래·사익편취 경고 메시지
  • ▲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22일 서울 중구 상의회관에서 ‘공정한 시장경제 생태계 조성을 위한 공정위 정책방향’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박성원 기자
    ▲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22일 서울 중구 상의회관에서 ‘공정한 시장경제 생태계 조성을 위한 공정위 정책방향’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박성원 기자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중견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실태를 집중조사해 엄정한 법집행에 나서겠다고 경고했다.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 보다 중견기업에 부당 내부거래와 사익편취가 더 많이 나타난다며 ‘대수술’을 예고했다.

    22일 대한상공회의소는 서울 중구 상의회관에서 조성욱 위원장을 초청해 CEO간담회를 개최했다. 조 위원장은 ‘공정한 시장경제 생태계 조성을 위한 공정위 정책방향’이란 주제로 강연했다.

    조 위원장은 “공정위는 일감 몰아주기 등 부당거래에 관해 엄정한 법집행에 나설 계획”이라며 “특히 5조원 미만 기업집단을 대상으로 예전부터 축적한 자료를 바탕으로 사익편취와 부당 내부거래가 면밀히 조사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편법 경영승계를 위해 총수 일가의 지분이 높은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경우를 중심으로 조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는 전임 위원장이던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의 정책방향과 궤를 같이 한다. 김 실장은 공정위원장 시절 일감 몰아주기 등 내부거래가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에 이용되고 있다며, 대기업·중견기업 집단과 간담회를 갖고 이를 근절하라며 강하게 압박한 바 있다.

    조성욱 위원장은 “공정한 경제생태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일감 몰아주기가 아닌 일감 나눠주기가 필요하다”며 “기업집단이 중소기업에 일감을 나눠줄 경우 동반성장지수 측정 등 공정위가 진행하는 측정에서 높은 평가를 줄 방침”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공정위는 부당거래가 적발될 경우 현 수준의 범칙·과징금 보다 더 많은 금액을 부과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기업이 지난해까지 미국이나 유럽연합(EU) 등의 해외 경쟁당국으로부터 가격담합으로 제재를 받은 사례는 25건이다. 이때 부과된 과징금은 약 3조6000억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해외와 달리 과징금이 적어 기업들이 부당거래 근절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며, 조 위원장은 과징금 부과액수를 확대할 계획임을 시사했다.
  • ▲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22일 서울 중구 상의회관에서 열린 CEO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박성원 기자
    ▲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22일 서울 중구 상의회관에서 열린 CEO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박성원 기자
    조성욱 위원장의 경고에 중견기업에는 비상이 걸렸다. 전체 실적에서 내부거래액이 상대적으로 많은 중견기업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해 8월 사익편취 규제 총수일가 지분 기준을 상장·비상장사 모두 20%로 일원하는 등 규제대상을 확대하는 공정거래법을 입법예고한 상황이다. 또 총수 일가가 지분 20% 이상을 보유한 기업이 50% 이상 지분을 가진 자회사도 규제대상에 포함시키려 한다.

    총수 일가가 지분을 보유하지 않더라도 간접적으로 지배하고 있던 기업도 규제대상이 되는 것이다. 즉, 현재까지 내부거래로 제재를 받지 않던 자회사나 손자회사 등도 문제가 된다.

    간담회 참석자들은 조성욱 위원장의 경고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미중 무역분쟁과 일본 수출규제, 노동환경 벽화 등 대내외 불안요인이 산적한 상황에 공정위가 대대적인 실태조사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밝혀서다.

    간담회에 참석한 한 재계 관계자는 “제품개발에 있어 우리 기업만 특허나 관련설비를 가지고 있을 경우 내부거래를 할 수밖에 없다”며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아진 상황에 일감 몰아주기를 근절하겠다고 나선 것은 엎친데 덮친격”이라고 토로했다.

    중견기업 관계자는 “내부거래를 면밀하게 조사한다는 것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등 경제계의 부담이 가중된 상황에서 공정위가 발목을 잡는 격”이라며 “기업의 존속경영이 위협받는 시점에 정당한 내부거래 마저 위법으로 판단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전했다.

    조성욱 위원장은 공정위가 내부거래를 금지하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공정위 법규에 ‘부당 내부거래만 금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기업 측에서 ‘공정함’을 증명한다면 제재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조 위원장은 “일감 몰아주기의 근본적인 문제는 상속을 위한 편법승계에 있다”며 “현재 부당의 의미를 구체화하는 작업을 내부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공정위는 기업을 발목 잡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건전한 경제 생태계 구성에 기업들이 많이 협조해주기를 바란다”고 끝맺었다.

    한편, 국회에 따르면 공정위는 최근 10년간 중견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사건 40건 중 6건만 경고나 과징금 제재를 실시했다. 40건 중 무혐의 처분이 25건, 심사·심의 절차가 종료된 것은 9건이다. 경고는 3건, 시정명령은 1건, 과징금은 2건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