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 증인 370명 중 기업인만 200명 육박 … 정치권 ‘경제 청문회' 공세정무위·행안위·산자위 등 전방위 소환 … 정의선·정용진도 명단 포함재계 "외교 일정·투자 위축 우려" … 보여주기식 청문회 비판
  • ▲ 윤한홍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장이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뉴시스
    ▲ 윤한홍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장이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뉴시스
    올해 국정감사(국감) 일정이 본격화하면서 재계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각 상임위원회가 소환한 증인 가운데 기업인 비중이 예년보다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현재 국회가 잠정 확정한 증인 명단에는 약 370여 명이 이름을 올렸는데, 이 가운데 기업인만 190명을 넘어서며 최종적으로는 200명을 훌쩍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정치적 과잉소환이 '외교 결례'로 이어진다는 논란이 나온다.

    7일 재계에 따르면 오는 13일부터 31일까지 3주간 진행하는 국감에 기업인들이 대거 소환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는 정권 중반기 점검이라는 정치적 의미가 겹쳐 기업인 소환이 유난히 잦아졌다. 여야 모두 민생과 경제 현안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업계에서는 외교적 파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논란의 중심에는 SK그룹 최태원 회장이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최 회장을 ‘경제민주화 및 재벌 지배구조 개선 관련' 증인으로 채택했다. 문제는 그가 오는 28일 열리는 국감 일정과 같은 시기에 부산에서 개최되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CEO 서밋'의 의장을 맡고 있다는 점이다. APEC CEO 서밋은 21개 회원국의 정상과 글로벌 기업 CEO들이 참석하는 국제행사로, 최 회장은 의장 자격으로 해외 주요 인사와 연쇄 회담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재계에서는 국익 차원의 외교무대 준비로 바쁜 인사를 국감 증인으로 부르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는 반발이 터져 나왔다. 정부가 앞장서 국제행사를 치르면서, 정작 의장을 맡은 기업인을 국감장에 세우는 건 모순이라는 지적과 더불어 기업 망신주기식 청문 관행이 또 반복되고 있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정무위뿐 아니라 다른 상임위에서도 기업인 소환이 줄줄이 이어진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행정안전위원회 증인 명단에 포함됐다. 최근 불거진 불법집회로 인한 산업 현장 혼란과 노조 관련 경영 책임 문제가 주요 질의 대상이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도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증인으로 채택됐다. 신세계와 알리바바의 합작법인 ‘글로벌 커머스 얼라이언스'가 중국 내 개인정보 유출 이슈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탓이다.

    건설업계 대표들도 줄줄이 국감장으로 불려간다. 국토교통위원회는 10대 대형 건설사 가운데 8곳의 CEO를 증인으로 소환했다. 분양가 상한제 논란, 부실 시공, 재건축 안전진단 문제 등이 도마 위에 오른다. 통신업계 역시 예외가 아니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최근 발생한 대규모 해킹과 정보유출 사태의 책임을 묻겠다며 이동통신 3사 대표를 모두 증인으로 부른 상태다.

    국감 초반부터 기업인들의 줄소환 소식이 알려지자 재계 전반의 분위기는 싸늘하다. 정책 점검보다 정치적 이벤트 성격이 짙은 탓에 국감 시즌마다 반복되는 기업인 호통 청문회가 결국 투자 위축으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이어진다. 

    실제로 지난 2022년 이후 국감에서 대기업 총수가 증인으로 채택된 사례는 해마다 늘어왔다. 특히 올해는 정권 중반기와 내년 총선을 앞둔 시점이 겹치면서, 여야 모두 기업 관련 이슈를 적극적으로 부각하려는 모습이다.

    재계에서는 APEC 정상회의 같은 국제 행사가 예정된 시기에 주요 기업인들을 국감장에 불러세우는 건 외교적 결례이자 산업계 혼선을 부를 수 있다며 일정 조정이나 대체 보고 절차를 요구하고 있다. 경제계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두고 국감이 본래의 기능인 정책 점검을 벗어나, 보여주기식 청문회로 흐르고 있다고 지적한다.

    결국 올해 국감은 ‘경제·산업 국감'으로 불릴 만큼 기업을 향한 질의가 집중될 전망이다. 하지만 국정 감시라는 본연의 목적과 ‘기업 때리기'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느냐가 향후 논란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