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희망퇴직에 주요 기업들 동참 촉각현대차, 美 생산 확대… 韓공장 수시로 셧다운슬림화·엑소더스 본격화… "산업 생태계 붕괴"
  • ▲ ⓒ챗GPT로 생성한 이미지
    ▲ ⓒ챗GPT로 생성한 이미지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제2·3조 개정안)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기업들이 빠르게 선제 대응에 나서고 있다. 노사 간 갈등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미리 고정비를 줄이고 해외 생산을 늘려 사전에 노조 리스크를 차단하는 식이다. 

    반드시 노란봉투법 때문만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관세와 실적 둔화 등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추가적인 규범 불확실성을 키우는 만큼 기업들이 발빠른 행보에 나섰다는 평가다. 경제계에서는 법 시행 전후 불확실성이 예상되는 만큼 기업들의 이 같은 행보가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19일 정치권과 재계에 따르면 오는 21일 8월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노란봉투법 상정이 유력하다. 노란봉투법은 ‘사용자’의 범위를 넓혀 하청업체 노동자 등에게도 원청을 상대로 교섭권을 부여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것이 핵심이다. 지난 21대·22대 국회에서 두 차례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로 무산된 이후 세 번째 도전이다. 

    이번 개정안은 지난해 국회를 통과했던 법안보다 노동계 요구가 더 반영됐다. 노동쟁의 범위가 확대되고, 손해배상 청구 제한 요건이 명확해졌다. 또헌 손해배상 청구 시 책임비율을 산정하는 기준과 면책조항까지 추가됐다. 사용자의 쟁의 대응 수단을 제약하는 한편, 원청 기업까지 직접 책임을 지도록 하는 구조로 바뀌는 셈이다.

    경제계와 학계에서는 노란봉투법 시행이 기업 활동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분쟁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며 수차례 반대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 ▲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전경 ⓒ현대차그룹
    ▲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전경 ⓒ현대차그룹
    ◆희망퇴직·현지생산 … 관세·노란봉투법 등 불확실성 여파

    선제적으로 나선 곳은 LG전자다. 전날 LG전자는 미디어엔터테인먼트솔루션(MS) 사업본부 구성원 가운데 만 50세 이상이거나 수년간 성과가 낮은 직원을 대상으로 다음 달 희망퇴직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희망퇴직 신청자는 근속기간 및 정년까지 남은 기간에 따라 최대 3년치 연봉에 해당하는 위로금을 지급하고, 자녀 학자금 등을 지원할 예정이다.  

    인력 선순환 차원에서 희망퇴직 제도를 매년 운영하고 있다는게 LG전자의 설명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조직 순환 목적뿐 아니라 TV사업 부진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노란봉투법 시행 등 국내외 불확실성 또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TV 사업을 담당하는 MS사업본부는 지난 2분기 1917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시장 불확실성에 따른 TV 수요 부진과 중국 업체와 경쟁 심화로 수익성이 악화한 영향이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 인력 슬림화나 구조조정은 사실상 불가해진다.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 결정도 앞으로는 파업의 단초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미리 조직 슬림화에 나선 것이란 해석이다.

    게다가 노란봉투법 시행 초반 노사간 갈등이 빈번하게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데다 분쟁도 장기화 할 수 있는 만큼 고정비를 감축하는 선제 비용 관리에 나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법 시행 유예기간이 6개월에 불과한만큼 세부 지침 등이 자리 잡기 전까지 실제 산업 현장에 어떻게 적용될지 애매해 미리 비용을 마련해두는 것이란 주장이다. 서둘러야 리스크 축소에 유리하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기업들은 해외 생산도 늘리고 있다. 관세 대응이 1차 목적이지만, 노사 리스크를 분산하려는 의도도 맞물린 것으로 보인다. 완성차업계는 자동차 제작에 수많은 부품이 탑재되는만큼 하청업체가 많은 대표적 업종으로 분류된다.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KAICA)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완성차 6개사(현대차·기아·한국GM·르노코리아·KG모빌리티·타타대우)와 직접 거래하고 있는 1차 협력업체 수만 총 691개사(비상장사 포함)에 달한다. 노란봉투법 시행의 직접 영향권인 셈이다. 

    실제 현대차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현대차는 올 상반기 미국 공장 생산량은 앨라배마 공장(HMMA) 17만9900대, 조지아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3만7314대 등 총 21만7214대를 기록했다. 전년 동기 17만6400대와 비교하면 4만대 넘게 늘었다. 현대차 글로벌 생산량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도 작년 상반기 9.2%에서 올해 상반기 11%로 1.8%포인트(p) 늘었다. 반면 국내 전기차 생산공장은 올해 들어서만 6번째 멈춰 세웠다. 관세 영향으로 대미 수출이 줄어든 영향이다. 기아도 기아 조지아 공장(KMMG) 중심으로 상반기 18만5000대를 생산했다. 기아 글로벌 생산(147만6302대)의 12.2% 수준이다.

    완성차나 전자처럼 원·하청 다층 구조가 깊고 대미 관세에 직접 노출된 업종일수록 국내 생산 후 수출 구조보다 북미 현지 생산·현지 조달 체계가 리스크 관리에 유리하다. 현지에서 생산·판매·A/S까지 묶으면 관세·물류·환율 변동을 현지에서 상쇄할 수 있고, 공정·라인 변경 등 경영상 결정을 수행하는 데도 시간·비용의 예측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미 현대차는 지난달 진행한 2분기 콘퍼런스콜을 통해 장기적으로 미국 현지로의 부품 공급망 변경을 추진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미 이를 위한 TFT를 구성하고 200여 개 부품에 대한 현지 업체 견적서를 받아보고 있는 단계다.

    완성차업계 관계자는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노사가 감당하기 힘든 분쟁의 빌미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면서 “노조가 노란봉투법을 빌미로 파업권을 넘어서는 폭력 등도 정당화하려 할 것이고, 이는 기업의 생산성 저하로 이어지는 등 경영에 많은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토로했다. 

    철강업계 관계자도 “노란봉투법이 헌법상 기본권인 근로 3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기본권 보호를 명목으로 불법행위까지 면책하는 것은 헌법상 기본권인 재산권을 과도하고 부당하게 제한하는 것”이라면서 “정당한 쟁의 행위로 인한 손해에 대해서는 우리 법은 이미 노동조합법 3조에서 충분히 보호하고 있다”고 전했다.
  • ▲ 18일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왼쪽에서 다섯번째)이 국회 소통관에서 경제6단체와 국민의힘 김형동 의원과 함께'노동조합법 개정안 수정 촉구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있다.ⓒ한국경영자총협회
    ▲ 18일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왼쪽에서 다섯번째)이 국회 소통관에서 경제6단체와 국민의힘 김형동 의원과 함께'노동조합법 개정안 수정 촉구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있다.ⓒ한국경영자총협회
    슬림화·엑소더스 본격화 … "정부, 기업 애로에 귀 기울여야"

    재계 일각에서는 다른 기업에서도 인력 구조조정·해외 생산을 가속화 할 것이란 관측을 내놓는다. 배경에는 대외 통상 요인과 실적 둔화, 여기에 이른바 ‘반(反)기업적’ 성격으로 인식되는 입법 변수까지 겹치며 국내 경영환경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졌다는 기업의 문제의식이 자리한다. 글로벌 수요 둔화와 관세 부담은 원가·가격경쟁력에 직격탄을 날리고, 노란봉투법·상법 개정안 등은 기업의 작동 방식을 흔드는 요인인 만큼 앞다퉈 불확실성 최소화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다. 

    실제 대한상공회의소가 제조업체 202개사를 대상으로 노동조합법 개정안(노란봉투법) 도입시 우려되는 영향에 대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기업의 86.6%가 국내 산업생태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 답했으며, 일자리 영향에 있어서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기업이 86.1%에 달했다. 

    또한 불법파업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경우 빈번한 산업현장 불법행위(56.9%), 사업장점거 만연으로 생산차질 발생(56.9%), 손해누적에 따른 경영 타격(50.5%), 국내기업 생산투자 기피(27.7%), 외국기업 국내투자 기피(16.3%) 등이 예상된다고 답했다. 

    경제계에서는 국내 기업들의 전반적인 경쟁력 약화는 물론 외국기업들의 국내 투자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사용자 범위나 쟁의 대상이 지나치게 넓어지지 않게 해줄 것을 읍소하고 있다. 또한 법이 통과되더라도 노사 간 의견 수렴을 통해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최소 1년의 유예기간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현재 여당은 법안을 통과시킨 후 문제가 있는 부분은 6개월 유예기간 동안 보완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날 오후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노동조합법 개정 반대 경제계 결의대회’를 열고 총력저지에 나선다. 경제 6단체와 업종별 경제단체 임직원, 김형동 국민의힘 의원 등 총 200명 이상이 참석할 예정이다. 제임스 김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회장도 노란봉투법 등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미국 등 해외 기업의 국내 투자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취지의 의견을 전달할 예정이다. 

    한 대기업 임원은 “노란봉투법이 강행 처리되면 원청 기업은 국내 협력 업체와 거래를 단절하거나 해외로의 이전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며 “경기가 침체된 상황에서 이 같은 입법은 중소 협력 업체들의 도산으로 이어져 결국엔 국내 산업 공동화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 관련 법안이 장기적으로 기업활동과 국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면서 “당장의 정치적 성과보다 국가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정희 중앙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기업들은 노동을 줄이고 자본력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많이 나아가는 추세고, 미국 트럼프 정부가 워낙 자국에 투자를 많이 하는 상황이니 국내 기업들이 미국 투자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고 진단했다. 

    이어 “정부는 기업의 애로사항이나 어려움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해당 법안이 기업을 얼마나 위축하게 만드는 지에 대한 사실관계를 잘 분석해야 한다”면서 “개선이 필요한 부분들에 대해선 기업의 목소리를 어떻게 반영할지 고민해 과거와 같은 노사 관계가 아닌 발전적인 노사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편, 민주당은 이번 임시국회 회기 내 노란봉투법을 반드시 통과시키겠다는 입장이다. 국정기획위원회가 이달 13일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도 노란봉투법 개정이 명시됐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조법 2·3조 개정안은 현장 대화를 촉진하고 원·하청 상생을 위한 법”이라며 “법 시행까지 6개월의 준비기간 동안 현장 매뉴얼과 지침을 마련해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