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보다 시행령②] 위헌 요소 있어도 일단 강행사외이사 자격 강화… 조국 전 장관이 뜯어고쳐하소연할 곳 없는 기업들… 남은 방법은 헌법소원 뿐
  • "검찰 개혁 과제들 중 법 개정 없이 추진 가능한 것들을 발굴해 불가역적이고 신속하게 추진하겠다."

    문재인 정부의 '국회 패싱' 사고(思考)는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취임 후 처음 가진 당정협의에서 한 이 말에 여실히 드러난다.

    '검찰개혁 적임자'라는 명분으로 숱한 반대에도 법무부장관 취임을 강행한 조 전 장관이 애초에 국회 입법과정을 통한 제도개선은 원천적으로 배제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받았다. 이런 조 전 장관이 법무부장관 취임 후 가장 먼저 손 댄 부분이 상법 시행령 개정안이다.

    사외이사 최대 임기를 제한하는 것이 주요 골자로 퇴직임원이 사외이사로 옮겨가지 못하는 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늘리는 등 민간기업 이사회에 대한 규제를 한층 강화했다. 특히 이사나 감사 후보자의 범죄경력이나 세금 체납 여부 등 개인정보를 공개하도록 하는 등 위헌 요소도 우려되는 내용도 담겼다.

    섣부른 규제 강화에 주총 마비 우려

    국회 논의 없이 발표된 상법 개정안에 가뜩이나 위축된 기업들이 주총을 통한 의결권 행사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현재 금융사를 제외한 코스피·코스닥 상장사는 2천여개. 사외이사는 4천여명에 이른다.

    국회 정무위에 따르면 개정안이 시행되면 임기가 만료돼 당장 교체해야 하는 사외이사가 20%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2017년 이후 폐지된 섀도보팅(의결권 대리행사)에 따라 주총이 유명무실하게 전락하고 있다는 우려가 더욱 심화된다는 점이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정기주총에서 1개 이상 안건이 부결된 기업은 섀도보팅 폐지 직후인 2018년 76개에서 이듬해 188개로 크게 늘었다. 여기에 상법 개정안이 내년 본격 시행될 경우 250곳 이상 주총에서 안건 부결이 현실화될 것으로 상장사협의회는 우려하고 있다.
  • ▲ 국무회의에 참석한 조국 전 장관ⓒ연합뉴스
    ▲ 국무회의에 참석한 조국 전 장관ⓒ연합뉴스
    소액주주 전자투표 확대? 상위법 개정 없이는 허울 뿐

    법무부의 상법개정안에는 소액 주주들의 전자투표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본인인증수단을 공인인증서 외에도 휴대폰, 신용카드까지 확대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기업이 전자투표제를 도입하지 않으면 큰 효율을 기대하기 어렵다. 상법상 전자투표제를 의무화하는 법안은 발의만 됐을 뿐 제대로 된 논의가 진척되지 않았다.

    국회 정무위 관계자는 "전자투표를 실시한다해도 일반 소액 주주의 참여율은 극히 저조한 것이 현실"이라며 "억지로 소액 주주의 주총 참여를 독려하기 보다 보다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격요건 강화 지나쳐… 관료 출신들 사외이사 장악 우려

    사외이사나 감사 후보자의 개인정보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하는 개정안은 헌법상 직업선택권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위헌 요소가 지적되기도 한다.

    개정안은 이사·감사 후보자의 세금체납부터 범죄기록까지 세부 경력사항을 공개하도록 하는데, 이는 금융사 이사회에 적용하는 규제를 민간기업까지 확대하는 것이다. 그동안은 후보자의 직업과 간단한 약력만 서술하면 됐다.

    이는 공직자 후보에게 요구되는 수준의 정보공개여서 개인 기본권 침해 논란도 예상된다.

    한국경제연구원 관계자는 "개인 신상정보 보호가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나서서 기업 임원 후보자들의 개인 신상을 주주들에게 공시하도록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국민 기본권 침해에 해당할 소지가 있는 만큼 시행령이 아닌 국회에서 상위법 개정 논의를 거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화된 사외이사 자격 규제는 결국 관료 출신 인사들이 사기업 이사회를 장악하는 부작용도 우려된다.

    상대적으로 개인정보 공개가 용이한 관료 출신들이 대거 진출할 것이라는 얘기다.

    일사천리 개정… 국무회의 의결되면 손 쓸 방법 없어

    논란의 상법 개정안은 이렇다 할 공청회나 국회 상임위 심사도 끝내지 못했지만, 당장 시행된다해도 기업들은 하소연할 곳 조차 없는 실정이다.

    법무부는 지난 9월 24일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이후 10월4일까지 의견 수렴을 마친 뒤 법제처로 심사를 넘긴다.

    이후 법제처 심사만 통과하면 차관 회의 등을 통해 국무회의 안건으로 언제든지 올릴 수 있다.

    한 상장회사 관계자는 "법률상 불합리한 점을 아무리 알리고 반발해도 시행령만 개정하면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발생 할 수 있다"며 "기업이 할 수 있는 방안이라곤 성과가 불확실하고 많은 시간이 필요한 헌법소원 같은 방법 뿐"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