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임상 3상 약물 혼용 가능성 제기, 4개월간 조사하고 "약물 혼용 無"임상 3-1상 실패 인정하고도 임상 3-1b상 내세워 엔젠시스 안전성·유효성 주장
  • ▲ 김선영 헬릭스미스 대표는 지난해 9월24일 서울 여의도 NH투자증권 본사에서 기업설명회를 진행했다. ⓒ박성원 기자
    ▲ 김선영 헬릭스미스 대표는 지난해 9월24일 서울 여의도 NH투자증권 본사에서 기업설명회를 진행했다. ⓒ박성원 기자

    헬릭스미스(전 바이로메드)가 임상 3상 실패를 인정했다. 당뇨병성 신경병증 유전자치료제 '엔젠시스(VM202)' 임상 3-1상 데이터 이상현상을 지난 10월부터 조사한 결과, 약물 혼용도 없고 약효도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약물 혼용 때문에 엔젠시스의 약효가 가려졌을 것이라 믿고 5개월이나 기다려온 투자자들로서는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헬릭스미스는 지난 14일 "환자들에서 약물 간 혼용은 없었던 것으로 판명됐다"며 "위약군의 환자가 엔젠시스를 받거나 엔젠시스군의 피험자가 위약을 받은 적은 없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앞서 헬릭스미스는 지난해 9월 임상 3-1상의 최종 결론 도출을 임상 3-1b상 이후로 연기했다. 당시 헬릭스미스는 "위약군 환자 일부의 혈액에서 엔젠시스가 검출되고 엔젠시스군 환자에게서 약물 농도가 지나치게 낮은 것을 발견했다"며 "이는 위약과 약물군 간의 혼용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언급했었다. 김선영 대표도 헬릭스미스가 약물 혼용 때문에 데이터에 문제가 있을 뿐, 엔젠시스의 유효성은 여전히 높다고 피력했었다.

    헬릭스미스는 약물 혼용의 원인을 조사하겠다며 같은해 10월부터 미국과 한국에서 조사팀을 꾸렸다. 25개 임상 사이트, 500명의 피험자, 6500여 개의 검체에 대한 개별 문서의 정밀 분석을 포함한 엔젠시스 임상 3-1상 약동학분석(PK) 조사 결과는 '약물 혼용이 없었다'는 것이다.

    헬릭스미스는 5개월이 지나서야 약물 혼용이 아니었다면서 뒤늦게 임상 실패를 인정하고는 임상 3-1b상 결과를 내세웠다. 임상 3-1b상은 주평가지표, 부평가지표 모두 충족했기 때문에 엔젠시스의 유효성과 안전성이 입증됐다는 것이다. 헬릭스미스는 임상 3-1b상을 바탕으로 추가 임상 3-2상을 진행할 계획이다.

    납득하기 어려운 얘기다. 임상 3-1상의 주평가지표는 3개월째 통증 감소 효과(Daily ain daily), 50% 반응자(50% responder)로 설정됐고, 임상 3-1b상의 주평가지표는 안전성이기 때문에 서로 다르다. 또한, 임상 3-1b상은 임상 3-1상에 참여했던 환자 500명 중 101명을 대상으로 장기 안전성 자료를 얻기 위해 실시한 임상이다. 임상 목표가 안전성 입증에 있기 때문에 유효성은 부평가지표로 설정됐고, 임상 환자 수도 101명에 불과하다.

    더구나 헬릭스미스는 실패한 임상 3-1상의 주평가지표의 구체적인 수치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위약군 환자 일부의 혈액에서 엔젠시스가 검출됐다는 것에 대해 김 대표는 조사 결과 분석기관이 제출한 데이터가 틀렸다는 입장을 내놨다. 김 대표가 당시 약물 혼용을 의심하며 제시한 근거는 위약군 환자 일부의 혈액에서 엔젠시스가 검출됐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 9월 회사 측이 제시한 위약군에서 엔젠시스가 검출되고 엔젠시스군에서 엔젠시스가 저농도로 검출된 사례의 데이터를 살펴보면, 약물 혼용 가능성을 추론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었다. 업계 관계자는 "(약물 혼용은) 말도 안되는 얘기"라며 "임상시험을 하면서 어느 CRO(임상시험 수탁기관)가 혼용인지 아닌지도 구분 못하겠는가"라고 꼬집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임상 3-1상 발표 전에 헬릭스미스 측의 임상 실패인 것을 알고도 혼용 가능성을 제기함으로써 시간을 번 것 아니냐는 의혹도 일고 있다. 의도된 거짓말이라면 심각한 범죄고, 정말 약물 혼용으로 착각해서 지난해 10월부터 무려 4개월이나 잘못된 조사에 매달렸다면 심각한 무능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헬릭스미스는 임상 3-1상이 '미완의 성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임상 3-1b상에서 안전성과 유효성이 명확하게 입증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만간 후속 임상 3-2상을 시작하고, 올 하반기에는 임상 3-3상을 개시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지난 14일 헬릭스미스의 주가는 오후 12시부터 뚝 떨어지기 시작해 결국 전일 대비 12.14%(9600원) 급락한 6만 9500원에 거래를 마쳤다.

    당장 수백억원대의 전환사채(CB)를 재발행해야 하는 헬릭스미스 입장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헬릭스미스는 지난 10일 NH투자증권에서 단기차입금 550억원을 조달해 2회차 CB를 조기 상환하기로 했다. 헬릭스미스는 이달 내에 CB를 재발행해 NH투자증권에 차입금을 갚아야 하는 상황이다.

    헬릭스미스의 이 같은 행보에 5개월간 기다려온 일반 투자자들의 고통만 가중되고 있다. 차라리 지난해 9월 임상 실패를 깔끔하게 인정하고 후속 임상을 제대로 설계해서 진행하겠다고 했더라면 일반 투자자들의 충격도 덜했을 것이다. 아무리 투자에 개인의 책임도 있다지만 상장사가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면 정상적인 투자는 이뤄지기 힘들지 않는가. 시장의 신뢰를 수차례 저버린 헬릭스미스에 더 이상 어떤 기대도 하기 어려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