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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사상 최대 호실적을 기록했던 국내 증권사들의 올해 1분기 실적은 대폭 줄어들 전망이다. 브로커리지 강자인 키움증권의 당기순익은 전년 대비 반토막날 것으로 예상되고, 메리츠증권은 상대적으로 낙폭이 적어 1000억원 가량의 순익을 올릴 것으로 추산된다.
9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한국금융지주·메리츠증권·미래에셋대우·NH투자증권·삼성증권·키움증권 등 6개 상장 증권사의 올해 1분기 당기순이익(추정치·국제회계기준 연결 기준)은 전년 동기 대비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순이익 감소폭이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되는 증권사는 키움증권이다. 전년 동기 대비 50.9% 줄어든 780억원으로 예상된다.
초대형 IB들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한국금융지주는 43.2% 줄어든 1483억원, NH투자증권은 42.9% 감소한 980억원으로 거의 반토막에 가까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삼성증권은 20.0% 줄어든 780억원으로 추산된다.
초대형 증권사들조차 코로나19 여파 속에 극심한 실적 악화를 겪는 가운데 메리츠증권은 상대적으로 선방한 것으로 모습이다. 전년 대비 순이익 감소폭은 이들 중 가장 적은 15.5%로 전망된다. 지난 1분기 벌어들인 순익은 1195억원으로 예상된다. 다만 메리츠증권의 순이익 추정치는 2곳 이하의 증권사가 낸 수치다.
올 들어 폭락장이 이어지자 개인 투자금이 몰려들면서 증시 거래대금이 크게 증가했음에도 이들 증권사의 실적이 전반적으로 부진한 주요 원인은 트레이딩 부문에서의 손실 탓이다. 증시가 급락하면서 파생결합증권(ELS) 자체 헤지와 자기자본 투자(PI)부문에서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더불어 코로나19 국면에서 사실상 기업금융(IB) 영업이 올스톱되면서 타격이 큰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증권사들이 사상 최대 실적을 이룬 배경에는 IB 실적이 큰 비중을 차지한 바 있다.
장효선 삼성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증시 변동성 확대에 따라 ELS·채권·주식성자산 등 다양한 부문에서의 운용 자산 손실 발생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아울러 IB 신규 딜 건수가 감소했고, 미매각 부동산 증가 및 ELS 등 자산관리(WM) 상품 판매 부진 등도 실적 악화의 원인"이라고 꼽았다.
브로커리지가 유례 없는 호황으로 연일 비대면 계좌 신규 가입자 러시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도 키움증권의 1분기 손실폭이 크게 예상되는 점도 이때문이다. 게다가 저가매수 후 주식을 장기 보유하려는 최근 신규 투자자들의 마인드를 고려할 때 당장 1분기 수수료 수익 역시 크지 않다는 것이 업계 시각이다.
키움증권 관계자는 "IB와 홀세일, PI 부문의 불확실성이 클 것으로 전망돼 내부적으로도 1분기 실적이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1분기에는 주식이 평가손익이라 매도하는 게 아니라는 측면에서 실적 기여가 크지 않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리테일 기반이 더욱 견고해지는 것"이라면서 "주가 회복 시 PI 여력이 더 있고, 코로나19로 인해 IB 환경이 닫혀 생긴 어려움이다. 회사 수익구조를 브로코리지에서 IB로 점차 확대해가고 있서 장기적으로 실적 상승 여지는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메리츠증권의 실적이 타 증권사 중 비교적 양호한 이유는 트레이딩 손실이 적고, IB가 실적 선방을 이끌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메리츠증권 관계자는 "그간 철저한 리스크관리에 힘써와 2010년 이후 디폴트(채무불이행) 사고를 단 한 건도 발생시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정태준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파생결합상품 잔고와 자체헤지 비중이 타사 대비 낮기 때문에 트레이딩 손실 역시 상대적으로 작을 전망"이라면서 "메리츠증권은 IB 및 기타수수료가 수수료수익의 80% 이상을 차지한다"고 분석했다.
다만 여전히 부동산프로젝트파이낸싱(PF) 규제로 인한 부담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실적 변수로 남아 있다. 정 연구원은 "지난 연말 부동산PF 규제로 인해 PF 익스포저의 셀다운 압박이 있는 점을 고려할 때, 현재 코로나19로 인한 위험회피 성향 증가와 셀다운 지연은 분명히 부정적"이라면서 "규제가 완화되지 않는 이상 염가에라도 익스포저를 처분해야 하는 압박은 점점 심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