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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이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금융시장 리스크에 대비해 사상 처음으로 증권사에 대한 직접대출에 나선다.
회사채를 담보로 한 첫 유동성 공급으로 증권사는 물론 증시와 채권시장에 큰 방파제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1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현재 한국은행과 관계부처는 비은행 금융기관을 상대로 한 긴급대출 프로그램의 초안을 정부 측과 공유한 뒤 의견 회신을 기다리고 있다.
한은법에 따르면 금융통화위원회가 영리기업에 대한 대출을 의결하기 전 정부 의견을 먼저 들어야 한다.
지난 2일 이주열 총재가 비은행에 대한 대출안을 검토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후 한은은 정부와 증권사 대출 문제를 협의해왔다.
한은과 정부의 이번 결정에 특히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는 한은이 외환위기인 1997년 이후 은행 이외 금융기관에 직접 대출을 시행하는 첫 사례이기 때문이다.
당시 한은은 한국증권금융과 신용관리기금에 각각 2조원과 1조원을 우회 지원하는 방식으로 증권사와 종합금융사에 자금을 풀었다.
한은법 79조는 민간과의 거래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80조에서는 자금조달에 중대한 어려움이 발생하거나 가능성이 높은 경우에는 영리기업에도 대출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번 한은의 결정은 파생결합상품 마진 콜과 부동산PF 관련 ABCP(자산유동화기업어음) 매입 문제로 일부 증권사들의 유동성 우려가 높아져 증권업계가 최악의 상황을 맞기 이전에 숨통을 열어주겠다는 의지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한은이 대출을 담보로 회사채를 받아주는 것 역시 첫 사례로 그만큼 증권업계에 대한 지원 의지를 엿볼 수 있다.
한은은 은행에 대한 대출에도 국채와 정부보증채, 산업금융채권, 중소기업금융채권, 수출입금융채권, 주택저당증권(MBS) 등만 담보로 인정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증권사의 회사채도 담보로 허용하는 것이다.
단, 신용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담보채권을 우량 신용등급으로 한정하고 담보인정비율을 일정 수준으로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번 비은행권 비상대출 프로그램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신용경색이 언제든 다시 터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잇따르는 상황에서 증권업계는 물론 증권·채권시장에는 호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주열 한은 총재 역시 이번 증권사 직접대출을 추가 충격에 대비한 방파제 역할이라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이 총재는 지난 9일 기자회견을 통해 "회사채·CP 관련 금융시장의 불안이 현재로서는 진정된 상태지만 코로나19의 향후 전개와 그에 따른 국제금융시장 상황 변화에 따라 국내 금융시장 불안이 다시 재연될 가능성이 남아있고, 거기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업계는 비상대출 프로그램안 의결시점을 이르면 이번주 내로 보고 있다.
금통위원 7인 중 4명의 임기가 이달 20일 종료되기 때문에 이번주 중으로 임시금통위를 개최해 이를 의결할 가능성이 크다.
증권업계 내에서도 한은의 결정에 반색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일부 증권사들의 유동성 우려가 높아진 상황에서 유동성을 확보하게 되면 점차 단기자금 시장이 안정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한은이 지난달 말과 이달 초 두 차례 환매조건부채권을 사들여 자금지원을 했던 우량 담보채권은 거의 소진돼 대출 담보 채권 확대 범위에도 관심이 높은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