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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작업환경 측정결과 보고서'를 제3자에게도 공개하라는 고용노동부의 결정에 반발해 제기한 소송에서 2심 재판부가 1심에 이어 삼성전자 손을 들어줬다.
노동계를 등에 업고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삼성을 길들이려고 중국 등 경쟁국가로의 국가 핵심기술 유출을 도외시한다는 비판까지 제기됐던 법정 다툼에서 삼성이 유리한 고지에 섰다.
수원고등법원 행정1부(이광만 부장판사)는 13일 삼성전자가 노동부 중부지방고용노동청 경기지청장 등을 상대로 낸 정보부분공개결정 취소소송에서 "삼성전자의 작업환경보고서는 공개할 필요가 있는 정보에 해당한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이 사건 쟁점정보는 공정·설비의 배치 정보, 생산능력과 생산량 변경 추이, 공정 자동화 정도 등을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며 "이는 원고의 경영상·영업상 비밀사항에 해당해 공개할 경우 원고의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법원은 삼성전자가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소속 근로자에게 작업환경 측정결과를 공개하고 있고, 생명·신체 또는 건강에 직접 관련되는 '유해인자', '측정치' 등은 모두 공개대상이 된 점, 그동안 원고 공장의 유해인자 노출수준이 법정 노출기준 미만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도 고려했다고 부연했다.
항소심 판단은 지난해 8월 나온 1심 재판부 판단과 같다. 1심 재판부는 반도체 공정에 관한 세부 정보가 공개됐을 때 삼성전자가 보게 될 손실이 국민의 알권리보다 우선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했다. 작업환경보고서에 담긴 부서·공정 이름, 단위작업 장소 등의 내용은 막대한 연구·개발과 투자의 산물인 반도체 공정의 핵심이어서 중대한 경영상·영업상 비밀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작업환경보고서는 사업장 내 유해물질(총 190종)에 대한 노동자의 노출 정도를 측정·평가한 것으로, 6개월마다 지방고용노동관서에 제출한다. -
이번 소송은 문재인 정부 들어 노동부가 총대를 메고 '삼성 손보기'에 나섰다는 비판이 제기됐던 사안이다.
시작은 삼성 계열사 공장에서 일한 뒤 백혈병이나 림프암 등에 걸린 노동자와 유족이 산업재해를 입증하는 데 활용하려고 작업환경보고서를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2018년 2월 대전고법은 삼성전자 온양공장의 작업환경 측정보고서를 산재 피해자 유족에게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노동부는 3월 기다렸다는 듯 '이해 관련성을 불문하고' 보고서를 산재 근로자와 유족뿐 아니라 시민단체 등 제3자에게도 공개할 수 있게 행정지침을 고쳤다. 노동부가 법원 판결을 자의적으로 확대해석해 삼성의 모든 반도체공장 작업환경 측정보고서를 제3자에게도 공개하도록 발 빠른 조치에 나섰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당시 노동부 장관은 노동운동가 출신인 김영주 민주당 의원이었다. 고용부 안팎에선 정보 공개 논란이 일정 부분 예고됐었다고 분석했다. 노동계 출신인 김 전 장관은 취임 전부터 삼성을 정조준하겠다고 별렀다. 김 전 장관은 장관 후보자 시절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같은 당 강병원 의원의 삼성반도체 산업재해 피해자 관련 질문에 "취임하면 즉시 지방노동청을 통해 삼성반도체 현장의 안전보건 진단보고서를 공개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김 전 장관이 답변한 안전보건 진단보고서는 이번 소송의 작업환경보고서와는 다른 거지만, 김 전 장관이 취임 전부터 삼성을 정조준하고 있었다는 의견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당시 산재예방보상정책국장에는 삼성과 악연 있는 박영만 변호사가 임명됐었다. 박 국장은 2011년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근로자의 직업병 산재소송에서 근로자 측을 대변했던 의사 출신 변호사다. 노동부는 박 국장이 산재보상정책국장으로 온 지 1주일 만에 작업환경보고서 정보공개 행정지침을 고쳐 전국에 하달했다. 산재예방보상정책국장은 노동부 안에서도 목에 힘을 주는 자리로, 그동안 외부인에게 개방한 적이 없었다. 당시 박 국장이 개방형 직위로 임명되기 전 전임 국장이 8개월여 만에 느닷없이 자리를 내놓으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렸다. 박 국장은 보건 쪽 전문가라서 반쪽짜리 국장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