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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제정을 강행한 것에 대해 미국이 중국 본토와 달리 홍콩에 주었던 특별지위를 박탈하기로 하면서 미·중 갈등이 첨예해지고 있다.
경제전문가들은 홍콩의 아시아 금융·무역·물류 허브 기능이 약화하면 싱가포르가 유일한 대안으로 떠오를 거라는 견해다. 싱가포르라는 대안이 있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중 공세의 고삐를 조일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또한 미·중 갈등이 단기간에 해소될 성격의 사안이 아닌 만큼 이번 홍콩보안법 사태를 한국 경제의 대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이다.
전문가들은 먼저 이번 미국의 조치가 오는 11월 치러지는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과 무관치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코로나19라는 최악의 악재에 맞닥뜨려 불리해진 국내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외부로 돌릴 필요가 있는데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중국이 악역으로 딱 맞는다는 것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표적인 치적은 경제 살리기인데 현재 미국의 실업자 증가는 역대 재선 성공의 바로미터라 할 수 있는 3%를 한참 넘어섰다"며 "미국 내 시선을 중국과 코로나19 탓으로 돌리는 전략을 구사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말했다. 1950년대 이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경기 침체를 겪고 재선에 성공한 사례는 없다. 김 교수 설명으로는 역대 미 대선에서 실업률이 3% 이하일 때 재선에 성공했다. 현재 미국의 실업률은 14.7%에 이르렀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정규철 경제전망실장도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국내 정치 상황이 어려워져 돌파구를 찾을 필요가 있었다"면서 "외부로 공격의 시선을 돌려 입지를 강화할 필요가 있는데 중국이라는 커다란 적을 활용하는 측면이 없잖아 보인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이번 공세가 중국에 적잖은 타격을 줄 거라는 의견이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는 "중국으로선 미국의 홍콩에 대한 특별지위 박탈이 꽤 클 수 있다"면서 "중국 대기업은 홍콩의 상법상 보호를 받으며 해외에 간접투자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홍콩의 아시아 금융허브 기능이 약화하면 중국 기업의 해외투자나 외국자본 유치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홍콩의 물류허브 기능에 대해선 "지금은 중국 상해 등이 워낙 커져서 홍콩의 역할은 과거에 비해선 약화했다"고 부연했다. 김 교수는 "1997년 홍콩 주권이 중국에 반환됐을 때 큰손들은 자금을 회수해 영국이나 캐나다, 호주 등으로 선회했다"며 "홍콩에서의 기업공개(IPO) 금지 등으로 자금조달이 여의치 않게 되면 외국계 자본이 대거 이탈하는 상황에 맞닥뜨릴 수 있다"고 했다.
문제는 미·중 간 갈등이 홍콩으로 우회해 제3국에 수출하는 한국의 수출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홍콩은 중국으로의 접근성이 좋고 부가가치세 환급 등 절세 혜택이 있어 중계무역 기지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미국이 홍콩의 특별대우를 박탈하면 중소·중견 수출기업은 물류비용 증가 등으로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29일 내놓은 '홍콩보안법 관련 미·중 갈등과 우리 수출 영향' 분석자료에서 이같이 전망했다. 홍콩을 거쳐 중국으로 들어가는 화장품과 농수산식품 등의 경우 중국으로 직수출할 경우 상대적으로 까다로운 통관·검역 절차를 거쳐야 해 수출에 차질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미국의 홍콩 제재가 장기화하면 홍콩을 중계무역기지로 활용하기는 어려워진다는 분석이다. -
이 교수는 "홍콩의 금융허브 기능에 제약이 따르면 싱가포르가 대안이 될 수 있다. 다만 우리한테 도움이 될 건지는 따져봐야 할 것"이라면서 "홍콩의 상황은 우리 경제에 불확실성을 높여 단기적으로는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홍콩보안법이 한국에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홍콩을 거치는 중국의 대미 수출이 차질을 빚으면 우리 기업의 대미수출이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견해다. △석유화학 △가전 △의료·정밀 △광학기기 △철강 △플라스틱 등이 중국보다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품목으로 꼽힌다.
이번 기회에 중국 수출 의존도를 낮출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김 교수는 "우리 수출은 중국 26%, 미국 10%, 홍콩 8%쯤으로, 중국과 홍콩을 합치면 33~34%에 이른다"며 "수출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중국 의존도를 동남·서남아시아로 돌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미국 대표 IT(정보통신) 기업 애플의 경우 생산·소비 양쪽에서 중국 의존도가 80%쯤으로 높은데 (생산공장의 경우) 베트남으로 옮겨 의존도를 낮추고 있다"고 부연했다. 정 실장도 "우리나라의 중국 수요 의존도가 높다"면서 "이는 한국 경제에 그리 좋은 영향을 주진 않는다"고 수출 다변화 필요성을 언급했다.
전문가들은 미·중 갈등이 수위 조절은 이뤄지겠지만, 앞으로도 계속될 거라는 견해다. 정 실장은 "이번 사태가 미 대선이 끝난다고 해서 해결될 거로 보진 않는다"면서 "세계 무대에서 중국의 부상은 미국으로선 도전을 받는 것"이라며 "이는(위기의식은) 공화당뿐 아니라 민주당이 집권해도 마찬가지다. 단기간에 경제적으로 풀 수 있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원론적인 얘기지만, 외교적 역량을 발휘해야 하는 문제다"고 분석했다. 정 실장은 "다만 미 대선이라는 정치 이벤트가 지나면 일정 부분 갈등의 수위는 낮아질 수 있다"면서 "무역 갈등이 장기화하면 미국 소비자가 피해를 보는 상황도 연출되므로 길게 끌고 갈 수만은 없는 인기 없는 정책"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