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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이 두절됐다가 10일 새벽 숨진 채 발견된 박원순 서울시장이 전직 비서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며 고소당한 사실이 알려졌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직원 성추행 혐의로 불명예 퇴진한지 석달이 채 안된 시점이다. 여권의 경부선축 자치단체장 성추문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이들 단체장 공백에 따른 권한대행 체제가 각종 현안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린다.
박 시장은 지난 9일 연락이 끊겼다는 가족의 실종신고를 받고 경찰이 수색에 나선 뒤 10일 새벽 서울 북악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박 시장의 변고가 알려지자 지지자들은 침통해 했고, 얼마 뒤 박 시장이 전직 비서로부터 성추행 고소를 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민은 충격에 빠졌다. 인권변호사 출신인 박 시장은 자신을 페미니스트라 자처하며 시장이 돼서도 줄곧 '성 인지 감수성'을 강조해 왔다.
문재인 정부 들어 소위 경부선축을 따라 여권 지자체장들의 성추문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4월23일에는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여성공무원과의 면담에서 강제 추행이 있었다고 시인한 뒤 전격 사퇴했다. 당시 성추행이 4·15 총선 전에 발생했고, 부산시가 4월 초부터 피해자와 오 전 시장의 사퇴 시점을 조율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오면서 민주당 지도부가 사태를 미리 인지하고도 쉬쉬했던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기도 했다.
성폭력 피해를 알리는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물결이 번지던 2018년에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왼팔로 불렸던 안희정 전 충남도지시가 비서의 성폭행 폭로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사건이 터졌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벌어진 이 일로 안 전 지사는 '권력형 성범죄자'로 낙인찍히며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았다. -
각 지자체는 권한대행 체제로 돌입했다. 부산시는 변성완 행정부시장, 서울시는 서정협 행정1부시장이 각각 권한대행을 맡게 됐다. 보궐선거는 내년 4월 치러질 예정이다. 권한대행이 각종 민감한 현안사업을 책임지고 결정하기엔 부담과 한계가 있는 만큼 시정 공백은 불가피한 실정이다.
부산은 갑작스러운 시정공백으로 오 전 시장 1호 공약인 동남권 신공항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됐다. 부산시가 국토교통부의 김해신공항(기존 김해공항 확장안) 결정에 반대하며 밀어붙였던 가덕도 신공항이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됐다. 오 전 시장의 퇴진으로 추진 동력이 반감될 수밖에 없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동남권 신공항은 아직 총리실의 재검증이 끝나지 않은 상태다. 국토부 한 관계자는 "아직 총리실로부터 (검증이 끝났다는) 연락을 받지 못했다"면서 "(오 전 시장 사퇴로) 신공항 사업 지연이 빨리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지체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시의 반대 목소리가 아직 완강하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국토부 내부에선 오 전 시장의 부재 영향이 서서히 나타날 거라는 의견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이달 안에 (총리실 재검증이) 마무리되긴 어려울 듯하다"며 "(100% 장담할 순 없지만) 대략 다음 달에는 결론이 날 것으로 예상한다"고 귀띔했다.
이 밖에도 부산지역에선 오 전 시장 퇴진 여파로 △2030엑스포 부산 유치 △부·울·경 동남권 메가시티 △경부선 철도시설 재배치 △북항 재개발사업과 연계한 원도심 재생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후속 사업 △부산 금융중심지 추진 등의 사업이 흔들릴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
서울시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사업과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해제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GTX A노선(파주~삼성)의 경우 서울시 행정심판위원회가 강남구청의 지하 굴착 불허가 부당하다며 사업시행자인 SG레일의 손을 들어주면서 전 구간 공사가 가능해졌다. 하지만 광화문역 신설과 삼성역 개통 지연 등의 과제가 여전하다. 이들 과제는 서울시와의 협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우선 광화문역 신설은 박 시장이 적극 추진했던 사업이다. 광화문광장 재구조화와 관련해 광장에서 집회가 열리면 일대 주민이 대중교통 중단으로 큰 불편을 겪는다며 GTX-A와 신분당선 서북부 연장을 반드시 성사한다는 견해였다.
문제는 광화문역 신설에 대해 시청 안팎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적잖다는 점이다. 일부 시민사회단체는 광화문광장을 '보행 중심 광장'으로 조성하려면 도시 내 이동을 적정한 수준으로 줄여야 하는데 GTX 역 신설이 이에 배치된다고 주장한다.
시청 내부에서도 이견이 감지된다. 국토부 한 소식통은 "(광화문역 신설과 관련해) 서울시 고위공무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갈리며 의견이 나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국토부는 광화문역 신설은 서울시 의지가 중요하다는 태도다. 국토부 한 관계자는 "(정부는) 시가 사업시행자와 협의해 사업안을 가져올 경우 재정부담과 사업타당성을 따져 문제가 없다면 승인한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해당 역사는 지하에 지어야 하므로 시기를 놓치면 못한다"고 덧붙였다. 광화문역 신설에는 1500억~1900억원의 사업비가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원 확보는 물론 시청 안팎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단이 필요한 시점으로, 박 시장의 공백이 크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삼성역 개통 지연 문제는 지난달 서울시에서 입찰공고를 한 것으로 전해져 한고비를 넘긴 상태다. 국토부 관계자는 "서울시와의 협의는 끝났다. 영동대로 복합환승센터 건립은 서울시가 사업을 추진하면 된다"고 부연했다. 다만 그는 "예산 확보 등은 서울시가 해결해야 할 문제로, 현재로선 복합환승센터 전체 준공은 늦어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 지하 맨 아래쪽을 지나는 GTX를 먼저 추진해 A노선이 개통하는 2023년 말 부분 개통이라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영동대로 복합환승센터 발주가 늦어지면서 삼성역 개통은 일러야 오는 2026년 1분기가 될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GTX가 삼성역에 정차하지 않으면 A노선이 사실상 반쪽짜리 급행철도로 전락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A노선의 적기 개통 여부가 직무대행 체제로 전환된 서울시의 행정력에 좌우된다는 얘기다.
GTX 사업은 문재인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3기 신도시 조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3기 신도시는 1·2기 신도시와 달리 선교통 후개발을 기본방침으로 한다. GTX 건설과 개통이 차질을 빚으면 서울에 집중되는 주택수요를 수도권으로 분산한다는 정부 정책목표에도 수정이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
최근 정부의 부동산정책 실패와 관련해 문 대통령이 직접 주택 공급 물량 확대를 지시하면서 서울에 남아 있는 서초구 내곡동, 강남구 세곡동 등 강남권 그린벨트 해제가 조명을 받았다. 하지만 박 시장은 그린벨트 해제를 완강하게 반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에 주택 공급이 충분하다는 것이 박 시장 체제에서 서울시의 일관된 목소리였다.
그러나 일각에선 서울시 그린벨트 정책이 흔들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대통령이 직접 국토부 장관에게 주택공급 방안을 찾으라고 지시하고 여당이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만회하려고 대책을 강구하는 상황에서 박원순이라는 울타리를 잃은 서울시가 정책 기조를 유지하기 어렵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