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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대통령 주택공급 확대 지시에 홍남기·김현미 엇박자
홍 부총리와 김 장관은 지난 14일 각각 TV와 라디오에 출연해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 정부 입장을 설명했다. 공교롭게도 두 장관의 발언은 일관성이 없었다.
홍 부총리는 이날 MBC 뉴스데스크에 나와 주택공급 방안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이달 말 공급대책을 내놓기 위해 도심 고밀도 개발, 3기 신도시 용적률 상향 조정, 공공기관 이전 부지에 주택 공급 등 5~6가지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홍 부총리는 공급 방안으로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푸는 것을 고려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필요하다면 그린벨트 문제를 점검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 장관은 이날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주택 공급이 부족하다고 보느냐는 물음에 "현재 공급은 부족하지 않다"고 했다. 김 장관은 "서울에서 연간 4만 가구 이상 아파트가 공급되는데 올해 입주 물량은 5만3000가구로, 2008년 이후 가장 많다"면서 "많은 물량이 실수요자에게 공급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과제"라고 부연했다.
경제부총리는 부동산값 안정을 위해 주택 공급을 늘리겠다며 필요하면 그린벨트 해제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지만, 담당 주무 부처 장관은 공급이 부족하지 않다고 엇박자를 낸 것이다. 시장과 실수요자로선 누구 말에 장단을 맞춰야 할지 헷갈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각에선 김 장관이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에 반기를 든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김 장관은 현 정부의 21번째 부동산대책인 6·17 대책이 역풍을 맞자 지난 3일 청와대에 불려가 문 대통령에게 부동산대책 관련 긴급 보고를 했다. 이날 문 대통령은 △주택 공급 물량 확대 △실수요자, 생애 최초 구매자, 전·월세 거주 서민 지원 △다주택자 등 투기성 주택 보유자 부담 강화 △집값 불안 시 즉각적인 추가 대책 마련 등 4가지를 지시했다. 특히 주택 공급 물량 확대가 집중 조명되면서 서울에 남은 서초구 내곡동, 강남구 세곡동 등 강남권 그린벨트 해제 여부에 관심이 쏠린 터였다.
논란이 커지자 국토부는 15일 보도 설명자료를 내고 "그린벨트 해제와 관련해 정부의 입장은 동일하다"며 "향후 주택공급확대TF를 통해 모든 가능한 주택 공급 대안을 논의해 나갈 계획이지만, 현재 그린벨트 해제에 관해 논의된 바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국토부 박선호 1차관은 이날 열린 제1차 주택공급확대 실무기획단 회의 모두발언에서 "근본적인 공급확대를 위한 모든 가능한 대안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논의해 나가겠다"면서 "이미 서울시 등 관계기관과 협의가 진행된 사항도 있고 지금부터 논의를 시작해야 할 사항도 있다. 도시 주변 그린벨트의 활용 가능성 등 지금껏 검토하지 않았던 이슈에 대해서도 진지한 논의를 해 나갈 것"이라고 밝혀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박 차관 발언은 서울시 그린벨트 해제와 관련해 김 장관이 라디오에 나와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최근에 숨진 박원순 서울시장이 그동안 그린벨트 해제를 완강히 반대했던 상황을 고려해 김 장관이 논란을 키우지 않으려고 주택공급이 충분하다는 발언을 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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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김 장관과 홍 부총리의 불협화음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해 김 장관이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를 밀어붙일 때나 버스 파업 위기에서 준공영제를 전격 확대 추진할 때도 세종관가에선 경제부처를 지휘하는 홍 부총리가 김 장관의 밀어붙이기에 맥을 못 춘다는 목소리가 적잖았다. 현 정부 들어 굵직한 부동산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기재부와 국토부는 주도권을 놓고 신경전을 벌여왔다. 그때마다 김 장관이 정치꾼 특유의 뚝심으로 홍 부총리를 몰아붙인다는 평가가 우세했다. 홍 부총리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긴급재난지원금 대규모 살포에 반대 의견을 내면서 정세균 국무총리와 여당 지도부로부터 집중포화를 맞을 때 거취와 관련해 김 장관이 차기 부총리로 거론됐던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세종관가 일각에선 김 장관과 홍 부총리의 엇박자가 계속된다면 정부 정책추진의 신뢰도가 추락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누군가는 교체 수순을 밟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조심스럽게 제기되는 이유다. 최근에는 증권가 정보지(찌라시)에 김 장관의 교체설이 돌았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연이은 부동산정책 헛발질을 지적하며 김 장관의 해임을 요청하는 청원이 등장하기도 했다. 여당의 유력 당권 주자인 이낙연 의원도 지난 9일 KBS라디오 인터뷰에서 김 장관 경질론과 관련해 "인사는 대통령의 일이고 함부로 말하는 것이 직전 총리로서 적절하지 않지만, 정부도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김 장관을 교체하지 않을 거라는 반응을 보였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청와대 한 고위 관계자는 "김 장관에 대한 경질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그동안의 부동산 정책 실패에도 김 장관에 대한 신뢰를 접지 않았다면 교체 타깃은 "자리에 연연해하는 사람으로 비칠까 걱정"이라고 밝힌 바 있는 홍 부총리가 될 것인지 관심이 쏠린다. -
현 정부의 갈팡질팡하는 부동산정책의 배경에는 부동산 정책을 심의하고 방향을 정하는 주거정책심의위원회(이하 주정심)가 유명무실하게 운영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15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미래통합당 송언석 의원이 국토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주정심은 2015년 출범 이후 총 29차례 열렸고, 한 번도 부결된 적이 없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5월 이후로는 19번 열렸다. 29회 중 위원들이 직접 만나 의견을 나눈 대면회의는 2회, 나머지는 서면 심사로 대체됐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22번의 부동산 대책 중 12건(54.5%)은 아예 주정심을 거치지 않고 발표됐다. 다주택자 세 부담을 강화한 7·10 대책, 5·6 수도권 공급 대책(서울 용산 정비창 개발), 지난해 10·1 대책(법인 명의 주택담보대출 규제), 8·12 대책(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지정), 2018년 9·13 대책(종부세 대상 확대) 등이다.
주정심은 주거종합계획 수립 변경과 택지개발지구의 지정·변경, 주택 공급·거래에 관해 국토부 장관이 심의에 부치는 중요 사안을 다룬다. 송 의원은 24명 위원 중 민간 전문가는 4명의 대학교수뿐이고 나머지는 정부 측 인사와 부처 산하 연구원이어서 주정심을 열어도 사실상 '거수기 역할'에 그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외부 의견이나 충분한 토론 없이 정부의 입맛대로 부동산 정책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송 의원은 "주정심 회의 내용은 시장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는다.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도 시차를 두고 공개하는 것과 비교해 볼 때 지나치게 폐쇄적"이라며 "국민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심의·결정하는 만큼 주정심 운영 방안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