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균형 뉴딜에 75兆 투입… 지방공기업 사업 사타 면제키로2018년 사타 탈락률 30%… 무분별한 선심성·치적쌓기 사업 우려시민단체 "혈세 낭비하라고 판 깔아줘… 사전 선거운동 의혹도"
  • ▲ 제2차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에서 발언하는 문재인 대통령.ⓒ연합뉴스
    ▲ 제2차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에서 발언하는 문재인 대통령.ⓒ연합뉴스

    정부가 한국판 뉴딜을 지역 기반의 '지역균형 뉴딜사업' 위주로 추진하겠다며 지방공기업이 벌이는 사업의 사전타당성 검토(이하 사타)를 면제하겠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 제2의 선심성 퍼주기 정책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재정 중독에 빠진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의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을 조장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는 지난 13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2차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를 열고 지역균형 뉴딜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이날 회의에는 시·도지사들도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앞으로 국가발전의 축을 지역 중심으로 전환하겠다"며 "지역균형 뉴딜은 한국판 뉴딜의 핵심축이면서 국가균형발전의 중심에 서게 됐다"고 강조했다.

    지역균형 뉴딜은 한국판 뉴딜을 지역 기반으로 확장하는 개념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국가균형발전을 도모한다는 구상이다. 정부는 총 160조원 규모의 한국판 뉴딜사업 재원 중 절반쯤인 75조3000억원을 지역사업에 투입하기로 했다. 현재 136개 지방자치단체에서 해상풍력단지, 수소 융·복합 클러스터 등의 지자체 주도형 뉴딜사업을 계획 중이다.

    정부는 지자체가 지역균형 뉴딜사업을 추진할 수 있게 각종 행·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태도다. 지방재정 투자사업에는 심사를 면제하거나 간소화하고 지역균형 뉴딜과 연계한 투자사업에는 사타를 면제하기로 했다.

  • ▲ 시도별 지역균형 뉴딜 주요사업.ⓒ기재부
    ▲ 시도별 지역균형 뉴딜 주요사업.ⓒ기재부

    문제는 사타 면제가 지자체나 정부의 퍼주기·생색내기 정책으로 번져 가뜩이나 열악한 지방정부의 재정여건을 악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포퓰리즘 정책은 그 피해나 부담을 후세대가 떠안아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

    사타는 2013년 도입해 이듬해부터 시행됐다. 기초 지자체는 300억원, 광역 지자체는 500억원 이상의 사업을 지방공기업이 추진할 때 사업성을 사전에 검토하는 제도다. 국고 지원이 300억원 이상인 대규모 신규 투자사업을 벌일 때 경제·정책적 타당성을 미리 검증하려고 DJ(김대중) 정부에서 도입한 예비타당성 조사(예타)와 형제 같은 개념이다.

    행정안전부 설명으로는 2018년 사타 탈락률은 30%, 지난해는 20%쯤이다. 일각에선 지역균형 뉴딜이 그동안 사업성이 낮아 추진이 지지부진했던 지역 숙원사업들의 해결 창구로 전락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단체장이 지방공기업을 전면에 내세워 선심성 치적쌓기 사업을 벌일 수 있게 정부가 멍석을 깔아줬다는 지적이다. 적잖은 한국판 뉴딜사업이 기존 사업 등을 재탕·삼탕해 디지털·그린 뉴딜이라는 이름으로 재포장한 수준에 그친다는 점도 이런 우려를 부채질한다.

    정부는 지난해 지방공기업법을 고쳐 사타 면제 조항(제65조3)을 신설했다. 국가재정법에 따라 이미 예타를 통과했거나 재난 예방·복구를 위해 시급한 사업 등이 대상이다. 논란이 되는 부분은 마지막 5항이다. 지역 균형발전 등을 위해 국가 정책적으로 추진이 필요한 사업을 사타에서 제외할 수 있게 했다.

  • ▲ 예타 면제 대상사업 발표하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연합뉴스
    ▲ 예타 면제 대상사업 발표하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연합뉴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이미 한 차례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20조원대 토건사업을 추진한 바 있다. 총 24조원 규모의 23개 지역개발사업에 대해 예타를 면제했다. 이들 사업 중엔 김천~거제 남부내륙철도처럼 사업성이 낮다고 판단돼 이미 3차례나 예타에서 미역국을 먹은 사업도 포함됐다. 특히 이 사업은 경남지역 숙원사업이자 문재인 대통령 최측근인 김경수 경남지사의 1호 공약이다.

    예타 면제 사업 중 유일한 항공분야 인프라 확충 사업인 새만금 국제공항 건설도 항공 수요를 고려치 않은 중복 투자라는 질타를 받았다. 더욱이 새만금공항 건설은 사업 추진을 위해 국토부나 전북도가 항공수요를 50만명이나 뻥튀기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됐다. 새만금 신공항 건설사업의 경제성 분석(B/C)은 0.479다. 100원의 돈을 쓰고 그로 인해 얻는 편리함이나 유익함은 47원에 그친다는 얘기다. B/C는 1.0보다 커야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신영철 국책사업감시단장은 "예타는 정부나 지자체의 무분별한 선심성 사업을 사전에 방지해 혈세 낭비를 막고자 DJ 정부에서 도입했다. 나중에 도입한 사타도 마찬가지"라며 "DJ 정부를 계승한다는 문재인 정부가 MB(이명박) 정부에서 제도를 무력화하려고 둔 예외조항을 200% 활용하고 있다. 자신이 적폐라고 몰아붙인 정부에서 만든 예외조항으로 예산 낭비를 부추기고 있으니 할 말을 잃었다"고 비판했다. 또한 "지방정부의 재정상황이 열악한 데 중앙정부가 나서 돈을 낭비하라고 판을 깔아준 셈"이라며 "권력자가 혈세를 제 입맛대로 쓰겠다는 것으로, 사실상 사전 선거운동이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으로 사타 면제를 검토한 사업은 없다"면서 "지자체가 지역균형 뉴딜 사업을 신청한다고 무조건 면제하는 건 아니다. 면제 사유에 맞는지 따져볼 거다. 보통 6개월 걸리는 사타 기간을 4~5개월로 단축하는 데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