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가 지분율 80% 이상 기업 유보소득 일괄 과세… 경제계 반발실현도 안된 배당이익에 세금?… "획일적 기준, 위헌소지 다분"법인세수 급감에 중소기업 쥐어짜기? 中企성장사다리 붕괴우려
  • 정부가 내년부터 추진하는 오너 일가 지분율이 80%가 넘는 기업의 유보소득에도 과세하는 '개인유사법인 과세제도'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과세 대상 대부분이 중소기업들인데 코로나19 등 갑작스러운 위기를 대비하는 비상금에까지 세금을 매기며 기업생존도 위태로워진다는 것이다.

    정부는 투자·부채상환 등 가까운 시일내에 지출하기 위해 쌓아둔 유보금에 대해서는 공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주주배당 등 실현되지도 않은 소득에 대해 미리 세금을 부과한다는 점에서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29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개인유사법인 과세제도와 관련한 간담회를 열고 주요 내용을 발표했다.

    개인유사법인이란 최대주주와 친인척 등 특수관계자가 보유한 지분이 80% 이상인 기업으로 국내 중소기업의 절반이 개인유사법인으로 분류된다.

    개인유사법인이 적정 사내유보금을 초과해 쌓은 유보금(초과유보소득)에 대해 배당으로 간주하고 주주가 배당간주금액의 지분율에 비례하여 배당받은 것으로 보고 소득세를 과세한다는 방침이다. 유보소득은 매년 기업소득금액에 이월결손금을 뺀 금액으로 적정유보소득은 유보소득에 잉여금처분배당을 더한 수치의 50% 혹은 전체 자본금의 10%다.

    정부는 이같은 내용을 담은 세법개정안을 지난 7월 발표하고 내년부터 추진할 계획이다. 김 차관은 "개인유사법인이 법인세와 소득세간 차이를 이용해 소득세 부담을 회피할 목적으로 법인을 남용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며 "조세회피 방지 및 개인사업자와의 과세형평 제고를 위해 개인유사법인 과세제도 도입을 추진한다"고 설명했다. 김 차관은 다만 "정상적인 법인이 성장해 나가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설계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 ▲ 개인유사법인 과세방식ⓒ
    ▲ 개인유사법인 과세방식ⓒ
    이익실현 전에 과세? 위헌요소 다분

    경제계는 "기업현실을 전혀 모르는 탁상행정"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개별 기업마다 매출과 순이익 비율이 천차만별인데 적정 유보소득의 획일적인 산정으로 투자 등 경영 의사결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이다.

    특히 미실현이익에 대한 과세문제가 발생이 우려돼 위헌요소도 배제하기 어렵다. 현금이 부족한 법인의 경우 배당 자체를 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배당으로 간주해 주주 배당소득으로 과세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1990년 시행됐다가 5년만에 헌재 위헌판결된 된 토지초과이득세와 비슷한 성격의 조세라는 평가도 나온다.

    임동원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개별적인 법인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획일적으로 산정된 금액을 적정 유보소득이라고 할 수 없다"며 "개인유사법인 사내유보금 과세는 추후에 과세될지 모르는 불확실한 세금을 과세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불합리한 증세"라고 말했다.

    법인세수 줄어들자 중소기업 쥐어짜기?

    저성장 기조 장기화로 법인세수가 줄어들면서 정부가 중소기업까지 쥐어짜기에 나섰다는 비판도 나온다.

    지난해 기준 법인세 신고법인 중 중소기업은 70만4000개로 이중 개인유사법인은 35만개에 이른다. 지난 8월 중소기업중앙회 실태조사에 따르면 정부가 규정한 개인유사법인 요건에 해당하는 기업은 조사대상 300개 중 148개(49.3%)에 달했다. 전체 중소기업 절반이 개인유사법인으로 분류되고 이중 6만5000개 가량이 과세대상이 될 것으로 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문제는 중소기업 대부분이 가족이 주주인 개인유사법인으로 출발한다는 점이다. 신생기업이 이익을 차곡차곡 모아 더 큰 투자를 통한 성장을 이어가야 하는데, 유보소득에 과세를 하게 되면 중소기업의 성장 사다리가 붕괴될 공산이 커진다. 결국 중소기업은 영원히 더 큰 사업을 할 수 없다는 얘기다.

    기재부의 재정동향 10월호에 따르면 지난 8월 법인세수는 11조원으로 지난해 같은달 11조9000억원보다 9000억원 감소했다. 8월까지 누적 법인세수는 41조8000억원으로 지난해 56조3000억원보다 14조6000억원 줄면서 전체 국세수입 감소를 견인하고 있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결국은 정부가 세금을 더 걷겠다는 얘기"라며 "코로나19에도 중소기업이 버틸 수 있었던 건 아끼고 모아둔 유보금이 큰 역할을 했는데 그마저도 세금을 매기면 더이상 버틸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이 29일 서울 남대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개인유사법인 과세제도 관련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이 29일 서울 남대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개인유사법인 과세제도 관련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투자 적립금 공제 정부방침에도 우려… 세부담·경영비효율만 늘어날 것

    정부는 이날 개인유사법인이 향후 2년 이내에 투자·부채상환·고용·R&D(연구개발)를 위해 남겨둔 적립금은 유보소득에서 제외시키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김 차관은 "시행령에 이같은 내용을 개정하면 투자·고용 등 생산적 경영활동을 하는 대부분의 법인은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며 "또 벤처기업 등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거나 다른 법·제도에 적용받는 법인은 적용대상에서 제외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경제계는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이 확대된 상황에서 일률적인 과세 신설은 중소기업의 경영비효율과 세부담만 늘릴 것이라도 반발하고 있다. 2년이라는 유예기간이 너무 짧은데다, 기존 사업 매각에 앞서 신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투자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점에서 경영 비효율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법인이 손실이 발생해 적정 유보소득을 밑도는 경우는 어떻게 할 것이냐"며 "기업 매출과 이익은 매년, 매분기마다 갖가지 요소로 변동폭이 큰데 획일적인 기준은 기업 경영을 어렵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개인유사법인 유보소득이 적정기준 이하로 내려가는 경우에는 그 부분을 이월해 다음 과세연도의 초과금액을 공제해주는 것이 정상적인 과세방식일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