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일선 은퇴 한참재계 "낡은 규제 언제까지"공정위 "여전히 최대주주 지위 보유"
  • ▲ 왼쪽부터 정몽준(현 아산재단 이사장) 전 현대중공업 회장, 이준용 DL 명예회장,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 회장, 이웅열 전 코오롱 회장.
    ▲ 왼쪽부터 정몽준(현 아산재단 이사장) 전 현대중공업 회장, 이준용 DL 명예회장,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 회장, 이웅열 전 코오롱 회장.
    공정거래위원회가 29일 발표한 대기업집단 지정에서 제1의 관심은 단연 '동일인'이었다. 

    한참 논란이 컸던 쿠팡 총수는 쿠팡으로 귀결됐고 예상대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조현준 효성 회장이 '동일인=총수' 자리에 올랐다.

    두 사람 모두 일찌감치 회장직에 올라 경영을 총괄하고 있는 터라 새삼스러울게 없었다.

    함께 동일인 기대를 모았던 현대중공업 정기선 부사장과 LS 구자열 회장, DL 이해욱 회장 등은 공정위 인정을 받지 못했다.

    아이러니컬한 건 경영일선에서 은퇴한 지 한참이 지난 옛 회장들이 여전히 동일인으로 분류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몽준(현 아산재단 이사장) 전 현대중공업 회장, 이준용 DL 명예회장,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 회장, 이웅열 전 코오롱 회장 등이다.

    공정위는 "이들이 여전히 최대주주 지위를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쉽사리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인다.

    GS그룹 역시 일선에서 퇴진한 허창수 명예회장이 동일인으로 남았다. 2012년 취임한 구자열 회장은 10여년이 넘도록 여전히 동일인이 아니다. 

    일각에선 실제로 총수가 사망하지 않는 한 동일인이 교체되는 일이 거의 없다고 비관한다. 와병 등으로 정상적인 의사소통 자체가 되지 않는다는 게 확인된 삼성과 롯데 등의 총수 교체도 극히 이례적인 사례로 받아들여졌을 뿐이다.

    이른바 '재벌'로 불리는 대기업집단은 1987년부터 지정되기 시작했다. 핵심은 누구를 총수로 확정하느냐다. 총수가 누구냐에 따라 가족 6촌, 인척 4촌까지의 지분보유 현황 등을 따진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대상도 정해진다. 대기업집단 중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이면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분류돼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 규제와 각종 신고의무가 따른다. 자산이 10조원을 넘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이 되면 상호·순환출자금지, 채무보증금지 등의 규제를 추가로 받는다.

    공정위의 동일인 지정제도를 유지가 행정 편의성 때문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가 생겼을 때 법적 책임을 묻기에는 그룹 총수가 제격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실질적인 지분이나 지배력을 따지는 '정량적' 조건과, 보이지 않는 영향력까지 따지는 '정성적' 조건을 따져 판단하는 데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재계의 세대교체가 본격화하고 있지만, 정부가 동일인을 지정하는 제도는 그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대기업집단과 동일인 지정 및 규제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총수를 별도로 지정한다는 개념도 한국에만 있는 규제여서다.

    전경련은 "이제는 동일인 지정제도 존립 자체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이어 "1986년 폐쇄경제 시대에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을 막기 위해 만든 이 제도는 수출 중심의 현 경제 상황과 맞지 않는다"며 "글로벌 경쟁 시대에 일어날 수 있는 복잡한 경제 상황을 더는 포섭할 수가 없는 만큼, 효용성을 잃고 있다"고 했다.

    유정주 한경연 기업제도팀장은 "기업이 승계될수록 지분이 분산되고 얽혀있는 친인척·계열사들도 늘어나 동일인을 누구로 볼지에 대해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동일인 지정제도를 축소하거나 점진적으로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기업 지배의 최상단에 있는 실질적 지배력을 갖춘 사람을 동일인으로 보고 있다"며 "직접 또는 동일인 관련자를 통해 영향을 행사하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경영권 승계 등 젊은 리더십으로 전환을 추진하는 기업 집단에 대해서는 향후에도 동일인 세대교체를 지속 검토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