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처리 통해 플라스틱 원료 다시 추출생분해되는 '썩는 플라스틱' 상용화 가속도"빨대부터 내장재까지… 소비자 인식 변화 시장 급성장"
  • 나경수 SK종합화학 사장(좌)이 화상회의 시스템을 통해 마이크 오트워스 퓨어사이클 테크놀로지 CEO와 MOU를 체결했다. ⓒSK이노베이션
    ▲ 나경수 SK종합화학 사장(좌)이 화상회의 시스템을 통해 마이크 오트워스 퓨어사이클 테크놀로지 CEO와 MOU를 체결했다. ⓒSK이노베이션
    석유화학업계가 소위 '돈 되는 쓰레기'에 푹 빠졌다. ESG경영이 대세로 부상하면서 폐플라스틱 재활용뿐만 아니라 '썩는 플라스틱' 개발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급기야 회사 간판까지 바꿔가며 친환경 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시황에 따라 변동성이 극심한 기존 사업을 보완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석유화학산업은 연간 약 7100만t의 온실가스를 배출해 국내 제조업 중에서는 철강(1억t) 다음으로 배출량이 많다. 원료로 사용하는 나프타의 열분해 과정에서 나오는 메탄 등 부생가스가 나오는데, 이를 연료로 사용하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대량 발생한다.

    게다가 석유로 만드는 플라스틱은 대부분 한 번 쓰고 버려져 환경파괴 주범으로 꼽힌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2월 '석유화학 탄소 제로 위원회'가 출범했다. 여기에는 SK지오센트릭, LG화학, 롯데케미칼, 한화토탈 등이 참여하고 있다. 위원회 출범 이후 저마다 폐플라스틱 재활용 비전을 제시하면서 친환경 기업으로 도약하는 모습이다.

    기술적으로 가장 앞서 있는 곳은 SK이노베이션의 화학 사업 자회사인 SK지오센트릭이다.

    SK지오센트릭은 8월 미국 플라스틱 재활용 업체 퓨어사이클 테크놀로지와 합작법인 설립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퓨어사이클 테크놀로지는 포장 용기나 차량 내장재 등에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플라스틱 종류인 폴리프로필렌(Poly Propylene, PP) 재활용에 특화된 선도 기업이다.

    기존 △폐비닐에 열을 가해 나프타 등 원료를 얻어내는 '열분해유' 기술 △오염된 페트병과 의류를 화학적으로 분해해 재활용하는 '해중합' 기술에 더해 이번 협력으로 플라스틱 화학적 재활용 '3대 핵심 역량'을 모두 확보하게 됐다.

    이어 SK지오센트릭은 종전 SK종합화학에서 사명을 변경하고 세계 최고의 '도시 유전기업'으로 변신하겠다고 선언했다. 석유 기반의 플라스틱을 재활용해 다시 석유를 뽑아낸다는 역발상을 통해 앞으로 폐플라스틱 재활용 산업을 주도하겠다는 포부다.

    이를 위해 SK지오센트릭은 당사의 연간 국내 플라스틱 생산량에 해당하는 90만t의 폐플라스틱을 처리할 설비능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여기에 2025년까지 친환경 소재 확대 등에 약 5조원을 투자한다는 방침이다.

    나아가 2027년까지 연간 글로벌 플라스틱 생산량에 해당하는 250만t을 직간접적으로 재활용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매년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폐플라스틱의 20% 수준이다.

    나경수 SK지오센트릭 사장은 "2030년까지 재활용 플라스틱 시장의 성장률은 연평균 12% 수준이며 2050년에는 600조원 규모의 시장이 만들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2025년이면 재활용 및 친환경 사업에서 기존 비즈니스를 상회하는 영업이익을 창출하며 재무적으로도 완벽하게 '그린 컴퍼니'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화그룹에서는 한화솔루션과 한화토탈이 폐플라스틱 친환경 처리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폐플라스틱을 고온에서 분해한 열분해유에서 불순물을 제거하고 분자구조를 변화시켜 나프타를 생산하는 기술(PTC) 개발이 목표다.

    폐플라스틱에서 생산한 나프타를 나프타분해설비(NCC)를 통해 에틸렌과 프로필렌 등 플라스틱 기초 원료로 다시 생산하면 플라스틱의 반복 사용이 가능한 순환경제를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한화솔루션은 또 디아이텍, 미래생활과 '친환경 포장재 개발 공동 추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10년 이내에 화장지 등 위생용품의 포장재 절반 이상을 친환경 소재로 대체한다는 방침이다.

    한화솔루션과 디아이텍이 폐플라스틱 분해로 재생 소재의 품질을 높인 친환경 포장재를 개발하면 위생용품 전문기업 미래생활이 생산하는 '잘 풀리는 집' 화장지 등에 적용한다.

    금호석유화학의 경우 폐플라스틱 기반 친환경 원료 제조사업을 추진한다. 구체적으로 폐폴리스티렌(폐PS)을 열분해 처리해 얻은 친환경 원료 '재활용 스티렌(RSM, Recycled Styrene Monomer)을 제조한다는 구상이다.

    PS는 유제품이나 일회용 컵 뚜껑, 가전제품 포장용 스티로폼 등에서 흔히 접하는 플라스틱으로, 현재 재사용할 때는 저급 플라스틱 제조에 쓰인다. 오염된 경우 소각하거나 매립할 수밖에 없었다. 해외 폐플라스틱 재활용 분야에 전문 기업과 파트너십을 통해 RSM 공장 건실도 추진 중이다.
  • 후안 루시아노 ADM CEO 회장(좌)과 신학철 LG화학 CEO 부회장이 주요조건합의서 체결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LG화학
    ▲ 후안 루시아노 ADM CEO 회장(좌)과 신학철 LG화학 CEO 부회장이 주요조건합의서 체결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LG화학
    한발 더 나아가 '썩는 플라스틱' 만들이기에도 한창이다. 식물 또는 미생물 등 바이오매스를 원료로 한 바이오 플라스틱 제조에 나선 것.

    업계에서는 친환경 원료를 사용하는 데다 기존 플라스틱보다 분해되는 시간이 짧아 개발 및 상용화 속도 정도에 따라 탄소 중립을 앞당길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등에 따르면 전 세계적인 일회용품 사용 규제 강화로 생분해성 플라스틱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바이오 플라스틱 시장은 2021년 12조원에서 2026년 34조원 규모로 연평균 23%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는 바이오매스를 원료로 하는 만큼 기존 플라스틱이 썩는데 50년 이상이 걸리는 것과 달리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 내 완전히 분해돼 친환경적이라는 이유에서다.

    LG화학은 옥수수를 원료로 한 바이오 플라스틱 제조·상용화에 나섰다.

    LG화학은 글로벌 4대 메이저 곡물가공기업인 미국 아처 대니얼스 미들랜드(ADM)와 'LA(Lactic Acid) 및 PLA(Poly Lactic Acid) 합작법인 설립을 위한 주요조건합의서(HOA)'를 체결, 합작공장을 설립하기로 했다.

    양사는 내년 1분기에 본계약 체결하고, 2025년까지 미국 현지에 연 7만5000t 규모의 PLA 공장 및 이를 위한 LA 공장을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PLA는 옥수수에서 추출한 글루코스(포도당)를 발표·정제해 가공한 LA를 원료로 만드는 대표적인 생분해성 플라스틱이다. 100% 바이오 원료로 생산돼 주로 식품 포장 용기, 식기류 등에 사용되며 일정 조건에서 미생물 등에 의해 수개월 내 자연 분해되는 특징이 있다.

    LG화학 측은 PLA 생산을 기반으로 바이오 플라스틱 시장을 본격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지속가능 전략의 일환으로 기후변화 대응 및 폐플라스틱 등 환경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는 생분해성 수지 상업화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이미 2012년 사탕수수 등 식물성 원료로 바이오 플라스틱 개발에 성공했던 롯데케미칼도 점차 증가하는 수요에 맞춰 생산을 늘리겠다는 구상이다.

    2017년 101t에서 2018년 264t, 2019년 1528t까지 늘었으며 지난해에는 2000t을 달성, 불과 4년새 20배 성장했다. 이에 여수공장에서 생산하는 7만t 규모의 PET를 2030년까지 모두 바이오 PET로 전환할 계획이다.

    또한 SPC그룹의 포장재 계열사 SPC팩과 바이오 PET 포장 용기를 개발 중이다. 사탕수수를 원료로 활용해 기존 PET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8% 줄일 수 있다. 100% 재활용도 가능하다. 양사는 다양한 음료 컵과 샐러드 용기 등에 이를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롯데케미칼 측은 "환경에 대한 소비자들이 관심이 높아지고, 화장품·음료 등을 제조하는 생산자들도 친환경 포장 용기 개발에 주목하면서 제조원가가 다소 올라가더라도 환경을 위한 제품, 사회적 가치를 위한 제품을 위해 친환경 소재를 선택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SK케미칼은 그린케미칼 부문에서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며 바이오 기반 소재 중심으로 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이에 2030년까지 플라스틱 소재 제품을 그린 포트폴리오로 100% 전환할 방침이다.

    또한 화학적 재활용 기술을 적용한 '에코트리아 CR'을 하반기 출시하고 2022년 3월에는 옥수수에서 만들어지는 100% 바이오 신소재인 PO3G(폴리옥시트리메틸렌에테르글라이콜)를 생산할 예정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친환경 소재에 대한 다양한 연구들이 오래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는데,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 등으로 상용화가 어려웠다"며 "빨대와 같은 일회용품부터 자동차와 같은 내구 소비재까지 친환경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 확대와 이에 따른 고객사들의 변화로 시장이 본격 개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탄소 중립 주무 부처인 환경부는 지원책과 재정사업을 통해 업계 참여를 끌어내 폐플라스틱 열분해 처리 비중을 현행 0.1%에서 2030년 10%까지 높인다는 계획이다.

    폐플라스틱 열분해를 통해 석유화학기업이 원유를 대체하고 나프타, 경유 등 석유제품으로 재활용할 수 있도록 '폐기물관리법' 하위법령을 연내 개정할 방침이다.

    기업들이 폐플라스틱 열분해유를 석유제품 원료로 활용할 때는 온실가스 감축 효과를 고려해 탄소배출권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관련 지침도 개정한다.

    환경부는 2022년도 부처 소관 예산·기금안의 총지출을 11조7900억원으로 편성해 이달 초 국회에 제출했다. 이번 예산안은 전년 10조1665억원에 비해 6.00% 증액된 10조7767억원이며 기금안은 1조133억원으로 전년 1조49억원에 비해 0.83% 늘어난 수준이다.

    이 가운데 내년에 신규로 폐플라스틱 활용 원료, 연료화 기술개발에 52억원, 미래 발생 폐자원 재활용 촉진 기술개발에 41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