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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명예욕에 사로잡힌 의사들의 허탈한 왕위쟁탈권

‘학회 이사장’ 임명 두고 내부 반발 일었지만 결국 원안대로소화기내시경학회, 찜찜함 남기고 새 이사장 체계로 출발연구윤리 문제 논하던 공익제보에서 급하게 자체 종결 ‘아쉬움’

입력 2021-11-24 11:22 | 수정 2021-11-24 11:22

▲ 지난 12일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는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임시평의원회를 열고 현 이사장인 L교수에 대한 징계를 논의했다. ⓒ정상윤 기자

대학병원 의사들도 과열 경쟁 중이다. 진료실적과 연구성과는 필수적이고 추가로 어떤 직함을 가졌는지도 중요하다. 그 분야 대표 격인 ‘학회 이사장’ 타이틀은 커리어의 정점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주부터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대한소화기내시경연구재단 이사장으로 임기를 시작한 한양의대 L교수는 새로운 전성기를 맞았다. 그러나 그 과정은 고달팠다. 연구윤리 문제로 내부 반발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주회사 대웅의 사외이사이면서 계열사인 대웅제약 임상시험 CI(임상시험조정자) 역할을 한 것이 문제가 됐다. 지난 3월 국민연금이 반대의결권을 행사했음에도 사외이사로 재임명된 사실이 한 매체 보도에 의해 우연히 밝혀지면서 의혹이 증폭된 것이다. 

그의 동료였던 제보자들은 견고한 논리로 연구윤리 문제를 끄집어냈다. 법적 문제가 없더라도 이사장이라는 직함에 맞지 않는 행위를 한 것으로 ‘수용 불가’라는 입장으로 응수했다. 투명성이 중요한 위치인데 명예욕만 가득 찼다는 결론을 내렸다. 

전임 집행부는 징계 절차를 밟았고 정부 당국에는 유권해석을 요구했다. 사외이사 재직 기간 중 임상 건수 등 수치의 오류는 있었으나 사실관계가 명확한 상황이라 제보받은 내용에 힘을 실어줬다. 

이것이 국민 건강권을 최우선 가치로 두면서도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의료 관련 학회에게 요구되는 ‘공익성’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변화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도 희망을 걸었다. 

그때쯤 본보의 단도보도가 나갔고 대웅제약 측은 타 매체 등을 통해 사실관계가 다르다며 해명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러자 제보자 중 하나는 “사실관계를 왜곡해 덮으려는 정황이다. 정의가 승리해야만 한다”며 이사장 임명 철회에 앞장서주길 바랐다. 

일종의 신뢰 관계가 형성된 이후 제보자들은 비공개로 진행되는 L교수 징계 투표 현장에 참석할 권한을 부여하겠다며 취재를 요청했다. 회원들이 반발이 심하면 별도의 인터뷰 자리를 만들 것이라고도 언급했다. 

그러나 현장에 도착하자 예상치 못한 분위기가 흘렀다. 입장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였고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와달라던 그들의 표정은 냉랭했다. 학회 소속 직원들은 행사장 문 앞에서 누군가에게 전달 받은 듯 ‘외부인 출입 불가’ 방침을 연신 외쳤다. 

제보자들의 진정성은 그 순간 무너졌다. 여전히 그들만의 리그에서 머무르길 원했고 명예욕을 비판했던 그들 역시 명예를 쫓는 군중이었다. 라인이 L교수 쪽으로 잡히자 금세 방향을 바꾼 셈이다. 

이 과정에서 몸통은 숨었고 차기 이사장직과 거리가 멀어 명예욕을 분출하기엔 거리가 먼 모 교수가 만든 파벌의 문제로도 비화됐다. 

정의를 논하던 그 제보자에게 묻고 싶다. 투표 없이 무징계 결론을 낸 저의를 말이다. 표면적 이유는 L교수가 이달 초 대웅 사외이사직에 사표를 냈다는 것인데, 과연 모든 의혹을 떨쳐버릴 정도로 견고한 논리였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차라리 투표를 통해 정당성을 얻게 하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 절차였기 때문이다. 찜찜한 여운을 남기고 그렇게 사안은 종결됐다. 학회의 수장이 임명된 데에 따른 보도자료 역시 나오지 않고 있다. 

이번 사태는 연구윤리 문제와 관련 학회 내부의 자정활동과 이에 대한 공익제보로 시작됐지만, 명예욕과 이에 편승해 본질을 덮어버린 사례로 기록된다. 당장은 변화가 어려운 의료계의 현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박근빈 기자 ray@newdaily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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